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 이석연, 정재수 (지은이) 본문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
이석연, 정재수 (지은이)
책소개
우리가 알고 있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역사는 모두 지우자. 고구려사략의 방대한 기록을 기반으로 삼국사기를 비롯, 중국과 일본의 사서도 적극 참조하였다. 특히 삼국사기가 기록을 남기지 않은 까닭에 잊혀질 수밖에 없었던 고구려의 장대한 역사를 모두 발굴하여 담았다. 접기
목차
서문】
【논고】《광개토왕릉비》와 고대사의 재조명
제1장 광개토왕
1. 정복군주 광개토왕
광개토왕의 이름 담덕 | 광개토왕 묘호의 이해 | 광개토왕의 특별 문양 | 태왕과 호태왕의 사용시기 | 광개토왕의 가계 | 기존 ≪광개토 왕릉비≫의 연구와 평가
2. ≪광개토왕릉비≫의 새로운 해석
1부 시조 추모왕과 광개토왕의 세계
추모왕의 다양한 이름 | 추모왕의 출신 계보 | 추모왕의 고구려 건국신화 | 고구려 기초를 다진 3대 왕 | 추모신화가 동명신화를 차용한 이유 | 최초 도읍지 홀본 서성산 | 홀본 또 다른 이름 졸본과 일본 | 고명세자 유리왕의 비밀 | 광개토왕의 세계와 죽음 | 광개토왕은 17세손인가? | 광개토왕의 등극년도와 사망년도 | 광개토왕의 장례가 늦춰진 이유 | ≪광개토왕릉비≫는 누가 세웠나?
2부 광개토왕의 정복사업
영락5년 비려 토벌 | 영락6년 왜잔국 정벌 | 영락8년 백신 정복 | 영락10년 신라 구원 | 영락14년 왜적 격퇴 | 영락17년 ▨▨ 공격 | 영락20년 동부여 정복 | 정복사업 정리
3부 광개토왕과 수묘인
수묘인 연호 | 수묘인 연호 구성 | 수묘인 연호 교언 | 수묘인 연호 법령
3. 광개토왕의 유적과 유물
국내성은 수도인가? | 집안일대 고구려무덤군의 이해 | 광개토왕의 무덤 태왕릉 | 우산하무덤떼의 왕릉급 무덤 | 서대총과 천추총의 무덤주인 | 마선구무덤떼의 왕릉급 무덤 | 칠성산무덤떼의 왕릉급 무덤 | ≪집안고구려비≫와 ≪광개토왕릉비≫의 상관성 | 하해방무덤떼의 염모총 묵서 | 산성하와 만보정 무덤떼의 특성 | 해부리와 아리모려 묘지석 | 한반도에서 발견된 ≪충주고구려비≫ | 평안남도 덕흥리무덤의 주인공
제2장 장수왕
1. 수성군주 장수왕
장수왕의 출신 계보 | 장수왕의 외모와 성품 | 장수왕의 등극 내막 | 시호 ‘장수’의 편견 | 장수왕의 가계 | 장수왕의 죽음에 대한 의문 | 평양 천도의 실상 | 장수왕의 대외정책 이해
2. 장수왕 치세의 올바른 이해
1부 장수왕의 외교사업
북위와의 교류 | 동진・유송・남제와의 교류 | 유연과의 교류 | 선선과의 교류 | 백제와의 관계 | 신라와의 관계 | 왜와의 관계
2부 장수왕의 정복사업
북연 흡수 | 실위 정복 | 백제 정벌 | 지두우 분할 점령 | 신라 공격
3부 장수왕의 통치사업
선대왕의 존호 제정 | 사학과 기원의 설립 | 일반백성 분류와 관리 | 관등 개정과 관모 착용 기준 | 고구려 화폐의 추적 | 중원왕조 왕명을 수여한 장수왕 | 고구려 역사서 『유기』의 행방 | 북위왕실의 피를 받은 문자명왕
3. 장수왕의 유적과 유물
평양 안학궁과 대성산성 | 장군총 무덤주인의 미스터리 | 우산하무덤떼의 왕족묘역 | 삼실총과 마조총의 공통점 | 각저총과 무용총의 벽화 | 오도신총 사진 한 장의 비밀 | 장천무덤떼의 장천1호분 동명단상 | 평양 한왕묘의 무덤주인 | 평양 동명왕릉의 허와 실 | 남포 감신총의 남녀인물상 정체 | 안악3호무덤과 평양역벽돌무덤의 비밀코드 | 불상 등에 새긴 고구려 연호 | [최초공개] 집안출토 태왕차자릉 판석
【보고】「태왕차자릉」 출토 판석, 금관 등에 관한 보고
【부록】집안일대 「고구려무덤떼」의 왕릉급 무덤 분포도
【찾아보기】
접기
저자 소개
지은이: 이석연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역사는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누구나 인생을 알지만 누구도 인생을 모른다> … 총 28종 (모두보기)
‘여행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다.’ 저자의 여행관이다. 그간 일본 120여회, 중국 40여회를 비롯하여 세계 각처를 여행했다. 단체여행이나 패키지여행은 한 적이 없다.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주체가 되는 여행’을 했다. 독서와 여행을 통해 삶을 통찰하고 역사의 교훈을 되짚어 보겠다는 젊은 날의 꿈을 그는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그의 삶의 모토다.
1954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중학 졸업 6개월 만에 고졸 학력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곧 금산사(심원암)에 들어가 2년간 500여권의 책을 읽었다. 전북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 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23회)와 사법시험 (27회)에 합격하고 20여년간 공직에 몸담았다. 그사이 육군 정훈장교로 3년간 전방 철책부대 등에서 군 복무를 했다.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장과 법제처장(제28대)을 역임했고, 경실련 사무총장으로서 시민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독서광(chain-reader)인 그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책, 인생을 사로잡다>, <여행, 인생을 유혹하다>, <사마천 사기 산책>과 최근에 출간되어 화제가 된 <누구나 인생을 알지만 누구도 인생을 모른다>, <헌법은 상식이다> 등 20여권의 저서를 냈다.접기
지은이: 정재수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백제 역사의 통곡>,<신라 역사의 명암> … 총 11종 (모두보기)
전북 김제에서 출생하여 전주 영생고, 전북대, 학사장교를 통해 배움의 길을 닦고, 교보생명에서 근무하였다. 뒤늦게 우리 고대사 인물 연구에 몰두하여, 1500년 전에 생존한 백제 곤지(昆支) 왕자의 삶을 추적한 역사다큐소설 <곤지대왕>과 <백제와 곤지왕>을 출간하였다. 앞으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고대사 속의 인물 발굴에 힘쓸 예정이다.접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가 알고 있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역사는 모두 지우자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통치기간은 391년부터 491년까지 정확히 백년간이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보면 기록 자체가 너무나도 부실하다. 한마디로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업적은 보잘 것이 없다. 광개토왕의 경우 정복사업은 백제, 거란, 후연 등 3개이다. 이 정도의 정복사업은 고구려 역대 왕들도 모두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삼국사기? 기록만을 가지고 광개토왕을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삼국사기?의 3개 정복사업은 ≪광개토왕릉비≫의 7개 정복사업인 비려, 왜잔국, 백신, 신라, 왜적, ▨▨, 동부여 등과 완벽하게 겹치지 않는다.
지금까지 출간된 광개토왕 관련 도서는 수십여 종이다. 주로 ≪광개토왕릉비≫ 비문 글자의 판독을 두고 시시비비를 따진 도서들이다. 다소 역사적 영역보다는 과학적 영역에 치중한 판단과 해석을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우리는 정복군주 광개토왕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 책은 ?고구려사략?의 방대한 기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또한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의 사서도 적극 참조하였다. 특히 ?삼국사기?가 기록을 남기지 않은 까닭에 잊혀질 수밖에 없었던 고구려의 장대한 역사를 모두 발굴하여 담았다.
새롭게 발굴하여 밝힌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역사는 아래와 같다.
◐ 고구려 네크로폴리스인 길림성 집안 일대 고구려무덤떼에 묻힌 왕은 고국원왕, 고국양왕, 광개토왕, 장수왕, 문자명왕 등 5명이다. 고국원왕은 서대총, 고국양왕은 천추총, 광개토왕은 태왕릉, 장수왕은 장군총, 문자명왕은 오회분2호묘이다.
◐ 집안 일대 고구려무덤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임강총은 광개토왕의 어머니 천강태후 무덤이다. 천강태후는 고구려의 형사취수제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광개토왕의 아버지 소수림왕과 작은 아버지 고국양왕의 왕후가 된 인물이다.
◐ 광개토왕의 장례가 3년간 지체된 이유는 익원왕 천익의 보위찬탈로 장수왕의 등극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천익은 천강태후의 동생으로 광개토왕의 외삼촌이다.
◐ ≪광개토왕릉비≫를 실제 제작하고 세운 사람은 춘태자이다. 춘태자는 소수림왕의 이복동생으로 광개토왕에게는 작은 아버지가 된다. 광개토왕의 살아생전 교언에 따라 ≪광개토왕릉비≫를 제작하여 세운다.
◐ ≪광개토왕릉비≫의 「신묘년(391년) 기사」에 등장하는 왜는 한반도 부여기마족인 부여백제이다. 이들은 병신년(396년) 광개토왕에게 패해 일본열도로 망명하여 야마토(대왜/대화)왕조로 재탄생한다. 야마토의 실질 시조인 백제계 응신왕은 부여백제 여휘왕이다.
◐ ≪광개토왕릉비≫의〈영락10년 신라 구원〉기록은 ?일본서기?가 언급한 궁월군과 120현 삼한백성의 일본열도 엑소더스를 다룬 사건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의 출애굽에 비견되는 대규모 한반도인의 일본열도 이동이다. 일본은 이들 망명 도래인으로 인해 비로소 진정한 역사시대를 맞이한다.
◐ 천추총 인근의 마선하 강가에서 발견된 ≪집안고구려비≫는 광개토왕이 세운 작은 아버지 고국양왕의 공덕비이다.
◑ 장수왕은 재위 80년간 4개의 연호를 사용한다. 건흥, 장수, 연수, 연가 순이며 대략 20년 간격으로 이어진다. 장수는 장수왕의 연호인 동시에 시호이다. 불교의 무량수불을 가리킨다.
◑ 장군총은 장수왕과 장수왕의 어머니 평양태후의 합장묘이다. 원래 장군총은 평양왕후의 홑무덤(단장)이나 장수왕의 유언에 따라 널방에 추가로 시신을 안장하며 어울무덤(합장)이 된다.
◑ 장수왕의 생부는 광개토왕 담덕이 아닌 광개토왕의 동생 월왕 용덕이다. ≪태왕차자릉 판석≫은 장수왕의 태생의 비밀을 담고 있는 정체성의 유물이다.
◑ 타클라마칸사막의 누란(선선)과 교류의 물꼬를 튼 사람은 장수왕의 이복형 경태자이다. 경태자는 광개토왕의 장자로 아버지 광개토왕의 선택을 받지 못하여 후계자 서열에서 탈락한다. 선왕에 봉해진 경태자는 고구려를 떠나 주로 북위에서 활동하며 누란에 정착한 후 사망하여 그곳에 묻힌다.
◑ 장수왕의 손자 문자명왕은 중원왕조 북위 왕실의 피를 받는다. 문자명왕의 아버지 조다태자는 장수왕이 북위 명원제 탁발사의 딸 가란을 비로 맞이하여 낳은 아들이다. 가란은 조다태자를 낳고 장수왕의 왕후로 승차한다.
◑ 평양의 傳동명왕릉은 우산 장옥원에 묻힌 안장왕의 무덤이다. 傳동명왕릉은 평양 일대 왕릉급 무덤 중에서 평지가 아닌 산 중에 무덤을 쓴 유일한 경우이다. 현재 傳동명왕릉이 소재한 진파리고분의 제령산은 당시 우산으로 불린 평양의 네크로폴리스이다.
◑ 안악3호무덤과 덕흥리무덤의 주인공은 고구려로 망명한 후연의 모용인과 남연의 모용진이다. 모용인은 고국원왕 시기, 모용진은 광개토왕 시기에 고구려로 넘어온다.
'배움과 깨달음 > 좋은책과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상의 힘. 네빌 고다드 저 (0) | 2022.02.02 |
---|---|
기쁨공식. -김인강 (0) | 2022.02.02 |
우주의 법칙 (0) | 2022.01.28 |
불로불사(不老不死)의 길은 가능한 것인가? (0) | 2022.01.25 |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 김용대] (0) | 2022.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