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잃어버린 예수- 보내신 이(얼나)를 믿는 것이 하느님의 일 본문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요한복음6:29)
사람들이 예수에게 물었다.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한 6장 28-29)
"이 말은 예수가 한 말씀 가운데서도 소중한 말씀이다. 그러나 아무리 소중한 말씀을 들었어도 바로 알아 듣지를 못하면 못 들은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바로 알아 들은 이가 몇 사람이나 될까? 이 사람이 보기에는 몇 안되는 것 같다.
하느님이 보내신 이는 과연 누구일까? 많은 크리스천들은 왜 그런것을 묻느냐고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
예수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과연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예수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하느님이 보내신 이'라고 믿는 것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큰 소리칠 수 있을까?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만 하여도 "왜 나를 보고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만이 선하시다"라고 한 지극히 겸손한 예수이다. 예수는 누구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고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예수처럼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얼나)를 참나로 믿어야 한다.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을 바로 알아 듣는 것이다. 예수의 보혈로 속죄 받는 것을 믿는다고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느님이 보내신 이'는 하느님의 생명인 성령의 '얼나'를 말하는 것이다." [박영호 잃어버린 예수에서 발췌]
다석 유영모 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숨은 목숨인데 이렇게 할닥할닥 숨을 쉬어야 사는 몸생명은 참 생명이 아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숨쉬는 얼생명이 참 생명이다.영원한 생명인 얼생명에 들어가면 숨쉬지 않아도 끊기지 않는 얼목숨이
있을 것이다. 내가 어쩌구저찌구 하는 그런 제나(自我)는 멸망의 생명이라 쓸데없다. 석가의 참나(法我), 예수의 얼나(靈我)는 같은 하느님 아들인 영원한 생명이다. (1960)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요한 12:46-개역성경) 빛은 얼이다. 얼나의 자각 그것이 나는 빛"이라는 말이다. 얼나가 있다는 것은 얼나를 깨었다는 것이다. 깨었다는 것은 생각이다. 밝은 것이 빛이 되듯이 깬 것이 빛이다. 그 사람이 얼나를 깨었는지 안 깨었는지는 그 사람의 말로 심판한다. 하느님도 예수도 우리를 심판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심판한다. 예수는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느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 7:16~17)고 했다. 예수는 자기가 하는 말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뜻(명령)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것이었다. (1957)
'하느님이 보내신 이'는 하느님의 생명인 성령의 '얼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얼나 즉 참나를 깨닫는 것이 하느님이 보내신 이를 아는 것이다.
'보내신 이'를 아는 것은 보내신 이(얼나)를 믿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일이다.
柏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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