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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 대륙의 비밀...제임스 처치워드 지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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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 대륙의 비밀...제임스 처치워드 지음

柏道 2021. 9. 2. 23:15

뮤 대륙의 비밀...제임스 처치워드 지음
프로필
허당고파
2015. 12. 3. 1:17


책제목: 뮤대륙의 비밀

원제: The Lost Continent of Mu

지은이: Col. James Churchward

출판사: 문화사랑



추천: ** 2 Stars



나칼의 점토판 첫머리에 나오는 창조에 관한 이야기는 누가 보더라도 분명히 전반적으로 성서의 내용과 흡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칼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그 후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는 사실 또한 명백하다. 각각의 민족은 창조에 관한 전설을 지니고 있으며, 나는 그 전설 모두가 동일한 곳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는 많은 물증들을 찾아냈다. 그 전설들은 모두 뮤 대륙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나칼의 점토판은 해독하기가 극도로 어려웠다. 비밀 문자와 繪畵的 묘사들이 너무도 많은데다 이집트의 그림 문자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우리가 연구를 시작할 당시 내 승려 친구는 고대의 점토판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나가.마야어라고 하는 언어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었다. 뮤 제국에 관한 고대 기록은 모두 이 고대어로 씌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나칼의 모든 기록에는 나칼들 자신과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秘敎的 의미와 숨겨진 뜻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나는 이 점토판들이나 흡사한 다른 비문들에 기록된 敎義가 고대 힌두 문학은 물론 다른 고대 문학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힌두문학 작품인 제2권 74쪽에는 “태초에는 Adite라고 하는 신만이 존재했다”라는 구절이 있고, 제1권 8쪽에는 “이 胚芽는 알이 되었다”라는 말이 나오며, 제1권 10쪽에 “태초에 우주에는 암흑뿐이었다”라는 구절, 그리고 제1권 9쪽에 “그는 먼저 물을 만들었고 그 속에 알을 집어넣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기원전 2000-2500년 작품인 제4권의 3장 1,2 쪽에는 “이 알 속에서 절대자의 예지가 모든 신들과 인류의 자애로운 어머니인 마야 여신의 지혜와 합하여 부처의 형상으로 재생되었다...”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다. (이 구절은 그로부터 1,700년 후에 나온 아담과 이브의 전설과도 일치한다). 3쪽에는 “신 말고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어둠뿐이었다”라는 구절이 나오며 4쪽에는 “신은 대기 속에 빛을 골고루 넣었다”라는 구절이 있다......모세가 쓴 성서 설화의 원전이기도 한 천지창조에 관한 이집트의 전설은 나칼들이 이집트로 건너갈 때 인도로부터 가져간 것이었다. 그들은 이집트인들에게 일곱 가지 성령 경전과 신앙 및 과학을 전수하기 위해 파견된 선교사들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 국가의 주일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드라마틱한 천지창조의 이야기는 실제로 사라진 대륙 뮤에서 유래된 것이다.



남태평양 제도의 몇몇 섬들, 특히 이스터 섬과 망가이아, 퉁가 타부, 파나페, 레드로운, 마리아나와 같은 섬들에는 뮤 대륙의 과거가 살아 숨쉬는 오래된 신전과 유적들이 아직 남아 있다. 유카탄 반도의 욱스말에는 폐허가 된 신전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우리가 떠나온 서쪽 나라’라고 새겨진 비문이 남아 있다. 또한 멕시코시티 남서쪽에 있는 피라미드는 그 비문을 보면 ‘서쪽 나라’의 파멸을 기념하여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집트와 버마, 인도, 일본, 남태평양 제도,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및 북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의 오래된 표상이나 관습들 가운데 몇 가지는 너무나도 뚜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의 고대 문명, 즉 뮤 대륙의 문명을 뿌리로 하여 갈라져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뮤 대륙은 하와이 북부로부터 남쪽으로 뻗어 내린 광대한 제국이었다. 이스터 섬과 피지 섬을 잇는 선이 남쪽 경계를 이루며 동서로는 8천 킬로미터 이상, 남북으로는 5천 킬로미터 이상 되는 면적을 가지고 있었다. 대륙은 해협과 수로를 사이에 끼고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이 위대한 대륙에는 ‘6천 4백만 명의 인간’이 뮤라고 하는 풍요로운 보금자리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당시 뮤 대륙의 6천 4백만 인구는 ‘10개의 종족’ 혹은 ‘민족’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종족마다 제각기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었지만 하나의 정부가 그들 모두를 통제했다(트로아노 고사본). 그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왕을 선출하고 그 왕을 ‘Ra’라고 칭했다. 왕은 그후 ‘Ra Mu’라는 칭호를 갖고 제사장과 황제의 역할을 겸하게 되었다(라사 및 그 밖의 기록들). 또한 뮤 제국은 ‘태양의 제국’이라는 호칭을 갖게 되었다. 뮤 제국의 국민들은 모두 하나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표상을 통해 창조주를 경배했으며 영혼의 불멸을 믿고 또한 영혼이 언젠가는 ‘위대한 생명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고 믿었다(라사 및 여러 기록).....지배 계층은 백인종이었다. 그들은 순백색 혹은 올리브색 피부에 부드럽고 큰 검은 눈동자, 쭉 뻗은 검은 머리를 지닌 아주 잘생긴 민족이었다. 이들 백인종 외에도 황색 인종, 갈색 인종, 그리고 흑인종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배 계층은 아니었다 (트로아노 고사본, 코르테시아누스 고사본 및 그 밖의 기록). 이들 고대 뮤 제국의 국민들은 훌륭한 항해사들이었다. 그들은 배를 타고 ‘대양을 동서남북으로 가로질러’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들은 또한 건축술을 습득하여 거대한 석조 신전과 궁궐을 지었다(발미키).’ 그들은 돌을 다듬어 기념비로서 거대한 비석을 조각하여 세우기도 했다. 뮤 제국에는 종교와 과학, 학문의 중심지였던 일곱 개의 대도시가 있었다(라사 기록). 그 밖에도 큰 도시들이 많았으며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국토 곳곳에 소도시와 마을이 있었다.....뮤 제국은 전 세계의 학문과 교역, 상업의 모태이자 중심지였다. 지구상의 다른 국가들은 모두 뮤 제국의 식민지이거나 식민 통치를 받는 왕국이었다. 옛 기록이나 비문, 전설에 의하면 지구상에 인간이 최초로 출현한 장소가 바로 뮤 대륙이었으며, 그래서 뮤 대륙은 ‘Kui의 나라’라고도 불리었다.....이 위대한 제국이 문명과 학문, 교역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리며 거대한 석조 신전과 비석들을 세우고 있을 무렵 (남태평양 제도의 유적에 전하는 전설), 뮤 제국은 끔찍한 재앙을 맞아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땅 속에서 뇌성이 울리는가 싶더니 그것은 곧 뮤 대륙의 남부를 뒤흔드는 지진과 화산 폭발로 이어졌다(이스터 섬과 그 밖의 섬들의 전설). 대륙의 남쪽 해안으로는 대양으로부터 바닷물이 밀려들어 지면을 온통 뒤덮고 아름다운 도시들을 파괴해 버렸다. 화산들은 불과 연기와 용암을 내뿜었다. 뮤 제국은 국토가 평평했기 때문에 용암이 흘러내리지 않고 한군데로 쌓여 원뿔 모양을 만들었다. 원뿔 모양으로 쌓인 용암은 이윽고 화성암의 바위산이 되어 오늘날 남태평양의 섬들로 남아 있다(이스터 섬과 그 밖의 섬들의 전설). 화산의 폭발이 멎고 나자 뮤 대륙의 사람들은 차츰 두려움에서 깨어났다. 폐허가 된 도시들은 재건되었고 교역과 상업도 되살아났다. 세월이 흘러갔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재앙의 기억이 그 빛을 잃고 과거의 역사로 변해갈 즈음 뮤 대륙은 다시 한 번 지진을 맞게 되었다. 대륙 전체가 마치 대양의 파도처럼 높이 솟구쳐 휘감기듯 흔들렸다. 태풍 속의 나뭇잎처럼 땅이 흔들려 신전과 궁궐들이 무너져 내리고 기념비와 동상들이 뒤집어졌다. 도시들은 폐허의 더미로 변하고 말았다(트로아노 고사본, 코르테시아누스 고사본 및 라사 기록).....대륙은 ‘밤 사이에(코르테시아누스 고사본 및 트로아노 고사본)’ 완전히 파괴되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리고는 동틀 무렵이 되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가라앉아 버렸다. 대륙은 ‘불바다’를 이룬 지옥의 밑바닥으로 끝없이 추락해갔다. 조각난 대륙이 거대한 불의 심연 속으로 잠길 즈음 ‘불길이 솟구쳐 올라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리고 말았다(이집트의 전설).’ 불은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뮤 제국과 6천 4백만 명의 사람들을 희생시켜 버린 것이다(트로아노 고사본).‘ 뮤 대륙이 불길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을 무렵 또 하나의 재앙이 찾아왔다. 8천만 입방킬로미터의 물이 대륙을 뒤덮어 버린 것이다. 사방에서 거대한 파도가 밀려들어 사방 물의 벽을 만들며 대륙 전체를 휘감아 버렸다. 사방에서 밀려든 파도는 대륙의 중심부에서 하나가 되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인류의 모국, 가련한 뮤 제국의 자랑이었던 아름다운 도시들과 신전, 궁궐들, 그 모든 빛나는 예술과 과학, 학문은 이제 한낱 과거의 꿈이 되고 말았다. 뮤 대륙은 죽음의 수의를 뒤집어쓰듯 물속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뮤 제국은 이렇게 파멸을 맞았다. 이런 식으로 지구 최초의 위대한 문명은 재앙에 의해 파괴된 것이다.....대륙이 물속에 잠겨 버리면서 지질학적 이유로 대륙의 뾰족한 봉우리들이 수면 위 여기저기에 남게 되었다. 이 뾰족한 봉우리들은 섬과 諸島가 되었다....이 뾰족한 봉우리들은 대륙이 물속으로 잠길 때 탈출한 사람들로 가득했다.....대륙 전체를 삼켜 버린 바다...이 바다가 바로 ’태평양‘이다.....결국 작은 섬들만이 남겨졌다. 그 섬들의 일부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남태평양 제도이며 남태평양 제도의 주민 가운데 일부는 고대 뮤 대륙에 살았던 주민들의 먼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뮤의 식민 제국들은 한동안 모국의 문명 수준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러나 모국의 지원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그들의 문명은 서서히 퇴보했고 이윽고는 마지막 불씨마저 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문명의 잿더미로부터 새로운 현대의 문명이 싹을 틔운 것이다.



뮤 대륙은 1만 2천 년에서 1만 2천 5백 년 전에 존재했다는 얘기가 된다.....이 대륙은 해협이나 수로에 의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마도 상형문자로 된 이집트의 옛 기록을 제외하고는 뮤 대륙이 어떻게 어느 부분에서 셋으로 나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없다. 이집트의 옛 기록을 보면 육지가 가늘고 길게 셋으로 나뉘어 동쪽에서 서쪽으로 뻗어 있다.....태평양 밑으로 사라질 때까지 뮤 대륙에는 산이 하나도 없는 평원이었다. 그 후 뮤 대륙을 파도 밑으로 밀어 넣어버린 화산의 작용으로 산이 솟아 오른 것이다.



남태평양 제도에서 발견된 고대의 기록과 유적들을 보면 인류가 미개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문명화된 존재로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은 태초부터 자신의 영혼과 정신에 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창조주의 존재를 믿고 경외했었다. 또한 종교적 상징으로 쓰인 몇몇 형상들을 보면 당시에 인간은 대체로 지적 수준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태초의 종교적 상징들을 보면 형태가 아주 단순하다.....그러나 인간이 지구상에 최초로 출현하고 수백만 년 후의 시점에서 볼 때 태초의 인류는 지적 발달은 결여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당시에 이미 고도로 개화되고 문명화된 상태였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그것은 오만 년 이상 이전의 일이었다.



놀라운 것 중의 하나는 남태평양 제도의 폴리네시아 계 원주민이 백인종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완벽한 백인종일 뿐 아니라 용모가 아주 뛰어난 종족이기도 하다. 여러 기록들을 살펴보면 인류가 지구상에 최초로 출현한 장소는 뮤 대륙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폴리네시아의 섬들은 파멸의 와중에 바다 속으로 침몰해버린 불행한 대륙의 한 부분이었다는 사실도 명확해진다. 또한 옛 기록들에 의하면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는 뮤 대륙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정착했던 식민지였다. 여러 민족들 사이에 대대로 전해 오는 전설에 의하면 뮤 대륙에서 건너온 이들 첫 이주민은 금발계의 백인종이었는데, 그들은 그 후 좀 더 거무스레한 피부를 지닌 黑髮系의 백인종들에게 살던 곳을 빼앗기고 쫓겨났다. 갈 곳이 없어진 금발계의 백인종들은 배를 타고 해 뜨는 방향으로 동쪽을 향해 항해하여 북부 유럽, 즉 오늘날의 스칸디나비아 지방에 정착했다. 또한 이들 옛 기록을 보면 남부 유럽과 소아시아, 북아프리카의 인종은 마야 제국과 중앙아메리카, 그라고 아틀란티스 대륙을 거쳐 이주해 온 흑발계 백인종의 후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코르테시아누스 고사본>은 광신적인 란다 주교의 눈을 피해 오늘날에까지 전해지는 또 하나의 옛 마야 왕국의 책이다. 책에 실려 있는 문자나 형상, 글의 내용을 보면 이 책 또한 <트로아노 고사본>과 같은 연대의 사건에 관해 씌어 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코르테시아누스 고사본>에 실려 있는 언어는 <트로아노 고사본>의 언어보다 훨씬 더 상징적이다.....<코르테시아누스 고사본>과 <트로아노 고사본>이 똑같은 사원의 기록을 토대로 하여 씌어졌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라시 기록>은 슐리이만이 티벳의 라사에 있는 오래된 불교 사원에서 발견한 것이다....라시 기록의 내용은 보다 현대적이며 마야 문자로 씌어져 있지도 않다.



몇 안 되기는 해도 옛 그리스 철학자들이 남긴 글 가운데 인류의 모국에 관한 부분이 실려 있다. 유클리드 대제의 통치를 받던 기원 전 403년, 그리스의 문법학자들은 아테네 알파벳을 다시 배열하여 오늘날의 알파벳 형태로 고쳤다. 오늘날의 그리스 문자는 마야 어를 기원으로 하는 배열 그 자체가 뮤 대륙의 붕괴를 이야기하는 한 편의 서사시이다. 그리스 알파벳은 카라.마야 어를 기원으로 하는 서사시이며 뮤 대륙이 붕괴될 때 목숨을 잃은 그들의 조상을 추모하는 기념물이다. 플라톤의 ‘티메우스 크리티아스’에는 사라진 대륙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뮤 제국에는 열 개의 민족이 살고 있었다.’



발미키 著, 라마야나 제1권 342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마야의 신자인 나칼들은 동족에 있는 그들의 고향을 떠나 신앙과 학문을 전하는 선교사로서 먼저 버마로 향했다. 그들은 버마에서 나가 문자를 가르쳤다. 그 후 그들은 버마를 떠나 인도의 데칸으로 갔고 다시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 그들의 신앙과 학문을 전파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톰에 가면 고고학자들이 ‘사자들’이라고 불러온 전통적 짐승의 조각상을 볼 수 있다. 그 짐승 조각상들은 하나같이 예전에 모국이 있었던 방향인 동쪽을 향해 서 있다. 이 조각상들은 뮤라는 말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다....조각상들의 입 모양이 뮤 제국을 뜻하는 종교 문자이자 뮤 제국의 상징인 M의 형태를 나타내는 길쭉한 사각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태평양의 諸島 가운데 캐롤라인 群島만큼이나 선사시대의 유적이 많이 발견되는 곳은 없다. 나칼의 비문과 발미키 書에 의하면 이곳은 ‘인류의 모국’인 대륙이 있던 시절 첫 이주민들을 태운 선박이 버마나 인도 쪽으로 출발하는 항구였다.



남태평양 제도의 작은 섬들에 거대한 돌의 유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고고학자들에게는 언제나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였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남태평양 제도에 한때 위대한 문명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졌다....‘라’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폴리네시아인들과 우리 조상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라’는 태양의 상징이었으며 태양은 마야, 퀴체, 잉카, 힌두, 칼데아,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이집트 등의 문화권에서 창조주를 의미했다.



그리스 문자는 카라.마야어의 낱말들로 이루어진 한 편의 서사시이다. 또한 그것은 뮤 대륙의 멸망과 함께 목숨을 잃은 선조들을 추도하는 기념물이기도 하다. 이 알파벳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엄청난 물이 터지며 평원에 펼쳐졌다. 물은 낮은 장소를 뒤덮고 그곳에 온갖 장애물이 쌓여 둑이 생겼다. 대지에 물이 세차게 부딪혔다. 물은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 위에 펼쳐지고 지반이 무너져 뮤 대륙은 바람은 점점 차가워져 갔다. 골짜기가 있던 곳은 심연이 되어 차가운 물이 고였다. 둥글게 패인 곳에는 진흙이 모여 둑처럼 높이 쌓였다. 입이 벌어지고 그 속에서 수증기와 화산의 침전물이 솟아 올라왔다.’ 그리스 문자는 뮤 제국의 종교 문자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십자가는 고고학자들조차 해독하지 못하는 고대의 비문 속에서 너무나 많이 발견되기 때문에 학자들은 그 점을 언제나 수수께끼로 생각했다. 특히 유카탄 반도와 중앙아메리카의 비문에는 그리스 십자가가 많이 들어 있다. 그리스 십자가는 태양의 제국 뮤의 왕실 문장 중앙 부분에 들어 있는 문양이다. 이것은 뮤 제국의 언어로 ‘우-루우밀’이라고 하는 어구인데 ‘...의 땅, ...의 나라’ 그리고 더 나아가 ‘...의 제국, ...의 왕국’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표상이 나타내는 어구의 앞이나 뒤에 어떤 말이 놓이는가에 따라 앞에서 말한 의미 가운데 하나를 나타내게 된다....그리스 문자와 그리스 십자가의 의미는 태양의 제국 뮤의 존재와 함께 뮤 제국이 그리스인들의 모국이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집트의 ‘死者의 書’에는 인류의 모국에 관한 기록이 많이 실려 있다. 이 책을 보면 물에 잠겨 사라진 뮤 대륙이 정말로 인류가 지상에 나타나 처음으로 발붙이고 살았던 곳이며, 다른 나라들은 고도의 문명을 지니고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뮤 제국이라는 중심의 둘레를 도는 위성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뮤 제국을 떠나 ‘사자의 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이집트의 성서는 흔히 ‘사자의 서’, 즉 ‘죽은 사람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이 책의 정확한 이름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사자의 서’는 뮤 대륙이 붕괴될 당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쓰여진 기념의 글이다. 그들은 이집트 사람들의 조상이자 인류 전체의 조상이었기 때문이다. ‘사자의 서’에서 죽은 사람이란 바로 이들을 일컫는 것이다. 그들이 가슴에 품고 있던 어머니 나라를 향한 이러한 사랑과 애착, 조상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은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전 세계에서 행해져 오고 있는 ‘조상 숭배’의 원형이다.....인도와 이집트의 고대 학문은 서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집트의 북부 지방은 인도의 식민지였으며 그곳에서 건너온 마야 이주민들의 정착지였다. 마야 이주민들이 이집트 북부에 자리를 잡고 ‘마이우’라는 정착촌을 세우고 나자 나칼들이 인도를 떠나 이집트로 건너왔다. 그들은 ‘일곱 가지 거룩한 영감의 책’에 실린 가르침과 함께 신앙과 과학을 전하기 위해 이집트로 파견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인도에서 배운 秘敎 문자 해독 방법은 고대 이집트의 비교 문자를 해독하는 데에도 얼마간 도움이 되었다.....‘사자의 서’는 각 장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뮤 제국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인간이 아직 이집트 땅을 밟기 전에 뮤 제국에서 사용되었던 표상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뮤 제국의 왕실 문양을 나타내는 표상은 여덟 개의 빛살을 가진 태양이다.



위구르 지방에서 발견된 기록은 대단히 귀중한 것이다.....위구르는 동부 지역의 절반을 붕괴시킨 성서의 ‘대홍수’가 일어났을 당시 뮤 제국에 속한 식민 제국이었다. 당시 위구르는 뮤 제국의 식민 제국 가운데 으뜸가는 제국이었다. 중국의 전설에 의하면 위구르는 1만 7천 년 전에 가장 화려하게 문명의 꽃을 피웠다는데 이 연대는 지구상의 지리적 현상과도 일치한다. 위구르 제국은 태평양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카스피 해 쪽에서 동유럽을 향해 세력을 뻗쳐 나갔다. 이것은 영국의 브리티시 섬이 유럽에서 분리되어 나가기 이전의 일이다. 위구르 제국의 남쪽 경계선은 코친차이나(베트남의 남단 지역)의 북쪽 변방과 버마, 인도, 페르시아를 잇는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히말라야 산맥을 비롯한 아시아의 산맥들이 솟아오르기 전의 일이다. 위구르의 북쪽 경계선은 시베리아까지 뻗어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멀리까지였는지는 기록에 없다. 현재까지로는 위구르 제국의 도시 유적들이 시베리아 남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고대 힌두의 기록에 의하면 위구르는 서서히 세력을 확장하여 카스피 해의 서쪽과 북쪽 해안을 끼고 유럽을 향해 들어갔으며, 여기서 다시 중부 유럽을 거쳐 아일랜드까지 뻗어나가 아일랜드가 서쪽 경계선을 이루었다. 위구르족은 스페인과 프랑스 북부 지방에서 멀리 발칸 지방에까지 이주민들을 정착시켰다. 최근에 고고학자들이 모라비아에서 발굴한 것도 위구르의 유적이었다....위구르족은 고도의 문명과 문화를 이룩했었다. 그들은 점성학과 채광 기술, 직조업, 건축, 수학, 농경, 저술, 독서, 의학 등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비단과 금속, 목재 위에 장식을 넣는 기술에 능했으며 금과 은, 청동 및 점토로 동상을 만들었다. 이러한 것은 전부 이집트의 역사가 비롯되기 이전의 일이다. 위구르 제국은 그 절반이 뮤 제국이 파멸하기 전에 붕괴되었으며 나머지 절반은 뮤 대륙의 침몰에 이어 붕괴되었다....위구르 제국 왕실의 왕홀... 이 왕홀의 끝부분 역시 세 개의 뾰족한 돌기를 가진 삼지창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기서 세 개의 돌기, 즉 3은 어머니 나라의 숫자이다.



뮤가 언제부터 태양의 제국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뮤의 통치를 받던 제국이나 왕국들의 연대가 3만 5천 년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면 태양의 제국은 3만 5천 년 훨씬 이전에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 정확한 연대는 아무도 모른다.



모세는 오실리안 신앙의 한 종파인 일신론의 창시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교리 속에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원래의 표상들 가운데 대다수를 그대로 사용했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유태교 회당에 가면 이 표상들 가운데 일부를 볼 수 있다. 예수의 가르침은 언제나 비유적 우화를 사용하고 있다. 그는 우화를 사용하는 것만이 사람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우화를 통해 비유적으로 설교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우화는 어법적 표상이다....유카탄 반도의 욱스말에 있는 ‘거룩한 신비의 사원’ 벽에 새겨져 있는 표상들은 여러 종류의 표상들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원의 벽에 새겨진 비문은 그들이 서쪽 나라들, 즉 인류의 모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남태평양 제도에 남아 있는 폐허 유적들 중의 일부에는 이러한 표상들이 많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도에서는 특별히 두 개 이상의 팔을 가진 인간의 형상이 새겨져 있거나 그려져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이 형상들은 사원의 벽이나 옛 힌두 고사본의 삽화, 그리고 오늘날 힌두의 민속 공예 보석품 등에서 볼 수 있다.....이 형상들은 우상이 아니라 창조주와 천지창조를 나타내는 거룩한 표상이다. 이 형상들은 아주 복잡한 형태와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인류 최초의 기록을 연구하다 보면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특징적 형태와 일치하는 것이다....이 여러 개의 팔을 가진 형상들을 처음 발견한 곳은 인도의 고대 사원이었지만 나는 그것들이 뮤 제국에서 기원되었음에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나가족이 인도의 고대 승려 계급인 브라만들에게 천치창조에 관한 지식이며 문명 세계의 과학과 예술을 전수해 주었다는 것은 인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나가족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다니바족으로 불리게 된 인도의 마야 민족은 아리안족이 인도에 등장하기 수천 년 전에 어머니 나라로부터 인도로 건너왔다. 인도의 브라만들과 나가족은 창조주의 상징으로 일곱 머리 뱀의 표상을 사용했다. 뱀의 형상 대신 인간의 형상이 사용된 것은 어떤 특별한 창조에 관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과학자들은 한때 유럽에서 이집트로 눈을 돌려 이집트를 문명의 어머니라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수많은 고대의 기록을 보면 이집트 땅을 처음 밟은 것은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에서 온 이주민들이었으며 ‘어머니 나라의 학문과 문명을 가지고 왔다’고 나와 있다. 뿐만 아니라 기록 대다수는 고대 이집트인들에 의해 직접 씌어진 것이다. 슐리이만이 밝힌 바와 같이 위대한 이집트의 문명은 어머니 나라로부터의 지원이 끊기면서 기울어 갔다. ‘거룩한 영감의 책’에는 생명의 실체와 그 기원, 생명을 지배하는 힘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5만여 년 전에 씌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는 오늘날 과학자들이 이른바 電子라 일컫는 힘의 본성과 그 기원, 힘의 작용 방식, 힘의 역할과 역할이 다한 뒤의 마지막 소멸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정보가 들어 있다. 북아메리카에는 지질학적 연대로 따져 볼 때 빙하기를 수만 년 거슬러 올라가 제3기에 존재했던 고도의 문명인들이 남긴 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집트의 ‘거룩한 신비의 책’에는 이른바 빙하기라는 것이 무엇이었으며 어떤 연유로 그것이 발생했는가 하는 설명과 함께 빙하기에 관한 모든 과학적 해설이 실려 있다. 대다수의 북아메리카 유적은 서부 지역의 거대한 산맥이 평원을 뚫고 솟아오르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암굴 거주민과 오늘날의 인디언이 산맥이 솟아오를 무렵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예일 것이라는 가정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카리브해 연안 지역에 정착한 최초의 정착민들은 몽고계와의 혼혈 민족이었는데 몽고계의 수가 더 우세했다. 유카탄 반도와 중앙아메리카 내륙 지방에서는 백인종이 우세했다. 그들은 마야족이라 불리었으며 유럽과 소아시아, 북아프리카의 백인종은 모두 그들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각종 기록에 보면 유카탄 반도의 북부 지역에 정착한 최초의 이주민 가운데 대다수는 몽고계였으며 어쩌면 전부가 몽고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그 후 서서히 북방 계열의 몽고족 분파는 멕시코 전역과 중앙아메리카 지역을 정복해 들어갔다. 정복 과정에서 그들은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자신들의 노예로 삼았다. 그리하여 오늘날 니벤이 말한 것처럼 모든 멕시코 인디오 부족들이 몽고계의 혈통을 지니게 된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은 발굴 장소에 여러 개의 문명이 존재했던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지구상에는 아직껏 단 두 종류의 문명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하나는 인류 최초의 문명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의 위대한 현대 문명이다.



지구 역사상 산이나 산맥이 솟아오른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산맥은 지하의 가스 벨트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이오세 말기에 지구가 마지막 磁氣 균형기에 접어들기까지는 지하의 가스 벨트가 아직 완성된 형태로 자리 잡지 않은 상태였다. 가스 벨트가 완성되지 않고는 산이 솟아오를 수 없다. 그러므로 홍적세 초기까지는 지구 표면에 산이나 산맥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카탄 반도에는 비록 그 연대가 니벤의 매몰 도시들만큼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고대의 문명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유카탄 반도와 중앙아메리카는 어머니 나라 뮤 제국의 최초의 식민지가 만들어졌던 지역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식민지는 식민 제국으로 발전하여 마야 제국이라 불리게 되었다....고대의 기록을 보면 이 건물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지 않은 것도 1만 5천 년은 되었으며 다른 건물들도 대부분 1만 5천 년 이상으로 짐작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플루타크 영웅전에는 이집트의 신관들이 솔론에게 약 9천 년 전 아틀란티스 대륙이 침몰되면서 진흙과 해초로 뱃길이 막히고 건너편에 있는 나라가 대홍수를 만나 붕괴되는 바람에 서쪽 나라들과의 교신이 끊겼다고 말한 부분이 나와 있다. 솔론은 기원전 6백 년에 이집트를 방문했으며 아틀란티스는 그보다 9천 년 앞서 침몰했다. 따라서 서기 2천년에 6백년을 더하고 다시 9천년을 더하면 1만 1천 6백 년 전이라는 연대가 나오는 것이다.



유카탄 마야의 유적에 관한 권위자로는 16세기에 코르테스 휘하의 스페인 병대와 함께 이곳에 왔던 란다 주교가 있다. 란다 주교는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 쓴 자신의 저서 ‘유카탄 견문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야 제국의 신관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과학과 지식의 일부를 전수해 줄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썼다.....그들은 자신들의 조국의 초기 역사와 그들이 치밀하게 지내거나 전쟁을 했던 다른 민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는 책을 가지고 있었다.....이 책들에는 다른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과 여러 차례의 전쟁, 홍수, 전염병, 역병, 기아 및 그 밖의 다른 중요한 사건들에 관한 완벽한 기록이 들어 있다...’ 란다 주교는 수천 권에 이르는 이 책들과 함께 양피지에 기록된 스물 입곱 개의 거대한 고사본을 모두 불살라 버렸다. 그는 또한 5천 개의 조상과 197개의 꽃병을 부숴 버렸다.



과테말라의 口碑 전설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첫 주민이었던 금발의 백인종에 관한 가장 명확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과테말라에는 케트살의 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테말라의 구비 전설은 다음과 같다. ‘케트살콰틀 왕은 아주 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종들과 함께 거무스레한 피부의 침략자들에게 정복당했다. 그러나 그는 포로가 되어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며 항복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배에 태울 수 있는 한 많은 백성을 태우고 해 뜨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백성들과 함께 멀리 떨어진 육지에 닿아 그곳에 정착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번영을 누리며 위대한 민족이 되었다.’.....케트살은 오늘날 과테말라의 國鳥이다. 과테말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백인종 왕이었던 케트살콰틀을 기념하여 새에게 케트살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새가 케트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케트살콰틀 왕과 마찬가지로 사람 손에 붙들려 갇혀서는 살 수 없는 생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태평양 상에 솟아올라 있는 대부분의 섬들은 해면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오늘날 과학자들 사이에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이성을 지니지 않은 짐승에서 야만인의 상태를 거쳐 차츰 문명인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만의 풍습이 문명으로부터 발생된 것이지 야만 상태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비단 나 하나뿐이 아니다. 문명이 야만 상태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야만인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훔볼트 남작은 아마존 강과 오리노코 강 유역에서 만난 미개한 원주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솔직히 시인했다. ‘그들을 갈고 다듬어 오늘의 인류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가 이러한 상태로부터 발전한 존재들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 가련한 존재들은 사멸한 종족 가운데 살아남아 오늘의 상태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자연 속에 방치된 인간은 운명의 손에 자신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럴 때 그에게 주어지는 운명이란 곧 죽음을 뜻한다.’ 홀로 남겨진 야만인은 자신의 위치를 박차고 일어서지 못한다. 그는 현재의 위치로 전락한 것이며 또 여전히 전락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내면에 어떤 발전적인 변화를 일게 하기 위해서는 문명 세계와의 접촉이 필요하다. 야만인이 문명 세계와 접촉을 갖게 되면 문명을 흡수하여 개화되거나 아니면 문명의 악한 면만을 취하여 자신이 지니고 있던 야만적 악습에 그것을 더해 더욱 난폭해지고 더욱 미개한 상태로 전락해 가거나 하는 두 경우 중의 하나가 일어난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그 종족은 더욱 빨리 사멸되는 것이다.



위구르족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리안족의 선조이다. 인도와 중국에는 산들의 융기에 관한 구비 전설이 전해 온다. 그 전설 속에는 造山 활동의 와중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며 엄청난 지각 변동 후 산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남아프리카 줄루족 사이에는 북쪽에서 산들이 솟아오를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는 구비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남아메리카의 티이후아나코는 도시 전체가 들어 올려져 현재 안데스의 2대 산맥 사이에 있는 거대한 고원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고고학자들 사이에 너무나도 유명한 티티카카 호반의 거대한 문에 새겨진 비문의 내용에 들어 있다. 대부분의 산지 지형을 가진 나라들에는 산맥의 융기에 관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막스 뮐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앙이란 감성이나 이성에 의존하지 않고, 아니 감성이나 이성을 초월하여 각기 다른 이름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신의 존재를 이해하는 정신적 능력이다. 그런 능력이 없이는 어떠한 신앙 행위도, 심지어 가장 낮은 수준의 우상 숭배나 미신 행위조차도 불가능하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든 종교가 감지할 수 없는 것을 감지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자 말로 할 수 없는 절대자를 향한 연모, 신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자 하는 영혼의 신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뮐러는 자신의 저서 ‘종교법의 기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대 여러 나라들의 구비 전설을 보면 당시에 사람들은 종교적 법률의 제정자는 유한한 생명을 지닌 보통 사람들과 달리 신과 어떤 특별한 친분 관계를 지녀야 한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오도루스 시클루스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에 보면 이집트 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법률이 헤르메스에 의해 므네비스에게 전해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크레타 섬 사람들은 미노스 왕이 제우스 신에게서 법률의 초안을 받아 왔다고 믿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리쿠르구스가 아폴로 신에게서 법률을 받았다고 생각했으며 아리아족은 자트라우스테스가 성령을 통해 戒名을 받았다고 믿었다. 가텔에 의하면 자몰스키스는 헤스티아 여신에게서 법률을 받았다고 하며 유태인들은 모세가 여호와 신에게서 계명을 받았다고 믿었다(어머니 나라의 ’일곱 가지 거룩한 영감의 책‘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이 믿음의 원천이다). 그후 이 종족들은 여러 분파로 나뉘어 각기 다른 언어와 종교, 국가적 정서를 지니게 되었다. 고대 인도와 그리스, 이탈리아, 독일 등지의 신화에 나오는 신은 이름이 같았다.



고대의 기록들을 보면 기원전 2천 년 무렵에는 전 세계의 종교가 타락하여 심지어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까지 여러 곳에서 자행되었다.



천지창조와 인간의 창조에 관한 신앙은 예로부터 인간의 정신 속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천지창조의 개념은 그것이 선사시대의 현자가 가졌던 것이건 근대의 철학자가 가졌던 개념이건 아니면 현대의 식인종이 가지고 있는 것이건 관계없이 본질적으로는 전부 동일한 것이다.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이야기하고 있는 요점은 전부 똑같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개념들은 전부 동일한 기원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주 먼 태고로부터 뱀은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신성한 지혜의 화신으로 추앙되었다....뱀에 관한 신화나 이야기, 전설 및 구비 전설은 참으로 무수히 많다. 뱀이 한때 모든 고대인들로부터 추앙받는 존재였으며 따라서 뱀에 관한 어떤 전설이나 근거가 되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유비세우스의 말에 의하면 이집트 사람들은 창조주를 Kneph라고 불렀으며 뱀을 그 표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고대인들이 뱀을 그토록 숭상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뱀은 곧 창조주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마야족은 조각품들에 만물을 지어낸 창조주를 뱀이 몸을 둥글게 똬리 틀어 보호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냈다. 힌두족의 ‘마나바 달마사스트라’라는 책에는 뱀이 창조주로 묘사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힌두의 책인 ‘아이타레야 브라마나’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려 있다. ‘뱀들의 여왕인 사르파 라즈니는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어머니이다.....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인 카이샤는 창조주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마야족은 창조주를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뱀 ‘Ah-ac-chapat’로 상징했다. 키체족의 성전인 포폴 부에는 ‘창조주이자 지은이이며 지배자인 깃털 달린 뱀’이라는 말이 나온다....고대인들이 창조주에 대해 그토록 많은 표상을 사용했던 것은 자신들이 창조주의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있는 자격을 갖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창조주를 말할 때는 반드시 ‘이름 없는 존재’라는 표현을 썼다. 또한 창조주를 상징하는 다양한 표상들은 창조주의 여러 가지 은혜를 나타냈다.



고대의 신전들에서 행해졌던 모든 종교 의식과 제례 의식은 저술가들이 흔히 생각하듯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이 마지막에 이르러 저 세상으로 떠날 때가 되었을 때 두려움 없이 맑은 의식으로 죽을 수 있도록 완벽함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삶을 상징했다. 고대의 종교 의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이 무엇이며 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고자 했으며 인간이 부족함 없는 존재가 되었을 때 누리게 될 영광을 상징하고자 했던 것이다.



모세는 이집트의 상형 문자와 종교 문자로 성서를 썼다. 나는 히브리 학자들로부터 모세가 썼던 구약 성서가 일부는 점토판에 새겨져 있었고 일부는 파피루스 종이 위에 씌어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를 벗어나고 나서 8백년의 세월이 흐른 뒤 에스라는 동료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민족사와 관련된 사실이 들어 있는 점토판과 각종 기록들을 샅샅이 모아 책으로 엮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의 성서가 되었다. 모세가 쓴 글은 이집트의 상형 문자로 되어 있었다. 에스라와 그의 동료들 가운데 모세가 썼던 이집트 문자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면 그것을 히브리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토록 많은 오류가 빚어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뛰어난 학식을 지닌 스승만이 모세가 썼던 이집트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에스라와 그의 동료들은 그처럼 뛰어난 스승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집트 언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번역해 놓은 성서의 내용과 이집트나 칼데아, 힌두, 마야 제국에서 발견된 성서의 원본 기록을 비교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모세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의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것을 번역한 사람들은 그의 기록 가운데 많은 부분을 터무니없이 변질시켜 버린 것이다. 모세는 당시에 유행하던 상징적인 문투를 사용했던 반면 그것을 번역한 사람들은 상징적이 표현을 전부 사실적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들이 번역한 내용 가운데 절반은 모세가 기록한 내용과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집트의 상형 문자가 나타나자 그들은 사실적인 역사에 신화를 갖다 붙였던 것이다. 에덴동산의 위치 또한 그들이 만들어 낸 신화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모세는 최초의 성서를 이집트의 사원 기록을 토대로 하여 썼던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그 기록은 나칼들이 어머니 나라로부터 버마와 인도를 거쳐 이집트로 가져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집트의 사원 기록은 어머니 나라 뮤 제국의 ‘일곱 가지 거룩한 영감의 책’의 사본이었다. 그것은 점토판에 새겨져 있었으며 창조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에덴동산에 관한 전설과 ‘대홍수’, 마지막 지각 변동에 의한 재앙, 산맥의 융기 같은 내용은 그 후에 쓴 것이다. 모세는 이 기록들을 베껴 쓰면서 한 치의 오류도 범하지 않고 원본과 다름없는 완벽한 사본을 완성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8백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 고대의 秘敎 문자로 썼던 이집트의 사원 기록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히브리어 번역이 시도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들어낸 번역본과 원본의 내용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일종의 산짐승이나 선사시대 이전에 살고 있던 원숭이의 자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원숭이의 후예이자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발달된 수준의 원숭이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각종 기록이며 유적들의 질과 완벽성을 근거로 인간이 제3기 후반에 고도의 문명을 지니고 지구상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했다. 이것은 곧 인간이 제3기 말기 이전에 이미 아주 오랜 세월을 지구상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지상에 출현한 것은 인간을 닮은 원숭이가 최초로 지상에 출현한 시기와 맞먹을 정도로 오래된 일일 것임에 틀림없다. 나칼의 점토판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지만 그래도 만약 진화가 가능한 것이라면 반대의 경우 또한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원숭이가 인간으로부터 역진화하여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며 오늘날 누군가가 자신들의 유전자를 가지고 원숭이를 만들고 있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런 성향은 이미 마야와 힌두, 이집트의 기록들에 나와 있는 것이며 따라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나칼의 점토판에 기록되어 있듯이 인간은 모든 생명체 가운데 ‘가장 복잡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가장 완벽한 형태의 생명체’로서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창조된 것이다.



과학이란 본질적으로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면 위대한 창조주의 힘과 신비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과학은 신앙의 쌍둥이 자매와 같은 존재이다.....과학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가 살고 있는 점토로 빚은 육체의 집 속에 영원한 생명이 깃들어 있으며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전부 신의 손길이 미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또한 무엇보다 과학은 영혼이 권하는 바를 따라 행하면 영원한 영광과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예수와 싯달타는 둘 다 자신들이 ‘누구나가 될 수 있는 존재일 뿐’이라고 말했다....육체를 이루고 있는 화학 원소의 혼합물이 이윽고 분해되고 이 분해 과정을 통해 영혼이 밖을 빠져 나가게 된다......육체를 이루고 있는 원소들의 종착점을 우린 알고 있다. 영혼 또한 원소들과 마찬가지로 사멸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모든 화학 원소의 혼합물들이 이윽고는 분해되고 분리되어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가 처음 왔던 곳으로 다시 가게 된다는 것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원소들은 그 굴레로부터 영혼을 풀어 놓으며 원소들과 마찬가지로 성스러운 법칙의 지배를 받는 영혼 또한 처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위대한 원천’으로부터 왔던 인간 영혼의 영광스러운 귀결은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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