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이슬람 영성의 세계> 나는 하느님이다 (박현도) 본문
<이슬람 영성의 세계> 나는 하느님이다 (박현도)
育士道(육사도)|2005.04.19 06:52
통권 60호【공동선 강론】『 나는 하느님이다 』 - 박현도 -
<<이슬람 영성의 세계>>
나는 하느님이다
마음의 눈으로 나의 주님을 뵙고 그분께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너!”
10세기 수피 할라쥬 (858-922)의 말이다. 마음의 눈으로 뵌 주님이 할라쥬에게 당신이 바
로 다름 아닌 할라쥬라고 하신다. 사이비 종교에서나 가능할 법한 말로 들린다. 할라쥬 네
가 하느님이라고? 미친 사람이 하는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술 취한 사람의 주정
으로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가능한 말인가. 이슬람 경전 꾸르안의 표현을 빌자면 “음식
을 먹고 사는” 할라쥬, 인간인 네가 하느님이라는 것이! 실로 그러했다. 할라쥬가 살았던
시대 사람들은 그의 말을 신성 모독으로 밖에 알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할라쥬는 더 나아
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진리다!
엄청난 말이다. 그가 말한 “진리”란 아랍어에서 하느님의 99가지 이름 중 하나다. 그러니
그가 한 말은 결국 “나는 하느님이다”라는 것이다. 신성모독이다. 마땅히 죽여야 한다. 그
렇다. 할라쥬 시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손발을 자르고 십자가
에 매달고 참수했다. 할라쥬는 그렇게 사라져갔다. 예수처럼 신성모독 죄로 922년 바그다
드에서 처형당한 것이다.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사랑의 감정을 알 리 없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세상,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고 그리는 마음, 내일 다시 만날 것이면서도 당
장 헤어지기 아쉬워 애타는 심정. 사랑을 해 본 사람이 아니면 이러한 매혹적이고도 떨리
는 사랑의 느낌을 알 수 없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
다. 종교체험도 이러한 것이리라. 하느님 체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체험이 안겨다 주
는 그 엄청난 기쁨의 세계를 알 수 있으랴. 하느님 체험을 한 후 할라쥬는 전 세상이 하느
님으로 가득 차 있는 내면의 체험 세계를 “나는 하느님이다”라는 상징적 언어로 밖에 이야
기 할 수밖에 없었다. 할라쥬 자신이 하느님께 완전히 취하고 몰입되어 자신의 자아가 소
멸되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그러나 창조주와 피조물의 엄격한 구분을 강조
하는 이슬람 법학자나 신학자들에게 이러한 상징이 상징으로 받아들여 질 리 만무하였
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 하느님께서 꾸르안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통해 계시
하신 이슬람법을 따라 사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길일 뿐, 감히 하느님을 체험하여 일체
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신성모독일 뿐이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이해하
지 못한 것처럼, 이슬람 종교지도자들 역시 할라쥬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초월자의 초월
성만을 강조한 탓이다. 초월자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 삶에도 내재하신 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에게 예수나 할라쥬 두 사람은 모두 다 신성을 모독하고 훼
손하는 중죄인일 뿐이다.
이슬람 영성가들, 즉 수피들은 초월성과 내재성을 지니신 하느님을 체험한다. 수피들에
게 하느님을 체험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완전히 하느님 안에 소멸된다는 것을 뜻한다.
완전히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그러한 경지를 말한다. 하느님 안에 자신이 완전히 소멸될
뿐만 아니라 소멸된다는 사실 자체도 소멸되는 그러한 경지. 실로 절대적 체험의 경지다.
이를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상징적 언어밖에 없다. 법학자나 신학자들은 하느님에 대해 이
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느님은 이러한 분이시다라는 이야기를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이는 비단 이슬람 뿐만은 아니다. 당장 근처 교회나 성당에 가보라. 그리스도
인들은 저마다 하느님에 대해 참 많이 안다.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자애로우시고 등등
하느님을 수 만 가지 수식어로 표현한다. 그러나 수피들은 다르다. 그들은 지성적, 논리
적 언어로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들은 체험으로 말한다. 왜냐하면 하느님
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수피들은 그분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통해 진정한 진리의 세계를 맛보고 이를 상징적 언어로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말은 결
코 이성적으로 알아들어서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체험의 언어다. 사정이 이러하니 할라쥬
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를 신성모독죄로 옭아매어 죽일 수밖에 없었으
리라.
타죽을 줄 알면서도 불빛에 몰려드는 불나방들. 수피들은 자신들을 불나방에 비유하였
다. 불빛은 바로 하느님. 할라쥬는 불나방이 불빛과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말한 것이었다.
하느님 안에서 타죽는 것이다. 철저히 자신이 소멸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그렇게 일치하
는 것이다. 말로 할 수 없는 그 진리를 체험하고 이를 상징으로 말했지만 알아들을 마음
의 귀가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는 죽어야만 했던 것이다. 또한 정해진 종교의 길을 따르
지 않고 할라쥬처럼 체험을 통해 진정한 종교 내면을 사람들이 발견한다면 권위와 관습
의 힘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층은 얼마나 당혹스럽고 위협감을 느꼈을까. 이래저래
할라쥬는 세상을 떠나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유일하신 분을 유일하게 느끼는 것, 그분을
완전히 내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던 할라쥬에게 죽음은 무서운 것이 아니었
다. 그러했기에 그는 “친구들이여, 나를 죽여라, 죽음 속에 삶이 있으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하느님을 찾아 영적인 여행을 떠난 연인에게는 하느님을 하나로 만
드는 것, 즉, 체험으로 그분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할라쥬를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느님을 전존재로 느끼고 체험하는 사람들 - 불나방 뿐. 그들의 언어로 다
시 할라쥬의 말을 새겨 들어본다. 300여년 후 수피 루미 (1207-1273)는 그를 이렇게 표현
하였다.
새벽 동트기 전 이른 아침,
사랑하는 연인들이 깨어
물을 마십니다.
그녀가 묻습니다, 저를 사랑하나요, 아니면 당신 자신을 더 사랑하나요,
진실을 이야기해주세요.
그는 말합니다, 제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저는 떠오르는 해에 비추는 루비와 같죠.
그 루비는 보석입니까, 아니면 붉게 물든 세상입니까?
루비는 햇빛을 거부하지 못하죠.
할라쥬가 나는 진리요라고 말하며 진실을 이야기 한 것과 같아요.
루비와 떠오르는 해는 하나랍니다.
마음의 귀가 있는 사람만 알아들을지어다.
박현도 / 종교학자로 현재 서강대에서 강의 하고 있다.
'배움과 깨달음 > 역사와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토학자 장계황 박사, '손에 잡히는 통일론' 장안의 (0) | 2021.08.22 |
---|---|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이셨던 최창조교수의 풍수 (0) | 2021.08.11 |
[칼럼] 21세기 신시개천 연해주를 열다| (0) | 2021.08.02 |
UFO의 모선에 끌어올려진 선지자 엘리야 (0) | 2021.07.27 |
우주의 언어와 우주 법칙 / 수학적 우주- 다중우주론 (0) | 2021.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