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이봉창의 기백 본문
한효섭 칼럼
7월19일! 죽음 앞에서도 일본법정을 향해 호령하던 이봉창의 기백이 한국인의 정신이다.
“나는 너희 임금을 상대로 하는 사람이거늘 어찌 너희들이 감히 내게 무례 시 하느냐.”
이봉창은 1932년 7월 19일 배심원 공판장에서 재판을 받을 때 한마디 호령만 내뱉았을 뿐 재판을 거부했다. 자신의 행동에는 떳떳함과 당당함, 그리고 올바름밖에 없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법원은 그해 10월 방청인도 없는 재판에서 저희끼리 판결문을 작성하여 사형선고를 내리고 1932년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형을 집행했다.
이봉창은 온갖 고문과 고통 속에서 죽음의 문턱에 닿는 순간까지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비굴하게 굴지 않고 대한민국독립을 부르짖고 애국하면서 뜨거운 죽음을 선택했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호령하던 1932년 7월 19일 이봉창의 모습이 선하게 스쳐가며 가슴을 뜨겁게 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혼란과 대립 속에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노라면 오히려 그때의 조상들의 모습과 행동이 그리워진다.
이봉창은 1900년에 서울에서 태어나서 1932년 꽃다운 청춘시절에 아무런 죄도 없이 오로지 가난한 한국에 태어난 운명 속에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나라와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신념으로 애국심 하나만을 남긴 채 나라와 함께 모든 것을 바쳐 죽음과 동행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19살에 남만(南滿)철도 회사 운전견습생으로 들어갔다가 24년에 사직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오사카 등지를 방랑했다. 1931년 상해로 가서 김구에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간 쾌락이라는 것을 대강 맛을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서 독립 사업에 몸을 바칠 각오로 상해에 왔습니다.”라며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히로히토 일왕(현 나루히토 일왕의 조부)을 암살하기로 결심하고 그해 겨울 다시 일본으로 갔다. 1932년 1월 8일 일왕이 만주국 황제 부의와 도쿄 교외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觀兵式)을 마치고 돌아갈 때 사쿠라다문(櫻田門)에서 수류탄을 던졌다. 말이 다치고 궁내 대신의 마차가 뒤집어 졌으나 히로히토는 다치지 않아 거사는 실패했다.
일왕 암살에는 실패 했지만 일본인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한국인의 독립의지와 기백을 온 천하에 알리고 죽는 순간까지 일본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했던 이봉창의 정신이 바로 한국인의 정신이며 그들의 투쟁과 희생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하였다. 그 당시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나라를 팔아먹는 경쟁을 하였던 매국친일파 노론과 일진회의 후손들이 광복 후에도 권력을 장악하고 독립 운동가를 잡아 죽이는 비극이 오늘의 한국에서 잘 먹고 잘 사는 현실이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온갖 고통과 수모 속에 핍박을 받고 있으니 과연 오늘을 진정한 광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매국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그들이 오히려 활개를 치고 있으니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싫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고 짐승과 벌레가 아니고 사람이라면 반성과 참회와 성찰로서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솔선수범하고 겸허한 자세로 헌신하는 모습으로 참회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믿는다. 매국친일파의 후손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제발 자숙하고 반성하며 매국친일파를 부모로 둔 덕분으로 호의호식 했으면 이제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위하여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앞장서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우리 모두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기를 바란다. 과오를 저지른 잘못보다 뉘우치지 못하고 반성하고 참회하지 않는 죄가 더 크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못하고 소와 돼지같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인간의 도리를 하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 다함께 하나로 뭉치고 단합하여 사람답게 살자고 호소한다. 언제나 강자에게 붙어 비겁하게 사는 것보다 이봉창처럼 당당하고 사람답게 사는 삶이 진정한 한국 한국인의 삶이고 한얼홍익인간정신으로 사는 삶이고 참인생이라고 해두고 싶다. 한효섭.
7월19일! 죽음 앞에서도 일본법정을 향해 호령하던 이봉창의 기백이 한국인의 정신이다.
“나는 너희 임금을 상대로 하는 사람이거늘 어찌 너희들이 감히 내게 무례 시 하느냐.”
이봉창은 1932년 7월 19일 배심원 공판장에서 재판을 받을 때 한마디 호령만 내뱉았을 뿐 재판을 거부했다. 자신의 행동에는 떳떳함과 당당함, 그리고 올바름밖에 없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법원은 그해 10월 방청인도 없는 재판에서 저희끼리 판결문을 작성하여 사형선고를 내리고 1932년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형을 집행했다.
이봉창은 온갖 고문과 고통 속에서 죽음의 문턱에 닿는 순간까지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비굴하게 굴지 않고 대한민국독립을 부르짖고 애국하면서 뜨거운 죽음을 선택했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호령하던 1932년 7월 19일 이봉창의 모습이 선하게 스쳐가며 가슴을 뜨겁게 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혼란과 대립 속에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노라면 오히려 그때의 조상들의 모습과 행동이 그리워진다.
이봉창은 1900년에 서울에서 태어나서 1932년 꽃다운 청춘시절에 아무런 죄도 없이 오로지 가난한 한국에 태어난 운명 속에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나라와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신념으로 애국심 하나만을 남긴 채 나라와 함께 모든 것을 바쳐 죽음과 동행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19살에 남만(南滿)철도 회사 운전견습생으로 들어갔다가 24년에 사직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오사카 등지를 방랑했다. 1931년 상해로 가서 김구에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간 쾌락이라는 것을 대강 맛을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서 독립 사업에 몸을 바칠 각오로 상해에 왔습니다.”라며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히로히토 일왕(현 나루히토 일왕의 조부)을 암살하기로 결심하고 그해 겨울 다시 일본으로 갔다. 1932년 1월 8일 일왕이 만주국 황제 부의와 도쿄 교외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觀兵式)을 마치고 돌아갈 때 사쿠라다문(櫻田門)에서 수류탄을 던졌다. 말이 다치고 궁내 대신의 마차가 뒤집어 졌으나 히로히토는 다치지 않아 거사는 실패했다.
일왕 암살에는 실패 했지만 일본인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한국인의 독립의지와 기백을 온 천하에 알리고 죽는 순간까지 일본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했던 이봉창의 정신이 바로 한국인의 정신이며 그들의 투쟁과 희생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하였다. 그 당시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나라를 팔아먹는 경쟁을 하였던 매국친일파 노론과 일진회의 후손들이 광복 후에도 권력을 장악하고 독립 운동가를 잡아 죽이는 비극이 오늘의 한국에서 잘 먹고 잘 사는 현실이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온갖 고통과 수모 속에 핍박을 받고 있으니 과연 오늘을 진정한 광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매국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그들이 오히려 활개를 치고 있으니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싫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고 짐승과 벌레가 아니고 사람이라면 반성과 참회와 성찰로서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솔선수범하고 겸허한 자세로 헌신하는 모습으로 참회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믿는다. 매국친일파의 후손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제발 자숙하고 반성하며 매국친일파를 부모로 둔 덕분으로 호의호식 했으면 이제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위하여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앞장서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우리 모두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기를 바란다. 과오를 저지른 잘못보다 뉘우치지 못하고 반성하고 참회하지 않는 죄가 더 크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못하고 소와 돼지같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인간의 도리를 하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 다함께 하나로 뭉치고 단합하여 사람답게 살자고 호소한다. 언제나 강자에게 붙어 비겁하게 사는 것보다 이봉창처럼 당당하고 사람답게 사는 삶이 진정한 한국 한국인의 삶이고 한얼홍익인간정신으로 사는 삶이고 참인생이라고 해두고 싶다. 한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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