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우리는 고조선·고구려·발해 역사를 어떻게 인식했나/한중 역사전쟁 키워드…‘고조선 고구려사 연구’" 본문
우리겨레력사와 문화/우리 겨레 력사
우리는 고조선·고구려·발해 역사를 어떻게 인식했나/한중 역사전쟁 키워드…‘고조선 고구려사 연구’"
야발
우리는 고조선·고구려·발해 역사를 어떻게 인식했나
송고시간2020-04-23 06:30
박상현 기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 고대사 계승 인식' 출간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제강점기 식민사관과 중국 정부가 추진한 동북공정(東北工程)은 한국사를 '한반도 안 역사'로 간주했다. 조선시대에 사실상 획정된 국경 너머에서 일어난 일은 한국사가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우리는 고대에 만주를 지배한 고조선이 한국 최초 국가이며, 고구려는 신라·백제와 삼국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와 북쪽 지역에 들어선 발해를 묶어 중세를 남북국시대라고 부르는 견해도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연구자들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고조선·고구려·발해 역사 인식을 분석한 책 '한국고대사 계승 인식'을 펴냈다. 1권은 전근대편, 2권은 근현대편이다.
전근대편에는 고조선 역사지리에 대한 조선시대 사람들 인식, 조선시대 '영사악부'(詠史樂府)에 보이는 단군과 기자, '발해고'를 통해 본 유득공의 발해사 인식, 다산 정약용의 조선 강역과 고대사 인식에 관한 논고를 수록했다. 중국 당나라와 일본 에도시대 한국 고대사 인식을 다룬 글도 실었다.
근현대편은 인물을 중심으로 고대사 인식을 살폈다. 박은식, 신채호, 계봉우, 안확, 장도빈, 정인보, 황의돈 사관을 소개했다. 근현대 한국과 중국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고구려·발해 역사 인식도 고찰했다.
편찬 책임자인 임상선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은 서문에서 "만주와 한반도 북부 지역은 고조선에 이어 고구려, 발해로 연결됐다"며 "고려는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고 발해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조선은 고조선을 우리 역사 시작으로 인식하고 고구려 발해 역사를 정리했다"고 밝혔다.
이어 "만선사관과 동북공정은 약 100년의 차이가 있음에도 한국사에서 외부 세계 영향을 과장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며 "우리 사학계는 중국과 일본의 자국사 합리화를 위한 고대사 왜곡과 남북 간 역사 해석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1권 288쪽, 2권 378쪽. 각권 1만5천원.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20/04/23 06:30 송고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00422159000005?input=1179m
"[인문사회]한중 역사전쟁 키워드…‘고조선 고구려사 연구’"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07.03.03 05:50 | 최종수정 2007.03.03 05:50
[동아일보]
◇고조선 고구려사 연구/조법종 지음/574쪽·3만 원·신서원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동이(東夷)족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동이족의 역사를 모두 우리 역사의 확장된 지평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 전국시대 이전 중국에 흡수된 산둥(山東)반도 일대의 동이와 한대 이후로도 독자성을 유지한 랴오둥(遼東)반도,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의 동이를 구별하는 것이다.
조법종(한국고대사) 우석대 교수가 펴낸 이 책은 바로 이런 동이관의 차이가 동북공정을 둘러싸고 어떤 역설적 관계에 놓였는가를 보여 준다.
동이는 이미 그 표현에서 드러나듯 철저히 중국 중심적 세계관의 산물이다. 중국의 동쪽에 있는 종족을 뜻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비문이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찾아보면 고구려나 신라는 서로를 동이라 부르면서도 스스로는 동이와 차별적 존재로 인식했다. 이는 중국과 별도로 천하를 인식하면서 자신의 복속세력에 대한 통칭 내지 폄훼하는 보통명사로 동이를 사용했음을 보여 준다.
동이가 우리민족의 통칭이 된 것은 중화사상에 젖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다. 순임금이 동이출신이라는 맹자 이래의 인식과 기자조선에 대한 자부심의 발로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우리민족의 범칭으로 굳어지면서 은(상)나라까지 동이족의 국가로 간주하는 재야사학의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중국사에서 중국의 영토가 계속 확장되면서 그 동쪽에 위치한 동이의 범주도 계속 바뀌어 왔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후한서' 이래 산동동이와 요동동이를 동일하게 간주해 왔다. 그러다 황하문화의 원류라는 앙소-용산문화보다 앞선 홍산-하가점하층 문화가 랴오허(遼河)유역에서 발굴되자 동이가 중국민족 형성의 양대 축이라는 요하문명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기존 동이관과 결부돼 산동동이뿐 아니라 그 연장선에 있는 요동동이까지 중국사로 포괄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반대로 한국에선 동이와 우리민족을 구별해 오다가 중화사상에 젖은 조선시대 이래 이를 동일시하는 인식전환을 겪으면서 역설적으로 하-은-주로 이어지는 중국사의 전통까지 한국 고대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결국 산동동이와 요동동이의 관계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한중 역사의 관건이 되는 셈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media.daum.net/culture/book/view.html?cateid=1022&newsid=20070303055013724&cp=donga
우리는 고조선·고구려·발해 역사를 어떻게 인식했나/한중 역사전쟁 키워드…‘고조선 고구려사 연구’"
야발
우리는 고조선·고구려·발해 역사를 어떻게 인식했나
송고시간2020-04-23 06:30
박상현 기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 고대사 계승 인식' 출간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제강점기 식민사관과 중국 정부가 추진한 동북공정(東北工程)은 한국사를 '한반도 안 역사'로 간주했다. 조선시대에 사실상 획정된 국경 너머에서 일어난 일은 한국사가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우리는 고대에 만주를 지배한 고조선이 한국 최초 국가이며, 고구려는 신라·백제와 삼국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와 북쪽 지역에 들어선 발해를 묶어 중세를 남북국시대라고 부르는 견해도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연구자들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고조선·고구려·발해 역사 인식을 분석한 책 '한국고대사 계승 인식'을 펴냈다. 1권은 전근대편, 2권은 근현대편이다.
전근대편에는 고조선 역사지리에 대한 조선시대 사람들 인식, 조선시대 '영사악부'(詠史樂府)에 보이는 단군과 기자, '발해고'를 통해 본 유득공의 발해사 인식, 다산 정약용의 조선 강역과 고대사 인식에 관한 논고를 수록했다. 중국 당나라와 일본 에도시대 한국 고대사 인식을 다룬 글도 실었다.
근현대편은 인물을 중심으로 고대사 인식을 살폈다. 박은식, 신채호, 계봉우, 안확, 장도빈, 정인보, 황의돈 사관을 소개했다. 근현대 한국과 중국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고구려·발해 역사 인식도 고찰했다.
편찬 책임자인 임상선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은 서문에서 "만주와 한반도 북부 지역은 고조선에 이어 고구려, 발해로 연결됐다"며 "고려는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고 발해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조선은 고조선을 우리 역사 시작으로 인식하고 고구려 발해 역사를 정리했다"고 밝혔다.
이어 "만선사관과 동북공정은 약 100년의 차이가 있음에도 한국사에서 외부 세계 영향을 과장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며 "우리 사학계는 중국과 일본의 자국사 합리화를 위한 고대사 왜곡과 남북 간 역사 해석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1권 288쪽, 2권 378쪽. 각권 1만5천원.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20/04/23 06:30 송고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00422159000005?input=1179m
"[인문사회]한중 역사전쟁 키워드…‘고조선 고구려사 연구’"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07.03.03 05:50 | 최종수정 2007.03.03 05:50
[동아일보]
◇고조선 고구려사 연구/조법종 지음/574쪽·3만 원·신서원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동이(東夷)족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동이족의 역사를 모두 우리 역사의 확장된 지평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 전국시대 이전 중국에 흡수된 산둥(山東)반도 일대의 동이와 한대 이후로도 독자성을 유지한 랴오둥(遼東)반도,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의 동이를 구별하는 것이다.
조법종(한국고대사) 우석대 교수가 펴낸 이 책은 바로 이런 동이관의 차이가 동북공정을 둘러싸고 어떤 역설적 관계에 놓였는가를 보여 준다.
동이는 이미 그 표현에서 드러나듯 철저히 중국 중심적 세계관의 산물이다. 중국의 동쪽에 있는 종족을 뜻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비문이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찾아보면 고구려나 신라는 서로를 동이라 부르면서도 스스로는 동이와 차별적 존재로 인식했다. 이는 중국과 별도로 천하를 인식하면서 자신의 복속세력에 대한 통칭 내지 폄훼하는 보통명사로 동이를 사용했음을 보여 준다.
동이가 우리민족의 통칭이 된 것은 중화사상에 젖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다. 순임금이 동이출신이라는 맹자 이래의 인식과 기자조선에 대한 자부심의 발로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우리민족의 범칭으로 굳어지면서 은(상)나라까지 동이족의 국가로 간주하는 재야사학의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중국사에서 중국의 영토가 계속 확장되면서 그 동쪽에 위치한 동이의 범주도 계속 바뀌어 왔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후한서' 이래 산동동이와 요동동이를 동일하게 간주해 왔다. 그러다 황하문화의 원류라는 앙소-용산문화보다 앞선 홍산-하가점하층 문화가 랴오허(遼河)유역에서 발굴되자 동이가 중국민족 형성의 양대 축이라는 요하문명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기존 동이관과 결부돼 산동동이뿐 아니라 그 연장선에 있는 요동동이까지 중국사로 포괄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반대로 한국에선 동이와 우리민족을 구별해 오다가 중화사상에 젖은 조선시대 이래 이를 동일시하는 인식전환을 겪으면서 역설적으로 하-은-주로 이어지는 중국사의 전통까지 한국 고대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결국 산동동이와 요동동이의 관계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한중 역사의 관건이 되는 셈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media.daum.net/culture/book/view.html?cateid=1022&newsid=20070303055013724&cp=donga
'천지인 공부 > 단군과 한민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멕시코 등 남미의 원주민은 선조들은 아스탄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0) | 2020.09.20 |
---|---|
레무리아의 기원과 역사 (0) | 2020.09.17 |
[韓國史속의 만주]동북아 고대사 전문가 송호정교수 (0) | 2020.09.13 |
동북아고대역사학회, '동북아문명과 백두산' 주제 학술대회 개최 (0) | 2020.09.13 |
[강진원 칼럼]고대 한국사 ‘올바른 역사로 복원해야!!’ (0) | 2020.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