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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다석어록- 탐(貪, 욕심)에서의 자유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다석

다석어록- 탐(貪, 욕심)에서의 자유

柏道 2020. 1. 2. 12:33

 

다석어록- 탐(貪, 욕심)에서의 자유

 

▶사람은 욕심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농사를 짓는데 심은 사람과

거두는 사람이 함께 참여한다. 심었으니 내 것이라 할 수 없고 거두었

으니 내 것이라 할 수 없다. 그저 먹고 지내겠다는 생각도 잘못이고 편

안히 먹겠다는 것도 착각이다. 사람들은 무엇이나 소용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자기의 의식주

가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다. 무한한 시간·공간에서 모든

것이 다 합하여 이루어져 대어 준 것을 우리는 받아서 산다. 우리는 여

기에 참여해서 조금만 일할 뿐이다. 자기가 다 먹고 쓰려고 그런 것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면 좀처럼 미끄러지는 일이 없을 것이

다. (1956)

 

▶가능하다고 말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가능하다면 구할 것

하나도 없다. 불가능하니까 구하고 바란다. 가능해 보겠다고 욕능(欲

能)을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사람이다. 우리가 참으로

할 수 있는 자유는 스토아 사상에서 말하는 의지의 자유만이 있다. 나

의 의지밖에 내가 자유할 수 있는 범위란 없다. 그러므로 자기의 자유

를 자기 이외의 것에서 실현하려고 하면 그것은 애당초 잘못된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인데 사람이 능욕(能欲)하려고 한다.

어떻게든지 불가능한 외물에 대해서 가능한 길을 찾으려고 한다. 공부,

장사, 수양, 심지어 신앙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할 수 있어 보이려 하며

또 능히 하고 싶어한다. 이것은 불가능에서 가능을 찾으려는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해보아야 무엇에 소용이 있는가? 요리를 먹어보면

먹고 자란 음식보다 더 맛이 있다는 것이 어디 있는가?딴 계집이 어

디가 달라서 제 아내를 두고 나쁜 그 짓을 하려는가? 우리 사람이란

것이 이같이 생긴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사기그릇 옹기가게를

보면 그 안에 들어가서 한 번 맘대로 휘두르고 싶다는 것이다. 아마 사

람에게는 본래 신경과민증의 기미가 다 있는 것 같다. 들어가서 휘둘러

보면 그것이 무엇이 좋다는 것인가?그러한 생각이야말로 잘못된 것이

다. (1956)

 

▶지.인.용(智仁勇)을 알면 남보다 더 먹어보겠다는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장관노릇을 오래 해먹자고 하면 일을 바로 하지 못한다. 미혹

하니까 그따위 어리석은 생각이 든다. 자기하나 더 먹자는 바람에 수백

명, 수천 명이 한 끼 아니면 두 끼를 굶게 생겼는데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이 나오겠는가? 값비싼 자동차를 타야 행세하는 사람이고, 화려한

옷을 입어야 위신이 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미혹해서 진리가 아

닌 데서 오는 잘못된 생각이다. 대낮에 멀정하게 미혹해서 꿈을 꾸고

환상을 보다가 돌아 버리는 일은 다 진리 아닌 데서 오는 것이다. (1956)

 

▶저녁 끼니가 없어도 천명(天命)이면 산다는 신념을 얻어야 한다. 다

도둑질을 하여도 나는 도둑질을 않겠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지성 (至

誠)이면 감천(感天)이란 말이 있다. 자성(自誠)이면 하느님께서 감동

한다. 우리는 미혹몽환광(迷惑夢幻狂)의 상태에 빠지면 안 된다. 저만

잘먹고 살겠다는 사람들, 권세 잡고 떵떵거리고 싶어하는 사람들 이들

의 이기적 행동은 죄악이다. 진리 아닌데서 나온 생각이다. 크게 조심

해야 한다. (1956)

 

▶부귀일(富貴日)이란 말은 세상 사람들이 돈과 감투만을 찾는 시대란

말이다.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아는 사람은 참을 아느냐 하면 참을 모른다.

아는 것은 부귀뿐이다. 부귀란 식색(食色)의 사회적 표현이다. 시간 ·

공간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것은 참을 아는 것이 아니다. 참이란 부귀

를 넘어서야 한다. 식색(食色)을 넘어서야 한다. 시간·공간의 상대세

계를 넘어선 사람이 양지(良知)를 지닌 사람이다. 옛 사람이 쓰던 말

에 위인불부(爲人不富)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되어야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사람과 부자를 가릴 줄 아는 것이 양지(良知)다.

사람의 본성은 사람이 되는 것이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부귀는 힘과 빛 때문에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정신

력인 얼빛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힘있고 빛나야 사람이다.

정신력의 얼빛이 어두워진 뒤에 부귀를 가지고 대신하려면 그것은 인

류 멸망의 징조다. (1956)

 

▶사람은 마땅히 참을 것 참으면서 어질게 살아야 하고 사물(事物)은

마땅히 옳게 처리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상대적 존재로 한동안 여기서

지내지 않을 수 없다. 마땅히 어질게 하고 옳게 하는 일 이것만이 대동

인(大同人)으로 사는 길이다. 먹을 것이 있고 남는데도 자꾸 더 모으

겠다고 하는 한편 마음이 바로 서면 나눠 주기도 한다. 그러니 나쁘게

가려는 마음을 참고 참아 어질게 옳게 해 나가야 사람으로서 어지간히

하느님 아버지께 가까운 자리에 갈 수 있다. 옳게 우로 올라가야 한

다. (1957)

 

▶삼독(三毒)이라는 벌레와 날마다 싸움을 해야 한다. 그 유래를 나는

모른다. 알 까닭이 없는 것이다. 이 사람이 철났을 때부터 삼독과 싸움

한 보고를 한다면 이 같은 것이다. 이 사람은 하루 한끼씩 먹으니 하루

한번씩 탐한다. 이 시험은 날마다 한 번씩 당한다. 한끼 먹기 전에는

두 끼씩 먹어 보았다. 암만해도 삼독의 하나인 탐(貪)이라는 원죄를 부

인 못 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이것이 문제이다.

   다음 남녀 관계의 그것은 몇 번 시험 당했다는 것은 본인하고 하느

님만 아는 사실이니까 발표할 수 없다. 일생에 몇 번 당해서 자식이 나

왔다. 진(瞋)은 눈부라림을 한다는 뜻이다. 노여우니까 눈을 부라린다.

눈에 노기를 버리고 노여움을 말끔히 씻어 버려야 한다. 이러한 삼독

(三毒)의 시험에서 벗어나야 사람은 바른 말(正語)을 하게 된다. 이는

모두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훨씬 일찍 삼독을 벗어 버리고 깨끗이 사

는 사람도 있고, 웬만큼 이기어 나가는 사람도 있고 또 끝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다. 삼독과는 날마다 싸워야 하고 하루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1957)

 

▶돈이나 지식도 이 몸을 위해서는 모아두지 말아야 한다. 몸을 위해

서 하는 것은 거짓이다. 몸 위해 모아두려는 생각이 있으면 맘이 비지

않는다. 가장 큰 것은 빈 것이다. 참 빈 것은 빈 것이 아니다. 반야공

관(般若空觀)은 지혜인데 공(空)에 너무 치우쳐 허무에 빠져도 못쓴

다. 빈탕한데(허공)는 니르바나(Nirvana)님이다. (1950)

 

▶몸을 위해 자꾸 모을 것 없다. 모으려고 애쓰는 것은 잘못이다. 모으

려 애쓰지 않으면 비워진다. 비워 두면 영생할 하느님의 씨(얼나)가 맘

속에서 자란다.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의 씨(얼나)로는 죽음이란 없다.

하늘에도 땅에도 죽음이란 없는 것인데 사람들이 하느님의 씨(얼나)를

깨닫지 못하여 죽음의 노예가 돼 있다. 몸나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느님의 씨로는 죽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1960)

 

▶사람이 세상에 나면 젖, 밥에 대한 탐욕으로 자라고 살아간다. 그러

다가 탐욕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된다. (1960)

 

▶탐·진 ·치(貪瞋痴)를 삼독(三毒)이라고 한다. 이 삼악(三惡)을 저

   지르면 개운치 않다. 그런데 탐·진 치 이것은 인생살이를 하는 데

   필요한 밑천이다. 삼독으로 내가 이 세상에 나왔고 먹고 자랐으며

   또 진취적이 된다. 이게 모순인데 그대로 두어야 한다.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