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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학(Adept)-1. 대사와 승천에 대하여 ( Master and Mastery ) 본문
대사학(Adept)
1. 대사와 승천에 대하여 ( Master and Mastery )
그럼 시작합니다.
대사학은 '승천 대사(Ascended Master)들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대사에는 승천한 대사가 있는가하면 아직 승천하지 못한 대사가 있습니다. ‘대사‘(Master)하면 대부분 승천 대사를 말합니다. 승천하지 않은 채로 지구상에 남아있는 대사는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 중에 하나가 초인 바바지입니다. 바바지같은 이는 특별한 목적 때문에 승천을 미루는 경우입니다. 승천 대사(Ascended Master)의 의미는 시간과 공간을 마스터한 이, 그 과정에서 자아를 터득(mastery)하고 자기 카르마의 51퍼센트 이상을 갚고, 자신의 신성 계획을 완성하고, '아앰 댓 아앰'의 현존체 속으로 승천한 이; 영(Spirit)의 영역 속에 사는 이입니다.
대사들은 인생의 목적은 바로 승천이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지구는 학교입니다. 이 지구에서 우리는 학습을 합니다. 그 배움의 최종 목적지는 승천입니다. 대사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이 지구의 학교를 먼저 졸업한 사람들입니다. 그럼 승천이란 뭐냐? 승천이란 것은 우리 영혼이 영, '아앰 프레젠스( I AM Presence )'와 재결합하여 불멸의 상태에 든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영은 Spirit 즉 아트만을 말합니다. 승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절대불변의 영(Spirit)이면서 동시에 진화하는 영혼(Soul)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자아는 영(Spirit)과 영혼(Soul)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은 불멸한 것이고 변치않는 것이지만 영혼은 진화하는 것이고 임시적인 것입니다. 영이 자신의 일부분을 물질 우주 속으로 투사한 것이 영혼입니다.
영혼은 영으로부터 나왔지만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은 물질계에서 진화하며 영으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다가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영혼은 임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불멸의 존재로 바뀌려면 영과 결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영혼의 진화의 궁극은 승천입니다. 승천은 영혼이 물질 우주에서의 자기 사명을 다하고 영과 결합하여 영구적인 존재로 바뀌는 것입니다. 부처나 도인들은 해탈한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대사들의 존재는 해탈 이후에 대한 분명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이 해탈한 이후에도 뚜렷한 개체로서 이 우주 상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승천 대사들은 여러분의 미래 모습입니다. 그렇게 되는 길 말고 여러분에게 단 한 가지 선택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개체의 완전한 소멸, 그야말로 진짜 죽음이지요. 이 지구에서 여러분은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지만 그 모든 선택은 딱 두 가지로 귀결됩니다.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 즉 영원히 존재하느냐 영원히 소멸하느냐. 즉 승천하여 대사들처럼 되느냐 아니면 이 우주 속에서 영원히 소멸하느냐 입니다. 흔히 말하는 악마의 길은 바로 영원한 소멸의 길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한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여기서 영생은 영혼이 승천의 비전을 거쳐 불멸한 존재로 바뀐 것을 말합니다. 승천을 하지 못한 영혼에겐 영생이 없습니다. 승천하기 전까지 영혼은 그저 가능성일 뿐입니다. 영혼은 그 선택 여하에 따라 불멸한 존재로 바뀔 수도 있고, 아니면 영혼의 소멸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물질 우주로 여행 나온 영혼에겐 무한정의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어진 시간과 기회가 소진되면 우주적인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것이 '최후의 심판'입니다.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 그 영혼은 소멸할 수도 있고 승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영혼이 윤회한다고 하지만 영겁까지 윤회하지는 않습니다. 승천대사들을 보면 모두가 똑같지 않습니다. 흔히 신과 하나가 되었다면 신은 오직 한 분이니까 모두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해탈을 했어도 그 개성은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개성은 흔히들 말하는 개성과는 다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개체성(individuality)을 말하는 것입니다.
개인(individual)의 의미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신이 자기를 더 분할할 수 없는 데까지 쪼갠 것이 바로 개인이란 말입니다. 즉 개인은 신의 세포라고 비유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 몸에서 각각의 세포가 독특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듯이 개개인은 신이란 전체 몸중에서 각자에게 맞는 독특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개인은 이 우주 상에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신을 표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개성입니다. 오컬트에서는 이를 모나드(Monad)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개성은 인간적 때를 말끔히 벗어난 상태라야 그 참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개성의 발현은 승천한 이후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나 석가모니 부처님, 마이트레야(미륵), 세인트 저메인같은 대사들은 승천 또는 해탈을 했습니다만 모두가 똑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우주의 본질)과 하나가 되었으니까 모두가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들의 본질은 동일하더라도 각각 뚜렷이 다른 개성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도 각각 다릅니다. 이렇게 각 개인에게 독특한 개성과 역할은 애초에 그 개체가 신이란 거대한 바다에서 분리되어 나올 때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어둠을 이긴 성자들이 '새로운 이름'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승천이후에 본래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 이름은 하느님과 받은 이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되어있지요.
그럼 어떻게 하면 승천할 수 있을까요? 승천 대사의 정의를 보면 '시간과 공간을 마스터하고, 그 과정에서 자아를 터득하고, 51퍼센트의 카르마를 갚고, 자기 신성계획을 완성하여 승천한 이'라고 했습니다. 대사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인 '마스터(master)'는 주인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자아를 마스터했다고 하는데 그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자아의 주인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자아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아를 잘 알지 못하고는 주인인 될 수 없겠지요. 시간과 공간을 마스터했다는 건 모든 에너지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선도에서 보면 기를 콘트롤하여 자기 존재를 변화시키는데 그것과 비슷한 거지요
그러면 어떻게 자아와 모든 에너지를 다스릴까요? 여러분은 에고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을 겁니다. 여기서 자아니 에고니 '참자아'니 하는게 대체 뭐냐 하는 의문이 나올 수 있는데 그 얘긴 일단 접어두지요. 여기서는 일단 기나 에너지의 진정한 콘트롤은 오직 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따라서 대사학은 겸손과 순종을 통해 신이 우리 내면의 참 주인이 되게 하는 길입니다. 대사학의 요체는 '과학적 복종 scientific surrender'입니다. 즉 에고를 참자아 앞에 죽여가는 길이지요. 시공을 초월한다 했는데 시공의 주인이 되지 않고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신은 그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그리고 '51퍼센트의 카르마를 갚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카르마는 네가티브 카르마 즉 나쁜 카르마입니다. 좋은 카르마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나쁜 카르마만이 우리를 속박 속에 가두어 놓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카르마도 우리를 구속한다고 얘기합니다만, 그런 건 참으로 좋은 카르마가 아니기 때문일 뿐입니다. 어쨌든 나쁜 카르마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를 그냥 가지고 승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남아 있는 한 승천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카르마를 갚아야만 승천이 가능합니다. 아무리 진여를 깨달았다 해도, 몇날 며칠 신과 합일의 열반에 든다해도 자기의 빚이 없어지진 않기 때문에 승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성자도 다시 태어나는 수가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자를 거두고 설법을 했음을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그건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자기 카르마의 빚을 다 갚는 것이 또한 중요함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점, 한획의 카르마도 갚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카르마를 갚아야 할까요? 내가 전생에서 누구에게 해를 가했으면 그 사람이 이생이나 차생 또는 그 다음 생애 언젠가 나에게 해를 되돌려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카르마를 갚는다고 할 때 대사들은 '밸런스balance'라는 동사를 씁니다. 밸런스는 균형을 맞춘다 또는 빚을 갚는다는 뜻입니다. 즉 내가 세상에 50만큼의 해를 가했으면 50만큼의 선을 내보내서 그 균형을 맞추는 겁니다. 즉 플러스, 마이너스해서 상쇄시켜 버리는 거지요. 말은 복잡하게 했지만 실은 간단합니다. 전생에 나쁜 일 많이 한만큼 좋은 일 많이 하란 얘기지요. 그러나 대사학에서 말하는 '좋은 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불쌍한 사람에게 한푼 적선한다는 식의 선행에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선행도 카르마의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됩니다만 그렇게 해서는 많은 빚을 갚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짧은 인생, 이 자그만 몸뚱아리로 빚을 갚아야 얼마나 갚겠습니까? 여기서 대사들은 바로 신에게 일을 시키라고 가르칩니다. 신께서 일한다면 그의 명령을 따르는 모든 천사와 대천사, 대사와 고귀한 존재들이 움직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과 접촉하여 그들에게 좋은 영향도 주고, 그들의 의식에 변화도 주고, 그들은 나쁜 기운으로부터 보호도 해줄 수 있습니다.
대사들은 신께서 우리의 명령을 가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구요? 우리는 본시 신과 하나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원하는 바가 신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신께서 우리의 명령에 동조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대사학에서 말하는 '일'의 핵심입니다. 신에게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대사들은 '디크리 decree'라는 단어를 씁니다. 우리의 에고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신께서 일하게 함으로써 자기가 모든 중생들에게 진 빚을 신속히 갚아 나가는 게 또한 대사들 가르침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대사들은 이러한 일 자체가 중요한 수행이라고 가르칩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신성 계획을 완수해야 한다고 했는데,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각자가 서로 다른 개별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 개별적 모나드는 신의 대리자로 이 지상에서 해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이 의사로서의 일일 수도 있고, 정치가로서의 일일 수도 있고, 예술가 또는 과학자의 일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 일이 한 생애가 아니고 여러 생애 동안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과업을 신성 계획 또는 다르마라고 합니다. 대개 그 일을 완수하는 건 카르마를 갚는 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쁜 카르마의 51퍼센트까지 갚게 되면 승천을 할 것인지 아니면 남아서 나머지 카르마를 다 갚을 것인지 대사가 나타나서 물어보게 됩니다.
대사들과 우리와의 관계는? 대사들은 우리들의 선생이자 조력자, 친구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나 도전들을 똑같이 경험하면서 이겨냈기 때문에 우리를 여러 면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력자는 대사들만 있는 게 아니고 천사, 대천사, 엘로힘, 정령 등 많습니다. 대사들은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이러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특히 우리들과 대사들과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대사의 진정한 제자가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합당한 노력만 기울인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우리는 스승을 찾아 인도로 히말라야로 헤매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준비만 되면 언제든지 대사들은 나타날 겁니다.
대사들의 등장은 새로운 현상인가? 예로부터 지구의 교실을 먼저 졸업한 이들은 선생으로 되돌아와 뒤에 남은 이들을 돕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비학파나 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온 일입니다. 고대에는 이런 대사들의 가르침이 거의 비밀리에 전수되었습니다. 인류가 물려받은 오컬트적인 지식은 그렇게 이어져 왔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19세기말부터 대사들의 존재와 그들의 메시지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새로운 현상입니다. 이는 피시언(물고기자리) 시대에서 아쿠아리안(보병궁자리) 시대로의 전환, 그 사이에 닥치는 암흑주기의 도래와 연관이 있습니다. 즉 이 시대에 인류가 직면할 도전들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지요. 대사들의 도움은 그들의 가르침도 있고 그들의 직접적인 도움도 있습니다.
채널링과 대사: 인터넷에 보면 채널링을 통해서 받은 대사들의 메시지란 것이 많이 올라와 있는데 제가 알고 있기로 대사들은 채널링이란 방법을 절대로 쓰지 않습니다. 채널링은 일종의 빙의 현상인데 영매의 몸을 다른 영이 잠시 점유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자유 의지의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라서 대사들은 빙의 자체를 제자들에게 금하고 있습니다. 대사들은 'Communion'이란 방법을 통해서 접촉할 수 있습니다. 이는 '친교'라고 번역되는 말인데 '나눔'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성체를 Communion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친교는 대사가 제자의 몸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대사와 제자가 맞대면하여 서로의 빛을 나누는 것입니다. 친교의 과정에서 제자의 의식은 생생히 깨어있습니다.
이러한 친교는 반드시 제자의 의식의 상승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를 '아스트랄 투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쨌든 제자의 의식이 상승하여 '에텔계'까지 그 진동수가 올라가야 합니다. '에텔계'는 절대의 영계와 물질계가 만나는 영역으로 대사들과 제자들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빙의 현상은 아스트랄계에 떠도는 죽은 자의 영이나 악령들이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것입니다. 아스트랄계는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들을 반영하고 있는 세계로 인간의 복잡한 감정만큼이나 어지러운 곳입니다.
물질계는 육계(physical), 아스트랄계, 멘탈계, 에텔계로 구분됩니다. 진동수에 따른 구분이지요 대사들은 이런 곳(아스트랄계)에 거하는 영들이 대사나 천사 또는 부처나 보살을 가장하고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따라서 외적으로 또는 명상 중에 나타나는 모든 존재들에 대해 그들이 신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시험해 보라고 가르칩니다. 승천한 대사들에게 몸이 있는가? 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갖고 있는 몸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 몸을 '불사의 태양체 Deathless Solar Body'라고 부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통옷 seamless garment ' 즉 손으로 깁지 않은 옷을 입고 있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그게 바로 대사들의 몸인 '불사의 태양체'를 가리킵니다.
이 몸은 선도에서 말하는 양신과 동일한 거라고 봅니다. 선도에서 양신을 기로 만드는 것처럼 이 태양체도 신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가지고 엮습니다. 선도의 가르침과 다른 점은 어느 단계부터 이 몸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 몸이 형성되어 오고 있으며 승천의 비전을 거치면서 그 몸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대사들에게 이 몸이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기구같은 것으로 물질 우주에서 일할 때 필요한 몸입니다.
어떠한 대사들이 있는가?
우리가 아는 성인들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부처, 미륵불, 관세음보살, 성모 마리아, 마호메트, 공자, 짜라투스트라 등등 모두 다 승천대사입니다. 이런 이들 말고 중요한 대사가 일곱 있는데 이 일곱은 그리스도의 일곱 광선과 각기 대응됩니다. 첫 번째 광선은 힘과 믿음, 신의 의지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색은 파란 색인데 이에 해당하는 대사는 엘 모리아 대사입니다. 엘 모리아 대사는 전생이 아브라함, 동방박사 중에 하나인 멜키오르 아더왕, 악바르 대제, 토마스 모어등이었습니다. 주로 왕이나 정치가 였지요
두 번째 광선은 지혜와 일루미네이션의 광선인데 노란색으로 이에 해당하는 대사는 로드 란토 대사입니다. 전에 이 광선의 대사는 쿠트 후미 대사였으나 쿠트후미 대사는 현재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계의 교사'라는 직책으로 옮겨갔습니다. 로드 란토는 전생이 주공이었습니다. 공자의 스승이었기도 합니다.
세 번째 광선은 사랑의 광선으로 그 색은 핑크빛, 대사는 폴 더 베네시안 대사입니다. 이 대사는 전생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인 파올로 베로네제였고 이 대사는 예술로써 제자를 가르칩니다.
네 번째 광선은 순결의 광선으로 그 색은 백색, 대사는 세라피스 베이 대사입니다. 세라피스 베이 대사는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승천 사원의 장입니다.
다섯 번째 광선은 진리와 과학, 치료의 광선으로 그 색은 녹색. 대사는 힐라리온 대사. 이 대사는 전생이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여섯 번째 광선은 봉사와 평화의 광선으로 그 색은 심홍색. 대사는 여대사 나다입니다. 나다 대사는 아주 오래 전에 승천했지요.
일곱 번째 광선은 자유와 연금술의 광선인 바이올릿 광선으로 그 대사는 세인트 저메인 대사입니다. 세인트 저메인은 전생이 사무엘 예언자, 예수의 아버지 요셉, 아더왕에 나오는 마법사 메를린, 콜롬부스, 프란시스 베이컨 등등 다채롭지요 세익스피어의 희곡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이지요. 거기에 프란시스 베이컨은 연금술의 비밀들을 많이 숨겨 놓았다는군요.
그리고 여덟 번째 광선이 있는데 이는 흰색으로 일곱 광선의 통합인데 이 대사는 마하 초한이라고 부르는 대사입니다. 마하 초한은 이 지구의 영혼들에게 성령을 대표하는 이입니다. 마하는 크다는 뜻이고 초한은 주님이란 뜻이지요. 전생은 시인 호머였고 마지막에는 스리랑카의 이름없는 양치기 소년. 지상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작용은 다 이 대사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일곱 대사들도 마하 초한의 지휘를 받아서 인류를 가르칩니다.
이들 대사들은 그 광선에서 제자들을 훈련시킵니다. 여덟 가지 광선은 각각 해당되는 챠크라가 있습니다. 이들 대사말고 카르믹 보드 또는 카르마의 주님들이란 대사들이 있습니다. 여기도 여덟 대사가 있습니다. 카르마의 주님들은 '우주적 그리스도'와 상의하여 모든 영혼들에게 각자의 카르마를 어떻게 펼칠 것인지 결정하는 대사들입니다. 그 대사들을 보면 '신성의 대지도자, 관세음보살, 팔라스 아테나, 자유의 여신, 엘로힘 싸이클로피아, 여대사 나다, 여대사 폴셔, 비로자나불(대일여래)'입니다.
여기서 '우주적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대사는 '미륵불'입니다. 대사들은 그를 '로드 마이트레야(미륵존여래불)' 라고 부릅니다. 로드 마이트레야의 역할은 대전수자(Great Initiator)입니다.즉 우리들에게 비전을 주는 이입니다. 우리는 마이트레야께서 주는 비전을 매일 받습니다. 마이트레야는 우리의 카르마를 이용해서 우리를 가르칩니다. 그게 마이트레야의 비전입니다. 우리의 부모와 친구, 그냥 만나는 사람을 통해서 등등으로 우리를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만나는 모든 사람을 미륵불처럼 대하면 로드 마이트레야의 모든 비전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승천의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합니다. 그의 마지막 비전이 승천입니다. 마이트레야란 이름이 ‘친절’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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