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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카발라 - 15장. 죽음과 저 너머의 삶 III 본문
비전의 카발라 - 15장. 죽음과 저 너머의 삶 III
이 지상에 화신한 혼들은 항상 같지 않다. 물론 수세기의 과정에 동일한 혼이 시간의 차이를 두고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당신도 알다시피 지구는 피조물들이 훈련을 하기 위해 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아니다. 우주에는 다른 ‘지구’들이 존재한다. 그곳으로 그들은 가르침을 받기 위해 갈 수 있다. 다른 혹성들로부터 피조물들이 특별한 임무를 가지고 지구에 왔다가 일이 끝나면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인간들도 다른 별로 보내질 수 있다. 이 모든 오고 감을 조직하는 책임을 맡은 것이 24 장로이다.
한 인간이 죽고 지구의 문들이 그의 뒤에서 닫히면 그는 다른 흐름 속에 잡히게된다. 그는 다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것이 사자死者를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은 이유이다. 그것은 그들의 진화를 방해한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이 진화해 갈 수 있도록 그들을 가볍게 보내주어야만 한다. 우리는 그들한테 매달리거나 붙들어 두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들을 지상으로 다시 불러내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
고대 문헌들에는 사자를 소환하는 것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동물의 목을 베어서 그 피를 이용해 사자의 혼을 불러내는 관습이 있었다. 오디세이에는 율리시즈가 자신의 미래를 알기 위해 선지자 티레시아스의 혼을 하데스로부터 불러내는 이야기가 나온다.
구약에는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 위해 엔도르의 영매한테 명하여 위대한 선지자 사뮤엘의 혼을 불러내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강령술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강령술은 사자를 통해 미래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뮤엘이 사울에게 한 말을 주목해보라.
“당신은 어째서 나를 일깨워서 성가시게 하는가?” 지상에서의 자신의 삶을 마친 위대한 영들은 단지 생자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후에 혼란스런 일을 겪길 원치 않는다. 그들은 사소한 흥밋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물론 이것이 생자를 잊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생자들을 기꺼이 도와주려한다. 그러나 다른 방식을 통해서이다.
물론 대부분의 인간들은 죽음의 순간에 세속적인 집착으로부터 당장에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가족과 친구들(그리고 정적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장소와 소유물에 대해서도 집착이 남아 있다. 만일 그들이 고도로 진화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가슴과 혼이 다른 영역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신을 향해 전진하려는 어떤 위대한 욕망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 사람들과 사물들에 계속 집착할 것이다.
그들은 불행하게 되고 떠도는 혼들이 된다. 그들은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비록 빛나는 영들이 그들을 도와주려 노력하지만. 덕성을 계발하는 자들은 지상에서 사랑과 빛 속에 산다. 그들은 자신을 빠른 속도로 육체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숭고한 영역으로 올라선다. 거기서 그들은 행복과 기쁨에 잠긴다. 이 높이로부터 그들은 은혜로운 파장을 보냄으로써 뒤에 남기고 온 자들을 도와주고 보호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지상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일단 죽으면 그들은 지구로부터 매우 멀리 멀리 떨어져 있고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당신은 물을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 심령술의 영매들은 과거에 유명했던 사람들과 통신할 수 있다고 믿는가?” 진실은 이렇다. 그들은 실제로 자신들이 소환한 사람들과 통신한 것이 아니다. 실상을 설명해 보자. 인간이 이 세계를 떠났을 때 그는 뒤에 자신의 옷들을 남기게 된다. 물론 그의 육체가 아니라 그의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이다. 이 옷들은 대기 중에 떠다닌다. 그리고 그의 생명 경험이 채워지게 된다. 그것들은 빈껍데기와 같다.
그것들은 사자와 통신하기를 희망하며 교령회에 참여하는 자들의 유체에 의해 생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 교령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고도로 진보되지 않았다. 그들로부터 나오는 유체는 매우 저급하고 욕망과 탐욕에 가득 차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온갖 종류의 그림자 존재들을 끌어당긴다. 그림자 존재들은 지구의 중심에 흡수되지 않은 존재들로, 아직도 에테르와 아스트랄계에서 떠돌고 있다.
정상적으로, 지구를 감싸고 있는 심령 대기는 계속 정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흘러다니고 있는 부스러기들이 지구의 중심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도 일정한 수의 존재들 - 우리가 엘리멘탈이라 부르는 - 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교령회에 나타나는 것들은 그들이다. 그들은 인간들을 속이고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들은 속이고 오도할 뿐만 아니라 가능한 오랫동안 살기 위하여 교령회 참석자들의 생명력을 흡수함으로써 에너지를 뺏어간다.
심지어 가장 저급한 종류의 영들도 영매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모세, 예수, 잔다르크 등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이 매우 진보된 존재와 접촉하고 있음을 입증하지 않는다. 게다가 매우 진보된 영들은 교령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경박하고 캐묻기 좋아하고 선정적인 사람들한테 끌리지 않는다.
이 같은 사람들이 불러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은 저급 아스트랄계의 껍데기들이다. 반면 순수하고 빛나는 공평무사한 존재들이 세계에 빛을 방사하고 기도하기 위해 모인다면 진정 빛나는 존재들이 그들 가운데 현현할 수 있다. 그러나 교령회에서와 같은 방식으로는 결코 아니다.
심령계의 거주자들 중에는 심지어 인간들에 의해 창조된 존재들도 있다. 예를 들어 문학에 나오는 잘 알려진 주인공들, 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성자들도 생생하게 존재 한다.
그들은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유체적인 존재이다. 이것은 상념체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 지 보여준다. 상념체는 인간들의 상념, 바램에 의해 창조된 사이킥 존재이다. 예를 들어 국가나 종교처럼 총체적인 개개인들의 유체적 방사물로 만들어진다. 동일한 목적을 위해 작용하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상념과 바램은 상념체를 형성하게 된다.
우리 유니버설 화이트 브라더후드 속에도 상념체가 존재한다. 모든 종교와 영적 운동 심지어 정치적 운동에도 자신들만의 상념체가 존재한다. 때때로 이 상념체들은 고차원에서 서로 싸운다. 각각의 상념
체는 가장 강하기를 원한다. 각각의 상념체는 자기를 낳은 공동체를 돕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놀라운 힘의 저장소이기 때문이다. 각각은 그 자신의 심벌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종종 동물의 형상을 띤다. 곰, 호랑이, 공작, 독수리, 비둘기 등등.
그러나 진정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은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며 인류를 돕고 계명시킬 수 있는 강력한 상념체를 창조하는 방법이다. 당신은 반드시 주의해야만 한다. 만일 당신이 상념체가 상징하는 이상을 배신한다면 그것은 당신을 벌 줄 수 있다는 점을. 이것은 당신을 놀라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상념체는 자기를 배신한 존재들을 파괴할 수 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깜짝 놀랄지 모르지만 상념체는 배신한 자에게 보복을 가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얼마나 다른 상이한 종류의 피조물들이 아스트랄계에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알든 모르든 그들은 상동의 법칙에 의해 연결된 존재들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이것은 교령회에서 참가자들이 아스트랄 대양으로부터 자신들이 바라는 사자의 영들을 끌어당기는 방식이다. 당신은 말할 것이다. “좋다. 그러나 어떻게 이 피조물들이 죽은 사람을 그토록 잘 알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착각을 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그것은 어렵지 않다. 아카식 레코드, 우주의 에테르 저장소 속에 모든 것이 다 있다. 그러므로 이 존재들은 쉽게 자신들이 알아야 될 필요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유일한 문제는 그들이 종종 그것을 잘못 읽고는 잘못된 정보를 전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정보를 찾는 사람에게 대부분 달려있다. 매우 순수한 밝은 사람은 정확한 대답을 받을 수 있다. 고급한 영들이 그의 차원으로 내려와서가 아니라 그가 그들의 차원으로 올라가 그들과 통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영들이 지상으로 강제로 내려오게 되는 예들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우 강력한 마법사들에 의해 호출을 받기 때문이다. 이 마법사들은 특정한 마법 공식을 발성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상념의 힘으로 영들의 차원까지 올라가는 것은 인간에게 달려 있다. 영들은 지상으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이 분야에는 두 종류의 마법이 존재한다. 하나는 축복과 호의를 얻기 위해 고급한 존재를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초환이라 불린다. 그리고 다른 것은 사자의 혼을 가시적인 형태로 불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소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내가 이미 말했듯이 특정한 영들을 불러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다른 피조물들이 그들의 외관과 목소리를 취해 장난치고 사람들을 잘못 인도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모든 것에 대해 매우 주의해야만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교령회에 다니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나는 몇 번 교령회에 다닌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곧 거기에 참가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탐닉, 탐욕, 욕망의 노예임을 깨달았다. 고인이 된 자신들의 친구, 친척과 통신하겠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은 아스트랄계로부터 피조물들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것들에 매달려 자신들의 저급한 욕망을 만족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붙은 것은 다시는 떨쳐내 버릴 수 없다. 이것이 많은 영매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사자가 자신들의 길을 조용히 갈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결코 당신의 죽어가는 친척과 친구들한테 매달리지 말라. 당신이 그들을 떠나보내는 것을 너무 슬퍼하지 말라. 그것은 그들을 아래로 잡아당기는 행위이다. 특히나 그들을 다시 불러내서 통신하려는 행위를 삼가라. 이것은 그들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유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내주라. 그들이 점점 더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보다 높이 빛을 향해 올라간다고 생각하라. 만일 당신이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한다면 그들과 언제가 함께 하게 될 거라고 확신하라. 그것이 진리이다. 내가 얼마나 많이 말했던가. 당신의 가슴이 있는 곳에 당신은 언젠가 있게 될 거라고.
세브레, 1966. 3. 6.
[출처] 비전의 카발라 - 15장. 죽음과 저 너머의 삶 III|작성자 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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