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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주만 기업의 잔여이익(초과이익)을 가져가는 논거(論據)============《 주주만 왜 잔여를 갖는가 》 - 삼성전자 300조 영업이익 분배 논쟁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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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주만 기업의 잔여이익(초과이익)을 가져가는 논거(論據)============《 주주만 왜 잔여를 갖는가 》 - 삼성전자 300조 영업이익 분배 논쟁 -

柏道 Tony 2026. 5. 6. 03:27

좋은 참고 글이 있어
공유해 봅니다.

■ 주주만 기업의 잔여이익
(초과이익)을 가져가는 논거(論據)
============

《 주주만 왜 잔여를 갖는가 》 
- 삼성전자 300조 영업이익 분배 논쟁 -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이 30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에 돌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이 거대한 잉여를 누가 가져갈 것인가의 논쟁은 이미 정치적으로 점화되어 있다. 노동조합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자본시장은 잉여현금흐름의 절반 이상을 주주환원으로 기대한다. 정치권은 ‘국민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거론한다.

한쪽에서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들린다. “주주가 잔여이익의 일차적 청구권자라는 명제는 자연법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다.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부를 자본가가 독점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정의로운가.” 참으로 그럴듯한 문제 제기다. 

그러나 정의로운 듯한 질문이 곧 옳은 질문은 아니다. 답하려면 신비도 음모도 아닌, 한 가지 평범한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회사는 여러 사람의 자원이 모여서 굴러가고, 자원을 댄 사람들은 각자 무엇을 어떻게 가져갈지 미리 약정해 둔다. 그 약정의 총체가 자본의 조달 구조다. 

채권자를 보자. 채권자는 회사에 돈을 빌려준, 곧 타인 자본을 댄 사람이다. 그런데 채권자는 회사가 아무리 큰 이익을 내도 약정 이자만 받는다. 삼성전자가 300조를 벌든 30조를 벌든 채권자가 가져가는 액수는 같다. 

채권자가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채권자는 초과 이익에 대한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회사가 망해도 자기 돈을 가장 먼저 돌려받을 권리를 얻었다. 안전을 사는 대신 초과의 가능성을 팔았다. 이것이 채권자의 거래다.

노동자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고용의 안정을 보장 받으며, 약정 임금을 받는다. 회사가 망할지라도 책임을 물어 받은 임금을 토해내지 않으며 임금채권 우선변제권이라는 법적 보호까지 받는다. 

그 대신 회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해도 임금이 연동해 폭발적으로 늘지는 않는다. 노동자도 안전을 산 대가로 잔여에 대한 직접 청구권을 포기한 것이다. 협력업체도 마찬가지다. 납품 단가가 정해지면 그 안에서 마진을 가져가게 된다.

이렇게 한 명씩 정산이 끝나고 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이 생긴다. 이 잔여를 가져가는 자가 자본가, 곧 주주다. 그래서 잔여청구권자(residual claimant)라 부른다. 

주주가 잔여를 갖는 이유는 단순하다. 잔여가 마이너스일 때, 즉 회사가 손실을 낼 때, 이를 가장 먼저 흡수하기로 약속한 자가 주주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청산되면 채권자가 우선 변제를 받고, 노동자가 임금채권을 보호받고, 협력업체가 물품대금을 받는다. 그 모든 청구가 끝난 뒤 자기자본은 사라진다. 자본은 가장 후순(subordinated)이다.

대칭의 원리는 여기에서 나온다. 잉여가 양수일 때 가져가는 자가 잉여가 음수일 때 그것 역시 떠안는다. 2023년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6.6조 원으로 추락했을 때 노동자 임금이 깎였는가. 

협력업체 납품대금이 회수되었는가. 아니다. 추락한 것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었고, 30% 가까이 빠진 주가를 짊어진 자는 주주였다. 누가 진짜 잔여청구권자인지는 손실이 발생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 왜 이때는 입을 다무나.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짚자. 한국 대기업 근로자들은 자기 회사 주식을 사는 데 대단히 소극적이다. 사주조합 가입률은 낮고, 우리사주 청약률도 회사가 강하게 권유할 때나 겨우 채워진다. 

더 인상적인 것은 수십 년 근무해 임원까지 올라간 사람들조차 자기 회사 주식 보유 비중이 극도로 미미하다는 사실이다. 스톡옵션을 받아도 행사하자마자 곧장 매도해 현금화하는 패턴이 다반사다. 회사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부자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이 행동은 무엇을 말하는가. 회사 내부에서 ‘잉여금’의 변동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그 잔여에 자기 돈을 묶어두는 일을 위험하다며 회피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잔여청구권의 매력보다 잔여청구권의 위험에만 관심이 있다. 안정된 임금을 받는 자리에 있으면서 굳이 그 잔여의 음수위험을 떠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는 합리적이다. 그것이 정확히 노동자가 자본 조달의 구조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KT&G가 전형적 사례다. KT&G는 2002년 민영화 이후 줄곧 국내 최고 수준의 잉여현금흐름을 만들어 온 회사다. 담배와 인삼이라는 안정된 사업 구조 위에서 매년 수조 원의 영업현금흐름이 들어오는데도, 주가는 20년 가까이 박스권에 머물렀다. 

회사 임직원들은 그 주식에 자기 돈을 거의 넣지 않았다. 한국 기관투자자도 외면했다.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것은 외국 행동주의 펀드였다. 2006년 칼 아이칸과 스틸파트너스가 한 차례 다녀갔고, 2023년에는 FCP(플래시라이트캐피털)가 본격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이들의 요구는 한결같았다. 무의미한 사내유보를 줄이고 잉여를 주주에게 환원하라, 자회사를 분리해 가치를 드러내라, 무능한 경영진을 교체하라.

KT&G 경영진은 오랫동안 이 요구를 거부하면서 ‘안정 경영’과 ‘국민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명분으로 들었다. 그러나 실상은 단순했다. 잔여를 주주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정작 그 사이 회사 임직원들은 자기 회사 주식을 사 모으지 않았다. 사회적 책임을 거론한 그들조차 그 주식이 자기 돈을 묶어둘 만한 자산이라고 보지 않고 전현직자로 구성된 속칭 공익법인을 만들어 지분을 무상이전했다.

결국 외국 행동주의 펀드의 압력 끝에 KT&G가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로 방향을 틀자, 주가는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잔여는 청구권자에게 이익이 제대로 돌아갈 때 비로소 주가는 화답을 한다. 그 청구권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감수할 책임을 지닌 자만이 잔여를 가져 가도록 주식회사 제도는 발명되었다.

이제 묻자. 자기 회사 주식조차 사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회사의 잔여이익에 대한 ‘일차적 청구권’을 갖는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잔여청구권을 사고 싶으면 시장에서 주식을 사면 된다. 가격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매겨져 있고 거래의 문은 한 번도 닫힌 적이 없다. 

그런데 그 문 앞에서 돌아서 놓고 회사 밖에서 잔여를 정치적으로 청구한다면, 위험은 사고 싶지 않고 보상만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자본 구조의 문법을 흔드는 일이며, 잔여청구권의 정의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사회와 국가의 자리도 같은 논리 위에서 증명된다. ‘사회적 생산론’은 삼성전자의 초과이윤이 국가의 교육 투자, 사회 인프라, 산업 정책 위에서 만들어졌으므로 사회로 환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옳은 주장처럼 보인다.

국가도 채권자와 같은 자리에 서 있다. 국가가 사회적 자본 — 교육, 도로, 전력, 치안, 법제, 인력 — 을 제공한 대가로 무엇을 받기로 약정해 두었는가. 

법인세, 부가가치세, 소득세, 양도소득세다. 국가가 그 막대한 법인세를 수취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사회적 자본과 인프라를 제공한 대가로 약정해 둔 몫이다. 채권자가 약정 이자를 받기로 한 것과 정확히 같은 구조다.

법인세 25%, 배당소득세 15.4%(종합과세 시 최고 49.5%), 근로소득세, 양도소득세. 삼성전자가 납부하는 법인세 하나만으로도 한국 전체 법인세 수입의 6~10%를 차지한다. 사회적 투자의 회수 메커니즘은 오래 전에 설계되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제 와서 국가가 “내가 사회적 자본을 댔으니 잔여이익도 내 몫이다”라고 한다면, 채권자가 약정 이자를 받아 놓고 회사가 흑자를 내자 “원래 내 돈으로 시작한 회사니까 이익도 추가로 가져가야겠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자기 자리를 채권자로 정해 놓고 사후에 주주의 자격을 추가로 요구하는 셈이다. 회수가 아니라 자기 모순적 행태다.

만약 국가가 진짜로 잔여청구권을 갖고 싶다면 길은 열려 있다. 국부펀드를 통해 주식을 사면 된다. 노르웨이 정부연금펀드가 그렇게 한다. 싱가포르 테마섹이 그렇게 한다. 한국 국민연금공단도 이미 7%대 지분을 보유하면서 정확히 그 자격으로 잔여청구권을 행사한다. 

주주가 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그 자격으로 잔여를 받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자리에 머물면서 주주의 몫까지 당연히 가져가겠다는 것은 자본주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일이다.

이 논리가 사회적 환류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환류의 메커니즘이 잔여청구권이 아니라 세금 제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할 뿐이다. 사회 환류를 더 두텁게 만들고 싶다면 정공법은 따로 있다. 

누진법인세 강화, R&D 세액공제 재설계, 협력이익공유제 명문화, 배당세제의 정밀화. 이론을 전복하는 일이 아니라 제도를 정밀하게 손보는 일이다.

유럽을 직시해야 한다. 유럽은 지난 30년 동안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의 가장 충실한 실험장이었다. 독일의 공동결정제(Mitbestimmung), 프랑스의 디리지슴(dirigisme), EU의 노동자 보호 규제, ‘사회적 시장경제’의 이념. 모두 “기업은 주주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것”이라는 명제 위에 서 있는 제도들이다.

결과는 어떤가. 세계 시가총액 상위 30대 기업 중 유럽 기업은 LVMH, 노보노디스크, ASML, SAP 정도가 전부다. 글로벌 빅테크는 단 하나도 없다. 

인공지능, 클라우드, 검색, 소셜미디어, 결제, 반도체 설계, 전자상거래 — 21세기를 정의하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유럽은 변방이다. 

자동차는 어떤가.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독일 자동차 산업은 테슬라와 BYD에 밀려 구조적 후퇴 국면에 들어섰다. 폭스바겐은 본국 공장 폐쇄를 검토 중이고, 메르세데스의 영업이익률은 매년 감소 중이며, 보쉬는 대규모 감원을 발표했다. 공동결정제라는 것이 디젤게이트조차 막지 못했다.

마리오 드라기가 EU 집행위에 제출한 경쟁력 보고서는 이 진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유럽의 1인당 GDP가 미국에 비해 30년 만에 가장 큰 격차로 벌어졌고, 핵심 원인은 저투자였다. 

자본이 미래 산업으로 흐르지 않았고, 의사 결정은 느렸으며, 합의 비용은 마찰로 높아졌다. 드라기가 처방으로 제시한 것은 다름 아닌 자본시장 통합과 주주 권한 강화를 통한 자본 활성화였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본진에서 나온 자기반성이다.

같은 기간 미국이 단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기주의도 있고 자사주 매입의 과잉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은 글로벌 빅테크 일곱 곳을 모두 키워냈고, 엔비디아 한 회사의 시가총액이 독일 DAX 상장사 전체 합계를 넘어선다. 

한국은 어떤가. 삼성과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반도체 양강에 올랐고, 현대차는 전기차 전환에서 살아남아 유럽을 제쳤다. 모두 주주자본주의의 자본배분 규율 위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론은 결과로 검증되지 않는가? 유럽은 30년에 걸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실험의 낙제 성적표를 들고 서 있다. 그 성적표를 직시하지 않고 “주주자본주의는 결함이 많으니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명백히 관찰되는 실험 결과를 보지 않고 가설을 고집하는 일이다.

주주자본주의가 완벽하다는 말이 아니다. 단기주의도 있고,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을 통한 자기 부 정렬 문제도 있고, 사회적 외부효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이 비판들은 정당하다. 그러나 결함의 존재가 곧 반대 대안의 정당성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자동차에 결함이 있다 해서 마차가 우월해지는 것이 아니다.

주주자본주의의 결함을 고치는 길은 그 안에서 작동하는 구체적 제도 — 누진법인세, 배당세제, 노동분배율 가이드라인, R&D 세액공제, 협력이익공유제, 자사주 매입 후 소각 의무화, 행동주의 펀드의 정당한 권리 행사 보장 — 를 정밀하게 설계하는 일이다. 이론을 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정밀화하는 일. 더 어렵고, 덜 교조적이고, 그러나 훨씬 현실적인 길이다.

찰리 멍거의 격언을 다시 빌리자. “Show me the incentive and I’ll show you the outcome.” 자본 구조의 핵심은 인센티브의 정렬이다. 

자본을 댄 자가 결과를 책임진다는 단순한 원리. 채권자는 안전을 사고 초과 이익을 포기했다. 국가는 세금을 받기로 하고 잔여를 포기했다. 노동자는 임금을 받기로 하고 잔여를 포기했다. 그 포기의 증거가 KT&G 임원들의 텅텅 비어 있는 주식계좌이고, 사주조합의 낮은 가입률이며, 행사 즉시 매도되는 카카오의 스톡옵션이다.

주주만 잔여를 가져간다. 주주가 권력에서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잔여가 음수일 때 그것을 가장 먼저 흡수하기로 약속한 유일한 청구권자가 주주이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원칙을 흔들면 책임의 소재도 흔들리고 산업은 투쟁의 장이 돼 경쟁력을 잃는다. 유럽이 그 길을 우리보다 30년 먼저 걸었다. 반박은 자유다. 그러나 욕쳐먹더라도 할 말은 한다.

글. 홍영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