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각성覺醒” 본문
각성覺醒”/ 배철현
새벽에 눈이 떠진다. 세월이 아쉬워 요즘 하루를 일찍 맞이하여 여명을 예배한다. 하루는 노마크 찬스에서 골키퍼와 마주한 축구 선수의 순간이다. 그(녀)가 몰입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영원히 날라 가 버린다. 그 순간을 포착하여 자기 삶의 중요한 구간으로 삼고 싶다면, 그 순간을 기대하고 준비해야한다. 하루를 영원한 순간으로 보내기 위한 철학적 기반은 ‘각성覺醒’이다.
각성은 정색正色이다. 오늘 내가 발을 디디는 곳이 세속적인 공간이 아니라 거룩한 공간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마음을 정돈整頓해야한다. 성性과 속俗은 가시적인 장식으로 꾸미는 것 아니라, 마음의 준비로 마련하는 예술이다. 정색은 나에게, 하던 일을 멈추고 오늘 내가 해야 할 한 가지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묵상의 시간을 요구한다. 눈을 감고, 손과 다리를 묶고, 입을 다물면, 한참 후에 생경한 미세한 소리가 들린다. 침묵처럼 웅변적인 것이 없다. 침묵은 내가 오늘 해야 하는 한 가지를 확신에 찬, 섬세한 소리로 속삭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복종해야 할 유일한 교리는, 나의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이다.
샛별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별의 등장으로 사라진다. 아침이면 등장하는 이 별은 태양太陽이다. 태양은 나에게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날인 하루를 선물하기 위해서 저 멀리서 자신의 빛을 내 보낸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오늘 어제의 당신입니까? 아니면 오늘의 당신으로 다시 태어나, 내일을 꿈꾸며 사십니까?” 이 질문을 경청하고 마음에게 새기기 위해서, 준비準備가 필요하다.
나의 준비는 이것이다. 변화하는 오늘, 종말론 적인 오늘을 살기 위해 야산으로 들어가서 산책한다. 산책은 매일 매일 내가 신에게 드리는 순례巡禮다. 동네 야산이 나에겐 예루살렘이나 메카보다 증요하다.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온 몸에 붙어 있는 어제의 먼지을 떨쳐버리기 위해, 안개 낀 야산으로 진입한다. 팔과 다리를 의식적으로 움직이고, 눈을 활짝 떠서 저 멀리를 응시하고 귀를 열어, 공중의 새들이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모든 아침은, 누구에게나, 오늘 하루를 단순하고 명료하게 살라는 친절한 초청이다. 오늘을 단순명료하게 살 것인지, 아니면 복잡애매하게 살 것인지, 그 선택選擇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올바른 선택이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내가 그런 습관을 몸과 마음에 익혔다 할지라도, 선택은 절호의 기회처럼 집중을 요구한다.
150년 전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빗 소로는 매일 아침, 월든 호수에 몸을 담궜다. 아니 그의 정신과 영혼까지 담금질하여, 온전한 하루를 살기 위한 의례를 스스로에게 행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세례요한이자 예수였다. 소로는, 인도 수행자들이 갠지스 강에 몸을 담궈, 해탈解脫을 희구하는 것처럼, 거의 2년 동안 매일 차디찬 호숫물에 몸을 침잠시켰다. 이 육체적인 행위는 오래전 자아를 살해하고 새로운 자아를 탄생시키고자 하는 각성의 의례다. 그는 물에서 나오면서, 비둘기와 같은 영을 온몸으로 맞이하였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른 아침, 새로운 자이라는 ‘신적인 불꽃’, 혹은 거룩한 임무에 몰입할 수 있는 ‘다이몬’에 의해 각성되지 않는다면, 구태의연한 시간을 반복하는 크로노스Cronos가 거대한 낫을 들고 하루 동안 꽃을 피워야할 거룩한 씨앗을 거세해버릴 것이다. 새벽의 각성은 귀찮게 울리는 자명종이 아니라, 새벽을 기다라는 파수꾼의 심정으로 시작할 수 있다.
각성은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야하는 사회적인 개혁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사적이며 개인적인 선택이다. 그런 개인이 조금씩 늘어나면, 그들이 속한 사회엔 희망이 있다. 소돔과 고모라도 각성한 사람 5명이 없어, 멸망하지 않았는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더 나의 자신이 되겠다고, 자신만의 의례를 행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그 선택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그런 구별된 의례를 통해 각성을 수련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개인의 각성이 공동체의 각성이며, 국가의 각성이다. 소로가 하루를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기 위해, 월든 호수에서 세례의식을 거행한 것처럼, 나도 육체의 의례를 통해, 정신과 영혼을 일깨우는 구별한 의례를 준수하고 싶다. 당신은 새벽을 기다리십니까? 그 가장 거룩한 시간에 당신을 각성시킬 자신만의 의례를 가지고 있습니까?
(배철현과 함께 가보는 심연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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