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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위선자가 되지 말라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휴심정] 구자만의 종교회통

위선자가 되지 말라

柏道 2024. 3. 15. 18:08

위선자가 되지 말라

  • 수정 2024-03-12 07:06
  • 등록 2024-03-11 12:26
픽사베이

 

예수의 제자들이 그에게 묻기를 “당신은 우리가 금식하기를 원하십니까? 어떻게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가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까? 음식을 어떻게 가려 먹어야 합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거짓말을 하지 말라, 너희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라. 모든 것이 하늘 앞에서는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니라. 결국 드러나지 않을 비밀도 없고, 나타나지 않을 숨김도 없느니라.”(도마복음 6)

분별과 모양에 집착하는 모든 육적(肉的), 유위적(有爲的)인 금식, 기도, 자선 그리고 음식을 가려먹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너와 나를 나누는 에고(ego)의 행위가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분별심을 버린 영적(靈的), 무위적(無爲的)인 자세이다. 이 때 숨겨져 있던 충만한 진리(신성)가 드러나게 된다. 진리와 하나(One)가 되기 위해 이기적인 에고(ego)로 무엇인가를 할 필요가 없으며, 무심(無心)으로 자신의 본성(신성)을 자각하여야 한다. 몸과 마음의 '나’(거짓 나)는 허상으로 본래 없는 것이므로 스스로 싫어하는 좁은 견해에 따라 형식과 틀에 매달린 행동을 버려야 영적인 실상의 ‘나’(참나)가 드러난다. 주(主)와 객(客)으로 나누는 금식, 기도 그리고 자선은 이원론(ego)을 부추겨 이기적인 종교적 인간으로 만들며, 이렇게 포로가 된 자는 하나(One)의 신성(神性)인 자신의 참모습을 찾을 시간이 없다.

 
 

달마대사는 ‘만유는 공(空)이니, 구함이 있으면 고통이요, 구함이 없으면 즐거움이며, 바로 도(道)를 실천하는 길임을 분명히 알지니라'고 하였다. 기도하며, 자비를 베풀 때 이분법적 분별심과 집착심 등의 인위적인 마음을 버려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자선은 “타인과 동떨어진 ‘나’는 따로 없다”(自他一體)는 하나의 진리로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도 모르게 하는 무차별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침묵 속에서 자기 자신이 행위자라는 생각이 없이 행위하며(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주는 이와 받는 이 그리고 재물의 세 가지를 보지 않아야 한다(반야바라밀). 구약의 외전(外典) 중의 하나인 ‘솔로몬의 지혜’에서는 “모든 것이 평화와 침묵 속에 싸였을 때 당신의 전능한 말이 천상의 왕좌에서… 내려왔다” 라고 한다.

픽사베이

 

우리의 미래는 현재의 행동에 따라 나타난다(인과율·因果律). 진리와 하나(One) 된 태도는 어둠에 숨겨있던 본성을 마침내 빛으로 드러나게 하며, 온 우주가 둘이 아닌 신(실상)의 광명으로 충만함을 체험하고, 천국의 환희를 누릴 수 있게 한다. 불교의 유마(維摩)는 '분별과 대립을 떠난 하나의 경지를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이라고(유마경),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는 “속마음이 정성스러우면 밖으로 형체가 나타난다”(중용)고, 대학에서는 “군자는 반드시 그 자신만 홀로 아는 자리(One)를 진실하게 하는 것이다”고 신비한 하나의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내가 행위자다’(ego)고 하는 환상이 사라진 하나(One)의 ‘신비주의 차원’ (실상)을 통해 동양은 서양을 만나고, 서양은 동양을 만난다. 무위적(無爲的)인 ‘신비주의 차원’은 예수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누가복음 18장 22절)고 한 것처럼, ‘육체는 있다, 시간은 있다’는 허상의 관념을 모두 가난한 자 곧 제로(O)에게 나누어 주고 마음을 텅 비우는 것이다(오온개공·五蘊皆空). 이 때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며,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오직 하나님(부처님)뿐이다', ‘오직 생명뿐이다’고 하는 하나의 진리는 현대물리학이 '에너지의 파동인 물질은 텅 비었다'는 것으로 증명하고 있다(색즉시공·色卽是空). 또한 에크하르트(Eckhart)는 '우리들이 시간, 육체, 다수성을 초월할 때 하나님에게 도달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모든 것은 다 신성(불성) 아닌 것이 없다(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우리는 금식과 기도를 할 때 대상이 아니라 어디에나 다 있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신(신성)에게 하여야 한다. 또한 자비를 베풀 때 주(主)와 객(客)으로 나누는 이원성의 분별심(ego)을 벗어나야 한다. 하나의 생명차원에서 행하며, 순수성과 초연함으로 나와 남이 둘이 아닌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자세와 무심(無心)으로 행하여야 한다.

 

구자만(신학자 &개신교 장로 &신흥지앤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