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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 총통과 대륙 백제 이야기★ 본문

배움과 깨달음/역사와 철학

★장개석 총통과 대륙 백제 이야기★

柏道 2022. 12. 29. 05:48

★장개석 총통과 대륙 백제 이야기★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중국의 역사왜곡과 날조를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거니와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유효하다고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주은래(周恩來) 전 수상도 지적한 바 있다.

주 전수상은 동북 지역의 역사가 조선인에게 귀속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인식 또한 시대상황에 따른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시영도 김구도 몰랐던 대륙조선사의 정체와 왜곡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한 안호상(1902-1999)박사가 문교부장관 재직시에 중국의 저명한 문학자이며 평론가인 림어당(1895-1976) 선생을 만나 여담으로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 나라까지 문제가 많다" 고 하자 림어당 선생은
"그게 무슨 말입니까 ? 한자는 당신네들 東夷族 조상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소?" 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 박사가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당시 같은 입학생인 중국 학자 서량지(徐亮之)가 한박사를 찾아와 말하기를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를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서량지)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의미로 절을 하겠으니 받아 달라며 큰 절을 올렸다." 고도 한다.

1930년대 장려화와 그 문하생들의 노력으로 중국 고금지명대사전이 편찬되면서 우리 조선의 역사가 완전히 중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작되었으며 해방후 백화사기의 편찬으로 다시 한번 조선의 역사는 지나인들에 의하여 삭제 왜곡 조작이 되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위에 림어당, 서량지 같은 학자들은 그나마 양심이 있어서 자기들이 역사를 수정하였노라고 실토하고 있지 않는가.서량지 같은 사람은 그의 저서 중국사전사화를 통하여 모든 중국의 역사를 동이족의 것으로 인정하였던 사람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1930년대 미국에서 출세한 중국인 학자들과 해방후 홍콩 대만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조선역사말살작업이 진행되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지도층의 역사인식과 관련해서 백범 김구 선생의 일화가 문득 머리에 떠 오른다.
일제의 대륙침략에 따라 중경(重慶)으로 후퇴한 장개석(蔣介石) 총통은 함께 피난 온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주석 일행을 위로하기 위해 만찬에 초대했었다고 한다.

이때 장 총통은 자기 고향이 옛 백제 땅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우의를 다졌다고 한다. 장 총통은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는 동지적 입장에서 이런 역사인식을 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들은 김구 주석은 충격과 함께 자괴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뒷날 술회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제가 중국 땅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김구 주석은 전혀 알지 못했었다고 한다.

장개석의 고향은 양자강(揚子江) 남쪽 절강성(浙江省)이므로 옛 백제는 양자강 이남지역까지 지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서량지나 임혜상 같은 양심있는 중국사학자들은 중국역사의 상고사는 한민족의 역사라 말한다.

그리하여 가시마 노보루같은 일인학자는 한(漢)족은 기껏해야 한(韓)을 흉내내어 이름 붙인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상고사는 밝혀져야 한다.
중국의 식자층은 양자강 유역이 전통적으로 동이 9족의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안다.

장개석은 이 사실을 너무 잘알고 있어서 임정의 이시영 전부통령에게 "역사는 제대로 알고 독립운동하시는가 " 하고 물었던 것이다.

한데 오늘날의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에는 어느 한구석에도 이런 기록이 없다.

오늘날의 역사교과서 뿐만 아니라 김구 주석이 듣고 배웠던 당시의 역사책에도 이런 기록이 없었던 것이다.

[남제서]백제전에 기록된 백제 동성왕이 지배한 대륙백제

"백제가 한때 요서遼西, 진평晉平을 점령해서 거기에 어떤 왕, 제후를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 고구려국본기를 보면 “백제이병(百濟以兵)으로 평정제노오월지지(平定齊魯吳越之地)하고 설관서(設官署)하야 색적민호(索籍民戶)하며 분봉왕작(分封王爵)하야 둔수험새(屯戍險塞)하며 군정부조(軍征賦調)를 실준내지(悉準內地)러니”라는 내용이 나와 있어요. 사실은 백제가 요서, 진평뿐만 아니라 산동성에 있는 옛날에 공자의 조국 노魯나라, 그리고 강태공의 제齊나라가 있었던 땅을 다 점령을 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고구려국본기를 보면 강남땅도 지배했다는 겁니다. 강남江南은 어디인가? 저 유명한 오吳나라, 월越나라입니다. 월나라의 구천句踐, 오나라의 부차夫差가 원수지간이라고 그러잖아요. 그 오월吳越의 강소성과 절강성까지 다 점령을 했다는 것입니다. 강남에 있는 월주越州에는 산음山陰, 산월山越, 좌월左越이라는 현이 있었는데 여기도 지배했습니다.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 특정한 몇 곳을 점령한 게 아니라, 지도를 보면 단군조선 때에 지배했던 저 위로부터 아래까지 거의 다 지배를 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중국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직공도梁職貢圖」라든지, 『양서梁書』, 『남사南史』, 『통전通典』, 『자치통감資治通鑑』, 또 청나라 때 나온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이것을 전체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는 그냥 한반도 남부, 호남을 차지하다가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한반도의 백제 땅보다, 한반도보다 훨씬 더 큰 ‘대륙 백제’가 중국의 오른쪽, 동부지역을 거반 다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고주몽이 내세운, 단군조선의 영역을 복원한다는 그 강건한 다물주의多勿主義 역사통치 정신을 그대로 이은 것입니다. 26세 성왕 때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바꾼 것은 ‘우리는 부여다. 우리의 근원은 북부여다’라는 의식의 표현입니다. ‘남부여’라는 국호는, 고주몽의 다물주의에 따라서 반드시 옛 단군왕검의 번한, 번조선의 옛 영토를 되찾는다는 의지의 발로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식민지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런 역사를 잘못 해석하고 잘못 기록하면 안 됩니다.

백제가 요서·진평으로부터 지금 산동성의 제나라, 월나라, 강남에 있는 월주, 이곳을 다 회복하여 대륙 백제를 이루어 대백제大百濟를 건설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단군조선 땅을 회복하는 고구려 다물주의의 꿈을 바로 이 호남, 충청 옛 백제의 성왕들이 완전히 실현한, 그 꿈을 성취한 주인공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중국의 『남제서』 「백제전」을 보면 ‘매라왕, 벽중왕, 불중후, 면중후’ 같은 왕과 제후, 즉 백제의 천자가 임명한 왕후王侯의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구당서舊唐書』나 『신당서新唐書』에 ‘백제왕은 동서 두 성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사기』 「열전列傳」 ‘최치원’에 보면, 당나라에서 상관上官에게 올린 그 글에 ‘고구려, 백제는 강성할 때 백만 대군을 가지고 남쪽으로는 저 오월을 침략하고, 북쪽으로는 유주幽州, 연燕나라, 제齊나라, 노魯나라를 소란케 해서 중국의 큰 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최고운도 그 사대주의 정신이 있어요. 왜 백제가 좀벌레인가요?

백제의 전체적인 역사과정에서 보면, 백제가 245년에서 580년대까지 한 340년 정도 ‘대륙 백제 시대’가 있었고, 이 시기에 중국 동쪽에 있었던 배달국, 단군조선 때의 영토를 복원했던 것입니다."
ㅡ 펌, 안경전 환단고기 콘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