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티벳트 사자의 서 본문
티벳트 사자의 서
책소개
어떤 사람이 죽어 갑니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지만, 그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일 경우에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죽어 가는 사람의 머리맡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려 보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지는 못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요? 화려한 장례식, 좋은 나무로 만든 관, 커다랗게 만든 국화꽃 화환, 비싼 값을 치루고 명당에 마련한 묘지…… 이런 것들이 그 사람에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차라리 그 사람에게 죽음의 여행을 안내해 주는 것은 어떨지요? 비록 그 사람의 죽음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에게 바른 길을 찾도록 도움을 주고,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게 해 줄 수 있다면 우리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 될 것입니다.이 책은 바로 다른 사람의 죽음을 함께하고, 나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안내서입니다.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설명은, 이 책이 왜 그렇게 유명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해 세속적인 허례의식으로 치장하기보다는, 그의 머리맡에서 이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 또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고독하고 두려운 길로 여겨졌던 '죽음'이 깨달음의 길로 바뀔지도 모르지요.자기 자신뿐 아니라 죽음을 눈앞에 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가르침이 전해주는 이 책은 14세기에 보물 발굴자 카마 링파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유독 티벳에는 죽음과 그 이후의 세계를 조사하고 탐구한 문헌들이 아주 많았는데 이 책도 그 중의 하나로 전해오고 있다고 해요.명성만큼이나 많은 번연본이 출간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이번 책은 류시화 시인이 옮긴 것입니다. 명상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닌 류시화의 번역이 시적이면서도 깔끔합니다.
목차
목차
제4판 서문 ㅣ 눈고장의 현자들이 건네 준 책 - 에반스 웬츠 제3판 서문 ㅣ 비밀에 부쳐진 책 - 에반스 웬츠 제2판 서문 ㅣ 삶의 예술과 죽음의 예술 - 에반스 웬츠 초판 서문 ㅣ 티벳 현자들의 가르침 - 에반스 웬츠 비밀의 이해 티벳 死者의 書치카이 바르도 - 죽음의 순간의 사후세계 초에니 바르도 -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는 사후세계 시드파 바르도
책속에서
책속에서
아, 자비로운 이여. 지켜 주는 이 없는 아무개를 지켜 주소서. 보호받지 못하는 그를 보호해 주소서. 그의 힘이 되어 주시고 동행자가 되어 주소서. 사후세계의 어둠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소서. 죽음의 왕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그를 구하소서. (본문 p. 458 중에서)아, 자비로운 이여. 지켜 주는 이 없는 아무개를 지켜 주소서. 보호받지 못하는 그를 보호해 주소서. 그의 힘이 되어 주시고 동행자가 되어 주소서. 사후세계의 어둠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소서. 죽음의 왕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그를 구하소서. (본문 p. 458 중에서)
더보기
추천글
추천글
• 죽음에 비추어 보는 삶의 의미
- 이현경
• 다른 추천도서 보기
• 이 저자의 출간작품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저자 및 역자소개
빠드마쌈바와 (파트마삼바바)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신간알리미를 신청하시면 E-mail 또는알림센터/앱푸시로 알려드립니다.
후속권을 기다리는 시리즈, 좋아하는 저자의 최신간 소식을 가장 빠르게 받아보세요!
티베트 불교의 대성인으로 8세기 인도 우디야나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나란다 불교대학에서 전통 불교를 전수받았고, 오늘날의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 등지를 두루 다니면서 여러 스승을 따라 수행했다. 깨달음을 얻은 후, 티베트의 티송데첸 왕의 요청으로 티베트에 건너왔다. 티베트 밀교 역사상 최고의 대성취자로서 티베트 사람들은 그를 문수보살, 금강수보살, 관음보살 세 존자가 합일한 화신으로 믿고 있다. 또는 제2의 붓다라고 칭하기도 한다. 파드마삼바바는 뛰어난 비밀 교법을 여럿 남겼는데, 주로 바위틈이나 ... 더보기
티베트 불교의 대성인으로 8세기 인도 우디야나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나란다 불교대학에서 전통 불교를 전수받았고, 오늘날의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 등지를 두루 다니면서 여러 스승을 따라 수행했다. 깨달음을 얻은 후, 티베트의 티송데첸 왕의 요청으로 티베트에 건너왔다. 티베트 밀교 역사상 최고의 대성취자로서 티베트 사람들은 그를 문수보살, 금강수보살, 관음보살 세 존자가 합일한 화신으로 믿고 있다. 또는 제2의 붓다라고 칭하기도 한다. 파드마삼바바는 뛰어난 비밀 교법을 여럿 남겼는데, 주로 바위틈이나 동굴 등에 숨겨놓았다. 교법을 통한 깨달음에는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그때까지 경전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숨겨진 경전을 ‘복장’이라 하고, ‘테르퇸’이라 불리는 전문 발굴자가 시기에 맞게 경전을 찾아내어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파드마삼바바의 경전 중 가장 잘 알려진 『티베트 사자의 서』는 14세기에 카르마 링파에 의해 처음 발굴되었고, 티베트 일대 국가에 전파되었다가 20세기 초 옥스퍼드대학 교수였던 에반스 웬츠에 의해 서구사회에 소개되었다. 이 비밀의 경전을 접한 심리학자 카를 융은 ‘가장 차원 높은 정신의 과학’이라고 극찬하며 직접 장문의 해설을 쓰기도 했다. 완전하고 순수한 법력으로 ‘연꽃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불리는 파드마삼바바는 여전히 티베트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접기
• 최근작 : <티베트 사자의 서>,<죽음에 부치는 편지>,<티베트 사자의 서>… 총 10종 (모두보기)
류시화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신간알리미를 신청하시면 E-mail 또는알림센터/앱푸시로 알려드립니다.
후속권을 기다리는 시리즈, 좋아하는 저자의 최신간 소식을 가장 빠르게 받아보세요!
시인.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한동안 시 창작을 접고 인도, 네팔, 티베트 등지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오쇼,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바바 하리 다스, 달라이 라마, 틱낫한, 무닌드라 등 영적 스승들의 책을 번역 소개하는 한편 서울과 인도를 오가며 생활해 왔다. 1991년 첫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1996년 두 번째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발표했다. 세상을 신비주의적 차원에서 바라보면서 인생의 불... 더보기
시인.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한동안 시 창작을 접고 인도, 네팔, 티베트 등지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오쇼,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바바 하리 다스, 달라이 라마, 틱낫한, 무닌드라 등 영적 스승들의 책을 번역 소개하는 한편 서울과 인도를 오가며 생활해 왔다. 1991년 첫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1996년 두 번째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발표했다. 세상을 신비주의적 차원에서 바라보면서 인생의 불가사의함을 섬세한 언어로 그려 내어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 정서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에 출간한 제3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은 독특한 시적 감성과 상상력으로 삶에 대한 투명한 관조를 보여 주었다. 인도에서의 에피소드를 담은 두 권의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과 『지구별 여행자』는 단순한 기행문을 넘어 ‘인도’라는 성과 속이 공존하는 역설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그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외국의 좋은 시들을 모은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과 치유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시가 주는 치유의 힘을 소개해 이 사회에 ‘치유’라는 화두를 던졌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연설문을 모은 970쪽에 이르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는 세상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들의 지혜를 담은 대작이다. 또한 하이쿠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를 출간했다. 그가 번역해 큰 반응을 불러일으킨 책들로는 『성자가 된 청소부』(바바 하리 다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티벳 사자의 서』(파드마삼바바), 『용서』(달라이 라마), 『인생수업』(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조화로운 삶』(헬렌 니어링·스코트 니어링),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아잔 브라흐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크하르트 톨레) 등이 있다. 2017년과 2019년에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내어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번역되었다. 우화집 『인생 우화』와 인도 우화집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를 썼으며, 인생학교에서 시 읽기 『시로 납치하다』도 쇄를 거듭하고 있다. 접기
• 최근작 : <마음챙김의 시>,<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지구별 여행자>… 총 137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출판사 소개
정신세계사
도서 모두보기
신간알리미 신청
• 최근작 : <타프티가 말해주지 않은 것>,<나는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등 총 125종
• 대표분야 : 심리학/정신분석학 13위 (브랜드 지수 75,117점), 성공 18위 (브랜드 지수 220,358점), 철학 일반 21위 (브랜드 지수 21,506점)
북플 bookple
• 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 친구가 남긴 글
• 내가 남긴 글
• 크게 신비롭고, 크게 밝고, 더없는, 비견할 바 없는 이 주문은, 이 주문을 외우는 사람에게 위대한 선물을 가져다 주지요. 이 무등등주는 일체의 고를 제거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관세음보살의 경지를 나타냈지만, 마지막 구절은 모든 보살, 지혜의 완성을 추구하는 모든 보살들의 삶의 문제로 귀착되고 있습니다. <반야심경 般若心經>을 이해하고 주문을 독송하면 곧 일체의 고(苦)가 사라진다는 것이죠.(p237)...
•
•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
• 아제아제 바라아제(揭諦揭諦 波羅揭諦) 바라승아제(波羅僧揭諦) 모지사바하(苦提娑婆訶)
•
• 건너간 자여 건너간 자여! 피안에 건너간 자여!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자여! 깨달음이여! 평안하소서!(p238)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中
•
•
• 이 가르침을 바르게 읽어 줌으로써 이해력이 뛰어난 구도자들은 죽음의 순간에 곧바로 의식체의 탈바꿈을 이룰 수가 있다. 그들은 사후 세계를 방황할 필요도 없이 공중으로 난 수직의 길을 통해 곧바로 영원한 자유에 이를 것이다.(p448)... 아,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만일 그대가 애착심과 혐오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면 앞에서 말한 어떤 환영이 나타나더라도 진리와 진리를 깨달은 자와 그를 따르는 구도자들에게 기도하라. 그리고 자비의 신에게 기도하라. 머리를 똑바로 세우고 걸으라. 그대가 지금 사후세계에 있다는 것을 알라. 모든 나약함을 버리라. 그대의 아들과 딸들 또는 두고 온 친척들에 대한 애착을 끊으라. 그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 천상계에서 나오는 흰색 빛의 길과 인간 세상에서 나오는 노란색 빛의 길을 따라서 걸어가라. 보석들로 장식된 대저택과 아름다운 정원 속으로 들어가라.(p447) <티벳 사자의 서> 中
겨울호랑이2020-07-13 공감 (27)댓글 (0)
•
•
• 임종 환자의 침실은 가정에서 병원으로 전이되었다. 이러한 전이는 의학적 기술을 빌미로 가족들에게 용인되었으며, 이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더욱 보편화되고 절차도 매우 간편해졌다. 이때부터 병원은 죽음이 공개성 혹은 그것의 잔재들로부터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된다. 이렇게 해서 병원이 고립된 죽음의 장소가 된 것이다.(p1030) <죽음 앞의 인간> 中
•
• <죽음 앞의 인간 'homme Devant la Mort>의 저자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es, 1914 ~ 1984)는 20세기의 죽음을 '역전된 죽음'으로 특징짓는다. 죽음을 입에 담지 않고 '침묵'을 통해 회피하는 모습이 <죽음 앞의 인간>에서 그려진다.
•
• 죽음이라는 말은 금기처럼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말이 되고 있어서 예의범절을 아는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합당한 표현으로 완곡하고 정숙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고가 보편화되어 있다... 낭만주의자들이 수사학을 사용해서 발설할 수 없는 현실을 은폐하고자 했다면, 20세기에 와서는 침묵에 내맡기고 있는 것이다.(p1032) <죽음 앞의 인간> 中
•
• 이러한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현대인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에서는 루게릭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노교수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시한부 삶을 남겨두었지만, 노교수는 아직 젊은 제자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을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내용을 중심으로 죽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죽음과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리 교수의 태도 안에서 우리는<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De Rerum Natura>에서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 BC 90 ? ~ BC 50?)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
•
•
• 우린 죽음의 광경을 보는 걸 너무도 두려워하지. 저번에 책을 읽었네. 병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바로 시트를 머리에 씌운 다음 바퀴 달린 침대에 주검을 싣고 통로를 지나 내려간다더군. 죽음의 광경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안달하는 거지. 사람들은 죽음이 전염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곤 해. 자네도 잘 알듯이 죽음은 전염되지 않아. 삶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죽음도 자연스럽다네. 그것은 우리가 맺은 계약의 일부일 뿐이야.(p249)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中
•
•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고 우리와 전혀 관련이 없다.(830)... 우리가 존재하지 않게 될 때, 서로 하나로 합쳐져 우리의 존재를 이루고 있는 바 육체와 영혼의 분리가 일어날 때, 그때는 분명코, 이미 존재하지 않을 우리에게, 전혀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것이며, 그 무엇도 감각을 일으킬수 없으리라.(839~840)... 그가 언젠가 태어났었든, 아무 때도 태어나지 않았었든, 이제는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을. 그대는 물론 죽음 속에서 잠든 것처럼, 그렇게 남은 온 세월 동안 괴로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우리라. 하지만 우리는 소름 끼치는 화장장 가까이에서 그대가 재가 된 것을 그칠 줄 모르고 애곡했노라, 그리고 그 어떤 날도 우리 가슴에서 영원한 슬픔을 없애지 못하리라.(904~908)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中
•
• 살아간다는 것이 서서히 죽어간다는 것의 다른 이름임을 생각한다면, 모리 교수와 루크레티우스의 말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지만, 가슴으로 긍정하기는 쉽지 않다. 마음으로도 죽음을 받아들인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만의 길을 걸으라는 말과 사랑을 나누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
• 받는 것은 내가 죽어 가는 느낌을 준다네. 하지만 베푸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심오한 말이다. 그리고 과연 맞는 말이다. 받는 것, 소유하는 것은 살아 있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이 마케팅, 영리주의, 광고계의 기본이겠지만, 모리는 '문화에 현혹되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새 차, 새 옷, 새 평면 TV를 소유하는 것. 이런 것들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일시적인 흥분감이 있지만, 신제품 냄새가 빠지기도 전에, 품질 보증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진다.(p30)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中
•
• 우리 문화는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네. 우린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고 있어. 그러니 스스로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것을 굳이 따르려고 애쓰지 말게. 그것보다는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해야 해.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네 그래서 그들은 불편한 상황에 처한 나보다 훨씬 더 불행해.(p83)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中
•
• 죽기 전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라는 모리 교수의 말은 쇠렌 키에르케고르(Sψren Aabye Kierkegaard, 1813 ~ 1855)의 '신(神) 앞에 선 단독자'의 개념을 연상시킨다. 독실한 기독교도인 키에르케고르와 달리 모리교수는 유대교 신앙을 가졌기에 차이가 있지만, 유일신이며 인격신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크게 무리한 해석만은 아닐것이다. 이에 <불안의 개념 Begrebet Angest>, <죽음에 이르는 병 Sygdommen til Døden>의 일부를 옮겨본다.
•
•
•
•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주 분명하고도 단순하다. 말하자면, 단독자가 스스로 행위를 통해서 진리를 낳을 때 오직 그 때 비로소 진리가 그에게 존재하는 것이다.(p358)... 우리는 동정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동정심은 한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은 모두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올바르게 그리고 진지하게 인정할 때만 진실하다. 오직 그때에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p186) <불안의 개념> 中
•
•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 어떤 세속적, 육체적 질병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닌데, 왜냐하면 죽음은 사실 모든 질병의 끝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끝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엄밀한 의미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 대한 그 어떤 물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 병은 곧 그 끝이 죽음이고 또 죽음이 그 끝인 그런 질병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절망이라고 하는 것이다.(p63) <죽음에 이르는 병> 中
•
• 죽음이 필멸의 존재인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과제라는 점에서 <불안의 개념>에서 말한 단독자가 가져야 하는 동점심은 우리 모두에게 서로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죽음 앞에 선 단독자이기에 서로 사랑하고 동정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진리가 실현되는 것이며, <죽음을 이르는 병>에서 말한 죽음을 가져오는 절망을 넘어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닐런지. 다소 기독교적인 해석이지만, 모리 교수의 태도에서 키에르케고르의 그림자가 살짝 느껴진다.('살짝'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리 교수의 이야기에서는 '원죄'의 개념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불안의 개념>과 <죽음에 이르는 병>의 리뷰에서 다룰 계획이다.) 다시 돌아오면, 모리 교수는 키에르케고르의 동정심보다 더 나아가 사랑을 나눌 것을 강조한다.
•
• 내가 이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을 말해 줄까? 사랑을 나눠 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p104)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中
•
• 내 말을 믿게. 죽어 가고 있을 때는 사람들이 모두 다 같다는 게 참말임을 알게 되네 . 우리 모두 출생이라는 걸로 똑같이 시작하지. 그리고 똑같이 죽음으로 끝나네. 그런데 뭐가 그렇게 다르다는 거야? 인류라는 대가족에 관심을 가져야 하네.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게.(p231).. 여기에 비밀이 있네. 아이 때와 죽어 갈 때 이외에도, 즉 살아가는 시간 내내 사실 우린 누군가가 필요하네.(p232)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中
•
• 사랑을 나누는 것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사선(死線)의 지평을 바라본 한 노학자의 깨달음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살아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죽어서는 단독자로서 심판대에 서는 것은 동서양(東西洋) 모두에서 공통된 처지인 듯하다. 차이가 있다면 영원한 생명이냐, 아니면 환생(環生)을 통해 업(業)을 소멸하는가 하는 점인 듯하다.
•
•
• 아,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만일 그대가 애착심과 혐오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면 앞에서 말한 어떤 환영이 나타나더라도 진리와 진리를 깨달은 자와 그를 따르는 구도자들에게 기도하라. 그리고 자비의 신에게 기도하라. 그대가 지금 사후세계에 있다는 것을 알라. 모든 나약함을 버리라. 그대의 아들과 딸들 또는 두고 온 친척들에 대한 애착을 끊으라. 그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p447) <티벳, 사자 死者의 서 書> 中
•
•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의미의 이 라틴어는 고대 로마 개선식 때와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 인사로 사용되었다. 기쁜 날 사용된 이같은 말이 사용된 이유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이 결코 분리되지 않음을 일깨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
•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절대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와 '기회', 'timing'을 의미하는 카이로스에서 이 또한 분리될 수 없음도 생각하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카이로스)를 잘 살릴 때, 우리가 죽음 이후 시간이 소멸된 어느 지점에서 절대 시간(크로노스)를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통해 죽음의 의미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 이 책을 낸 지 20년이 흘러서야 마음 깊이 깨닫는다. 모리를 힘들게 한 것은 죽음이 아니었음을. 그것은 잊히는 것이었다.(p27)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中
•
• 잊히기를 두려워 한 이름이 '죽음'인 노교수를 위해서 '메멘토 모리'를 읊어보며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겨울호랑이2019-11-23 공감 (60)댓글 (6)
•
•
• 이집트인은 인간의 생이 현세에 국한되지 않고 사후세계에서도 현세 이상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내세관은 이집트가 갖고 있는 건조한 사막의 풍토 속에서 잉태되었다. 사막의 열사 위에서 죽은 사람들의 몸이 건조한 기후로 인해 자연적으로 미라화되어 생전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본 후손들은 사자가 현세와 동일한 신체를 가지고 사후생활을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p87) <이집트 사자의 서> 中
•
• 부활을 얻기 위해서는 영혼과 육신이 결합해야만 한다. 마치 오시리스가 세트에 의해 살해된 후 이시스에 의해 부활한 것처럼, 영원한 삶을 위해서는 육신과 영혼이 파괴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고대 이집트인들이 믿었던 내세관이다. 이집트인들이 말하는 영혼은 카(Ka)와 쿠(Khu)로 이루어진다. 우리식 개념으로 보자면 카는 영(靈)에 해당하고, 쿠는 혼(魂)에 해당한다. 그리고 여기에 제3의 개념으로 영혼의 새인 바(Ba)가 있다.(p88) <이집트 사자의 서> 中
•
• <이집트 사자의 서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는 죽음 이후 영원한 삶을 믿었던 그들의 내세관(來世觀)이 담긴 책이다. 이집트인들은 사자(死者)는 죽음을 통해 오시리스(Asar, Aser, Ausar, Ausir, Wesir, Usir, Usire, Ausare)의 심판을 받은 후 정화되고 태양신 라(Ra)가 지배하는 저편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
• 카는 개인의 운명을 내세로 인도하고 내세에 거주한다. 즉 사자를 도와서 신 앞에서 그를 변호하거나 태양신 라 앞에 인도하며 사자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한다... 반면, 우리의 관념상 혼에 해당하는 개념이 '쿠'이다. 쿠는 인간의 육체 내에 있지만 인간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체내를 빠져나와 여기저기를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믿어졌다.(p89)...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바'가 있다. 생전에는 육체에 있지만 사후에는 체외로 빠져나와 비상(飛上)하여 사자의 미라 주위를 선회하거나 미라 위에 앉아 있다가 다시 체내로 들어간다... 신관들이 장례일에 행하는 장의의 목적은 바가 갇히거나 파괴당해 내세로 못가게 되지 않도록 기원하는데 있다.(p90) <이집트 사자의 서> 中
•
• 인간의 영혼은 '카'와 '쿠' 그리고 '바'로 구분된다. '카'는 웹툰만화 <신과 함께>에서 변호사 진기한(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이고, '바'는 사후 오시리스를 만나는 여행을 하는 존재로 설명된다. '쿠'는 유체이탈을 하는 '혼(魂)'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집트 사자의 서>는 죽은 후 '바'가 몸밖으로 빠져 나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
• <사자의 서>에 수록된 각 장은 사실상 전체가 주문으로 되어 있다. 이를 이해하는 열쇠는 "주문을 낭송하기 위해서는 라 앞에서 손을 씻고, 정화하고, 향을 피우고, 빵과 맥주를 바쳐야 한다. 그러면 영혼이 파괴당하지 않고 백만 년의 수명이 주어질 것이다" "이 주문을 아는 자는 내세에서 영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류(類)의 주문에 있다. 이것이 부활의 조건이 된다. 주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자의 영혼이 부활하여 영원을 얻는데 있다. 모든 장들은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p151) <이집트 사자의 서>中
•
• 심판관인 오시리스를 만나기 전 사자의 '바'는 적들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이를 물리치기 위해 죽은 자는 끊임없이 오시리스와 라를 향해 기도를 하면서 오시리스에게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심장의 무게 달기' 의식을 통해 심판을 받는다. 의식을 통해 정화된 영혼은 오시리스를 만나고 부활을 통해 영원한 세상에서 복된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 고대 이집트인들의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이다.
•
•
• [사진] 심장의 무게 달기(출처 : 위키백과)
•
•
• 이집트의 전수 및 죽음의 의식 가운데 절정을 이루는 것은 '심장의 무게 달기'의식이다.(p181)... 충실한 보호자 아누비스와 죽은 자 후네페르 앞에는 진실의 저울이 놓여 있으며 접시 위에는 마트의 흰색 깃털이 꽂혀 있다. 무릎을 꿇은 아누비스가 저울의 균형을 살피고 있으며, 굶주린 괴물 아미트는 불순한 심장의 찌꺼기를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후네페르의 심장이 왼쪽 접시에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진실의 깃털이 놓여 있다. 저울이 균형을 유지하면 후네페르는 '정의로운 것'으로 선언된다. 그러나 저울이 심장 쪽으로 기울면 심장의 불순한 조각을 제거해서 후네페르가 저주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괴물 아미트가 심장의 불순물을 먹어치워 영혼을 순수하게 하고 카르마, 즉 업보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는 것이다... 심판을 마치고 환하게 미소짓는 전수자는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에게 인도되어 심판관 오시리스를 만나게 된다.(p183) <벽화로 보는 이집트 신화> 中
•
• 오시리스가 동생 세트(Seth)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아내 이시스(Isis)에 의해 부활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집트인들에게 죽음은 다른 삶으로의 연결인 탄생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죽음 이후의 삶'은 생전의 육신과 사후 영혼인 '바'의 결합이 필요한만큼, 티벳 불교의 윤회와는 다르다. 죽음에 대한 두 문명의 차이는 장례 문화의 차이에서 보다 극적으로 표현된다.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육체보다 정신을 강조했으며, 사후 하늘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천장(天葬)을 지냈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바'의 귀환을 기다리며 사막 위에 부활의 공간인 피라미드(pyrramid)를 만들어냈다.
•
• 죽음은 냉혹하게도 탄생과 연결된다. 이 둘은 밤과 낮, 음과 양,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이렇듯 신은 종종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오시리스는 원래 죽음과 관련이 있지만 재생과 부활을 상징하기도 하고, 사랑과 탄생의 신인 하토르는 죽음을 상징하거나 매일 저녁 해가 지고 '죽는' 서쪽과 연관되기도 한다.(p177) <벽화로 보는 이집트 신화> 中
•
• 이집트의 전생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인과응보적인 윤회사상과는 다르다. 이집트인들은 생전에 악행과 악업을 저지른 삶이 오시리스의 법정에서 혼을 파괴당하면 그의 바는 전생(轉生)하여 살아갈 수 없다고 믿었다. 때문에 동양적 사고에서 말하는 윤회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p90) <이집트 사자의 서> 中
•
•
• 무엇보다도 이 책의 뛰어난 점은, 우리가 사후에 보게 되는 그 모든 빛들과 신들의 세계가 사실은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투명된 환영에 불과한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 세계가 펼쳐 보이는 환상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삶도 죽음도 우리의 환영이고, 모습도 색깔도 마음까지도 실체 없는 환영의 세계이다. 삶도 내 자신이 만드는 것이고, 세계도 내가 창조하는 것이다.(p12) <티벳 사자의 서> 서문中
•
• <이집트 사자의 서>는 이처럼 이집트인들만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지만, 우리는 또한 책 안에서 유럽 문명의 여러 철학과 사상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 점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라 여겨진다. 그중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
• 카 사상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기원전 399년, 스승 소크라테스가 죽자 정신적 지주를 상실한 플라톤은 고독감을 견디지 못해 이집트로 여행을 떠난다. 여기서 그는 카 사상으로부터 지적 충격을 받고 이것을 '이데아'로 받아들여 그의 저작에서 발전시켰다.(p89)<이집트 사자의 서> 中
•
• 저녁에 태양이 지면 그것은 종종 지하 세계나 지옥의 영역으로 잘못 알려진 어둡고 굴 같은 두아트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믿었다... 두아트는 12개의 구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밤의 12시간과 일치한다... 이 어둡고 불안한 통로를 성공적으로 항해하게 되면 그 결과로 태양이 떠오르고 낮이라는 밝은 세상이 나타나는 것이다.(p162) <벽화로 보는 이집트 신화> 中
•
•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이 이집트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위의 글을 읽은 후 <국가> 제 7권을 읽어보면, '동굴의 비유'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속세의 굴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중 하나가 죽음을 맞은 후 두아트를 지나 태양신 라를 만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후 다시 동굴로 돌아와 부활한다는 이집트 신화에 기반한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런 뜻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동굴의 비유' 이면에 이집트의 영향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이집트 사자의 서> 속에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 신화 원형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예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다만, 이처럼 <이집트 사자의 서>는 우리에게 고대 이집트에 관한 새로운 사실과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면에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
•
• [사진]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출처 : https://www.pinterest.co.uk/pin/454159943648399992/)
•
•
•
• 여기 지하 동굴이 하나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게. 동굴의 입구는 길고 동굴 자체만큼 넓으며 빛을 향해 열려 있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다리와 목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기에 언제나 같은 곳에 머물러 있으며, 쇠사슬 때문에 고개를 돌릴 수 없어 앞쪽 밖에 볼 수 없네. 그들의 뒤편 저 멀리 위쪽으로부터는 불빛이 그들을 비추고 있으며, 불과 수감자들 사이에는 위쪽으로 길이 나 있고, 그 길을 따라서는 나지막한 담이 쌓여 있네.(514 a-b)... 그들 가운데 누가 쇠사슬에서 풀려나 갑자기 일어서서 고개를 돌리고 몸을 움직이며 불빛을 쳐다보도록 강요받는다면, 그는 고통받을 것이며 광채에 눈이 부셔서 여태까지 보아온 그림자들의 실물들을 바라볼 수 가 없을 것일세.(515 c-d)... 마지막에는 태양을 보게 될 텐데, 본래 있어야할 장소에서 태양 자체를 직접 보며 관찰하게 될 것이네. 그 다음 그는 벌써 계절과 해(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태양이며, 또한 태양이 가시적인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관장할 뿐만 아니라...(516 b) <국가 Politeia> 中
•
• PS. 이집트 문명 또는 오리엔트 문명이 그리스 문명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다음의 책들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래 책들의 상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배움과 깨달음 > 좋은책과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경운 정원 가꾸기>?? (0) | 2022.04.14 |
---|---|
영어는 우리말이다 (0) | 2022.04.14 |
★간과 당뇨에 좋은 발끝 부딪치기★ (0) | 2022.03.27 |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의 이유/이재명 (0) | 2022.03.27 |
어느 외교관이 본 한국 언론 (0) | 2022.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