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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억 인류의 더불어 삶, 새로운 생명 담론이 필요하다[글로벌생명학] 1 : 인간 중심의 시각을 버려라 본문
76억 인류의 더불어 삶, 새로운 생명 담론이 필요하다
[글로벌생명학] 1 : 인간 중심의 시각을 버려라
2020-07-27
이기상 edit@catholicpres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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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이기상 교수님의 두 번째 연재 주제는 [글로벌생명학]입니다. 새로운 생명 담론의 필요성과 의미를 담은 글로, 오늘부터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이기상 교수님은 독일 본토에서 하이데거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으로서 우리사상연구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며 문화와 생명을 화두로 시대의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 담론을 < 가톨릭프레스 >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이기상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주
76억 인류의 생존과 생태계 위기
2011년 11월 1일 마닐라의 호세 바벨라 메모리얼 병원에서 지구촌 70억 번째의 아기가 태어났다. 지구촌 곳곳에서 축복과 부러움 속에 태어난 이 아기는 여자 아이로 이름은 ‘다니카 메이 캄마초’다. 아기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장학금을 전액 지원받게 되었고, 아기의 부모에게는 작은 상점을 열 수 있을 정도의 보조금이 지원되었다.
2020년, 지구촌 인구는 76억이 되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언제나 경이롭고 축복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 지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을 떠올려 볼 때, 무조건 두 팔 벌려 환대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지구상 모든 생명들의 다양한 가치를 논하고, 공존과 상생의 토대를 마련하는 새로운 녹색 담론이 필요한 때다.
어느 과학자는 말했다. 이 지구상에 ‘생물학적으로’ 적절한 인구수는 5백만 명이라고. ‘생물학적으로’라는 단서가 붙었다. 그 이야기는 순전히 생물학적 질서의 차원에서 균형 잡힌 생태계를 고려할 때란 말이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발견하며 자연을 자기들에게 맞는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기 시작했을 때, 인간은 생물학적 차원을 벗어나 ‘문화적’ 차원에 들어선 것이다. 그것이 대략 2백만 년 전의 일이다. 천재지변과 온갖 맹수들 그리고 질병과 싸워야 하는 인간의 투쟁은 쉽지가 않았다. 그것은 인구증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그러니까 서력기원 원년에 지구상의 인구는 대략 1억 5천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5백만의 생물학적 수치가 1억 5천만이 되기까지 거의 2백만 년이 걸린 것이다. 그렇지만 그 뒤 인구수는 급격하게 불어나기 시작한다. 서기 1000년 경에는 4억 정도였다니 인구가 세 배로 늘어나는 데 천년이 걸린 셈이다. 그 다음 1900년 경에는 16억 정도였다고 한다. 인구가 네 배로 느는 데 이제 9백년이 걸렸다. 그런데 2000년 지구 위의 인구수는 60억 명에 이른다. 네 배가 되는 데 백년 밖에 안 걸린 것이다. 그리고 2011년 11월 1일 70억 명을 넘어선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구가 2050년 경에는 120억 정도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생물학적 질서의 차원에서 이 지구가 인간으로 인하여 과부하가 걸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이 각종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드러나고 있다. 해마다 150여 종의 생물들이 멸종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수십 종의 변종들이 생산되고 있다. 이제 인간은 다른 생물들의 생존에 최대의 적이다. 적자생존을 내세우며 우승열패를 당연시하는 경쟁과 투쟁의 진화론적 세계관에서는 인간 외의 모든 다른 것이 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도구와 수단이 된다. 그런데 이 원칙이 언제부터인가 동료 인간들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인간들 사이의 경쟁과 투쟁이 너죽고-나살기의 서바이벌[살아남기]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
일찍이 신의 죽음을 선포한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인간을 지구상에 가장 유해한 병원체[바이러스]라고 말했다. 인간만 생물학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재앙은 일어날 여지마저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이제 지구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행동에 나선 듯 싶다. 이 쓸모없는 병원체인 인간을 이 지구로부터 털어내기 위해서 이런 재앙을 준비하는 듯 하다. 가장 주목받는 생태학자의 한 사람인 제임스 러브록은 이것을 < 가이아의 복수 >라고 이름한다.
두 번째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와 발상의 전환
그렇다면, 인류를 위협하는 무서운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주’는 가능할까. 영화 < 2012 >에서는 철저히 과학의 논리와 경제의 원칙 아래 방주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선진국의 정상급 정치인들과 돈 많은 재벌들, 그리고 과학자들이 대지진과 대홍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주를 건립하면서 거기에 탑승할 사람들과 태울 생명체들을 엄선한다. 탑승을 위한 티켓 한 장은 16억 유로, 대충 우리 돈으로 약 2조 6천억 원에 해당된다.
지구 생태계 문제를 기술과 과학의 문제로 보고 그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일군의 사상가들과 과학자들도 있지만 많은 지성인들이 과학 내지는 기술의 문제를 과학 또는 기술로 풀 수는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동안 새로운 접근방법, 새로운 해결방법은 발상의 전환, 의식의 전환, 생활방식의 전환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 중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사상의 하나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자연에 대한 지금까지의 정복자적인 태도를 바꾸어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아나가며 함께 진화해나가야 한다는 소위 < 공생과 공진화 >의 사상이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연에 대한 시각, 즉 자연을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한다. 자연을 더 이상 대상화시켜 인간이 마음대로 파헤쳐 이익을 극대화해도 되는 에너지 저장창고쯤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자연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의 자양분을 받고 있는 탯줄이며 생명의 텃밭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삶’을 위한 생명의 담론을 세우자
▲ ⓒ 문미정
인류는 지금 전환기에 서 있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고 있다시피 하고 있으며 누구는 인류 역사를 ‘코로나 이전’ 시기와 ‘코로나 이후’ 시기로 구분해야 한다고 까지 말한다. 그러나 시야를 넓고 깊고 멀리 본다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간 중심의 시각을 버려라!” 우주와 자연이 인간을 위해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운영되고 있다는 시각을 버리고 우주적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대답은 진작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인간은 이 지구상에 가장 쓸모없는 바이러스”라고 선언한 니체의 말이 맞았음을 확인할 것이다.
세계가 하나가 된 지구촌 시대의 최대의 과제는 < 더불어 삶 >이다.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야 할 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다른 생명체와도 서로 살리며 더불어 살아야 하고, 생명이 없다고 간주되고 있는 무생물하고도 조화와 균형 속에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 이렇듯 지구 위의 모든 존재하는 것이 서로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과제를 슬기롭게 떠맡아가야 할 21세기의 최대의 화두가 < 생명 >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보는 눈, 사람을 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머리를 굴려 계산해서 이득이 되는 것만을 하려는 약삭빠른 생활방식을 버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영성으로 아우르고 감싸 보살피는 사유태도를 배워 익혀야 한다. 20세기 위대한 영성가인 마더 데레사는 “나눔 없이 평화 없다”고 하였다. 지금 지구상에 평화가 없는 것은 나누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잘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려는 나눔의 정신만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다같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인구폭발의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76억 인구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해법은 결코 경쟁의 원칙, 너죽고-나살기 식의 죽임의 논리는 아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위대한 영성가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 21세기를 예비하면서 자신의 삶을 영성적으로 산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아시아는 그 어느 대륙보다 영성적인 분위기가 삶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것은 그 전통이 간직해온 생명을 중시하는 생명학적 세계관 때문이다. 2020년 위기에 놓인 지구와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남는 방안을 찾기 위해 새로운 글로벌 생명 담론을 펼쳐나가도록 하자.
[덧붙이는 글]
< 70억 인류의 평화로운 ‘더불어 삶’ >, 『경햡잡지』 2012년 1월호에 실린 칼럼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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