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요한복음 제3장-강해 본문
요한복음
요한복음 제3장-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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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sdd
2019. 3. 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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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김효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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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3장: 거듭남
1-15절, 거듭남에 대해
[1-2절]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바리새인들은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경건하고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자들이었다. 형식과 외식에 치우친 자들도 많이 있었던 것 같으나 경건한 자들도 있었던 것 같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을 뿐 아니라, 또한 유대인의 관원이었다. ‘관원’이라는 말은 공회원같이 유대 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진 지도적 인물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니고데모는 종교적으로 경건하고 사회적으로 신분이 있는 자이었다. 니고데모는 아마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 왔던 것 같다. 그는 경건한 사람들을 대변하듯이 예수를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 곧 선지자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하며 그 근거로서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상 선지자 이상이셨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의 부족함을 아시고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우선 거듭남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에게 거듭남이 필요하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영적으로 다시 나지 아니하면 그는 천국을 볼 수 없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5절). 아담과 하와는 범죄함으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었다(창 3:24). 그러므로 사람이 죄인인 채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6:9-10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4-5절]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거듭남은 육신적 의미가 아니고 영적 의미이며 영혼이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는 것을 가리켰다. 여기에서 물은 죄씻음을 상징한다. 물로 더러움을 씻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씻는다. 세례 의식의 물은 그것을 상징한다. 그것이 복음의 중심 내용이다(요 15:3; 엡 5:26; 히 10:22).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를 사람의 심령에 적용하신다. 이것이 성령의 구원 활동이다(고전 6:11; 딛 3:5). 모든 사람은 성령의 감동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6-8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거듭남은 육신적 의미가 아니고 사람의 영혼의 변화를 가리킨다. 사람의 출생은 육적인 일이었다. 영혼이 그 속에 있으나,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으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의와 선을 행치 못하였다. 영혼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져 있으므로 그 기능인 지식과 감정과 의지는 매우 어두워졌고 약해졌다. 그러므로 그 영혼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다시 살아나고 지정의의 변화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영은 바람과 같다. ‘영’이라는 원어(프뉴마)는 ‘바람, 숨’이라는 뜻도 있다. 우리는 바람이 어디로부터 나와서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없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남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바람을 볼 수는 없으나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듯이, 우리는 거듭난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람은 볼 수 없으나,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성령을 볼 수 없으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참된 회개와 믿음의 고백과 변화된 삶을 통해 그를 확인할 수 있다.
[9-13절]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12) 인자(人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거듭남은 비록 신비한 일이기는 하지만 땅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것은 ‘땅의 일’ 즉 땅에서 일어나고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거듭남은 사람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원 사건이다.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경험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는 모든 사람은 이미 경험한 일이다.
예수께서는 거듭남에 대한 자신의 말이 진리임을 강조하셨다. 그는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라는 표현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 구별된 인격을 암시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비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세 구별된 인격으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은 성경에 계시된 명확한 진리이지만 동시에 매우 신비한 사실이다. 주께서는 또 ‘하늘의 일’에 대한 말씀도 암시하시는 것 같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같은 책에 기록된 천국에 대한 말씀들을 가리켰다고 본다.
본절은 예수님의 신인(神人) 양성을 증거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라는 말은 그가 본래 하늘에 계셨음을 나타낸다. 그는 요한복음 1:1의 증거대로 ‘태초부터 계신 자’ 곧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늘에 있는 인자(人子)’라는 원어(호 온 엔 토 우라노)는 그가 땅에 내려오신 후에도 여전히 ‘하늘에 있는 인자’ (KJV) 즉 신성(神性)으로 항상 하늘에 계심을 나타내든지, 아니면 단순히 ‘하늘에 계셨던 인자’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이시다. 그는 사람이시다.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는 말씀은, 비록 에녹(창 5:24; 히 11:5)과 엘리야(왕하 2:11)가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갔고 모든 의로운 성도들의 영들(히 12:22-23)이 그러하지만, 천국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의 구원 계획을 이해한 자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14-15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전통본문)13)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노하셔서 불뱀을 보내신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죄를 뉘우쳤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게 하셨고 불뱀에 물린 자마다 그것을 쳐다봄으로 죽지 않고 살게 하셨다.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豫表)했다.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실 것을 가리켰다. 요한복음에는 이런 표현이 몇 번 나온다(요 8:28; 12:32, 34.). 십자가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목표는 영생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죄인들이 죄사함을 받아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받고 천국에서 복된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거듭남에 대해 세 가지의 내용을 말씀하셨다.
첫째로, 천국 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거듭나야 한다. 사람은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죄인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거듭나지 못한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둘째로,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물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가리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그 속죄의 복음의 말씀으로 죄씻음을 받음으로 거듭난다. 이것은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속량하신 자들에게 대속의 의(義)를 적용하셔서 새 생명을 주신다.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이며 이것이 구원이다.
셋째로, 사람이 거듭난 증거는 회개와 믿음이다. 예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3:14-15).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이며(요일 5:1) 참 믿음은 참 회개를 동반한다고 말했다(요일 3:9-10). 우리는 정말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된 거듭난 자인지 스스로 물어보자.
16-21절, 믿음과 구원
[16절] [이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기]14)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할 이유를 말씀하신다. 그가 십자가에 달리셔야 할 이유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 즉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사랑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세상’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포함하여 온 세상 사람들을 가리킨다. 물론, 세상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구원하실 자들을 선택하셨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6:39에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이 있고 그들만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택하신 자들의 수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7:9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섰다”고 증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주셨다. 하나님께는 외아들이 있으시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언제 낳으셨는가? 그것은 영원 전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영원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라는 성경 진리에 근거해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의 본질적 일체와 수적 하나 되심의 신비를 말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주셨다.’ ‘주셨다’는 말은 아버지께서 그를 세상에 보내주셨음을 뜻한다. 우리는 그것을 성육신(成肉身)이라고 부른다. 영원하신 아들께서 사람의 영과 육체를 취하여 사람으로 오셨다. ‘주셨다’는 말은 또 아버지께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도록 내어주셨음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 그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다(마 20:28). 그의 죽음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였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주신 목적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멸망할 처지에 있었다. 죄인들의 마지막 상태는 지옥 형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신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목표는 영생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 사람이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상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는 아무도 없다(롬 3:20).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사 64: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정하신 것이다. 이러한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구원의 수단이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1-22에서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義)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말했고, 에베소서 2:8-9에서도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상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은 내가 자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만세 전의 선택과 이끄심이 없이는 내가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주께서는 요한복음 6:44에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또 요한복음 10:26에서는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증거는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했고(롬 5:8), 또 사도 요한도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말하였다(요일 4:9-10).
[17-18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세상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심판하다’는 원어(크리노)는 ‘정죄(定罪)하다’는 뜻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는 결코 정죄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롬 8:1).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정죄를 받은 것과 같다.
[19-21절]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구원을 받은 증거는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 곧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정죄받았다는 증거는 빛을 멀리하고 어두움을 사랑하는 것이다. 불신앙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죄하셨다는 증거이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않는다. 그 행위가 드러나고 책망을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적이나 간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는 낮을 두려워하며 밤을 좋아한다. 그러나 진리를 좇는 자, 즉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의를 행하고자 하는 자는 빛으로 나아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주셨다. 그는 자기 독생자를 죄인들을 위한 속죄제물로 십자가에 희생시키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셨다. 독생자는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하나님의 자기 희생적 사랑이었다.
둘째로, 하나님의 정하신 구원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사람은 종교적 고행이나 도덕적 선행으로 구원 얻지 못한다. 사람의 행위는 더러운 누더기 옷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을 수 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과 같다. 그는 빛이 세상에 왔으나 빛으로 오지 않고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나뉜다. 하나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버리신 자이다. 그 둘 외에는 없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가?
22-36절, 세례 요한의 증언
[22절]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예수께서는 유대 땅으로 가셔서 거기 머무시며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셨다. 요한복음 4:2에 보면,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주었다. 세례는 구약의 결례(潔禮) 즉 정결 의식에서 나왔다. 구약의 결례는 물로 씻거나 피를 뿌림으로 이루어졌다(레 14:7-8).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하는 의식이다(행 2:38). 그것은 복음 진리의 핵심을 표현한다. 누구든지 죄씻음을 받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다. 죄의 대가는 죽음과 멸망이다.
[23-24절]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애논은 요단강 상류 쪽이다. 공관복음에 보면, 예수께서는 요한이 옥에 갇힌 후에 갈릴리에서 전도사역을 시작하셨다(마 4:12-13; 막 1:14).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지금까지 내용은 예수께서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의 일들이며 공관복음에서 생략된 것들이다. 요한복음은 이처럼 예루살렘 부근에서의 예수님의 초기 사역들에 대해 증거하며 이런 점에서 공관복음을 보충하는 성격을 가진다.
[25-27절]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요한의 제자들의 불평스런 보고는 분명히 아직 30세 가량밖에 안 된 젊은 사역자 요한에게 인간적으로 위축될 만한 일일 수도 있었으나 그에게는 그것을 극복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요한은 예수께서 가지고 계신 모든 지혜와 은혜와 능력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임을 분명하게 증거하였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도 그러하다. 우리의 지혜, 건강, 돈, 환경 여건은 물론, 우리의 믿음, 구원, 성화, 지식, 분별력, 능력, 충성까지도 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이다(고전 4:7).
[28-30절]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리스도 앞에 보내심을 받아 사람들에게 그를 소개하는 자에 불과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자신의 위치와 신분과 사명을 바로 알고 있었다. 그는 또 자신을 신랑의 친구에 비유하였다. 신부를 취하는 자가 신랑이지만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신랑 친구들이 크게 기뻐하듯이, 자신은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확실히 하나님의 귀한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젊은 사역자로서의 인간적인 쓸쓸함이나 우울함이 없었다. 그에게는 불필요한 인간적 연약성이 없었고 또 경쟁심이나 시기심 같은 추한 모습이 없었다. 그에게는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기쁨이 충만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그렇게 좋은 모습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세례 요한은 또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실 때이며 자신은 사명을 다했으므로 쇠해지고 사라져야 할 자임을 고백한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직분자와 봉사자에게 본이 된다. 직분자는 자신의 위치와 직무를 바로 알고 그것을 지키고 자기 본분을 다해야 하며 또 다른 이의 위치와 직무를 바로 알아 그를 격려하며 그의 일을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을 무시하지 말고 그에게 무례히 행치 말아야 한다. 시기와 교만, 미움과 다툼은 무서운 악이다.
[31-34절]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위로부터 오시는 이,’ ‘하늘로서 오시는 이’라고 증거하였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근원과 본질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근원과 본질은 땅이나 땅에 속한 것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것, 곧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신적 인격이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미 증거했었다(요 1:34). 예수께서는 만물 위에 계신다. 그는 그 근원과 본질, 권위와 영광에 있어서 피조세계를 초월해 계신다. 그는 단순히 땅 위에 사신 한 인간이 아니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단순히 한 훌륭한 인간 선생이 아니시고 위로부터 오신 이, 하나님께로서 오신 이, 만물 위에 계신 이이시다. 그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그의 본질은 하나님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그가 보시고 들으신 것을 증거하셨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하신 내용은 다 진실하고 확실하며 믿을 만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말들, 그 어떤 인간 스승의 말들과도 비교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진실하고 확실하며 믿을 만한 내용이다. 왜냐하면 그는 친히 하나님 아버지를 보시고 그의 뜻을 들으신 자이기 때문이다. 그와 비교할 수 있는 인간은 온 세상에 아무도 없고 인류 역사에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증거하신 내용을 받는 자들이 없었다. 그것이 어두운 세상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실상,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질적으로 하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神性)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골 2:9). 또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시는 영이시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신약의 사도들도 성령의 감동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들을 전하였다.
[35-36절]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으나,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 죄인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은 예수 믿는 길밖에 없다.
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인격과 영광을 감사하며 찬송하자. 그의 근원과 본질은 땅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신적 구주이시다. 그는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에게 경배와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를 가르치시고 중보하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신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주시는 풍성한 말씀을 사모하며 받아 누리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풍성한 은혜와 진리의 말씀을 주셨고 그것들은 다 신약성경에 기록되었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오류와 섞인 것 없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 안에 충만히 거하자.
셋째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이다. 교회 생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과 영생을 얻고 그 구원의 감격 때문에 즐거이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이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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