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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제2의 창조사역 본문

배움과 깨달음/숨터일지

제2의 창조사역

柏道 2020. 9. 7. 11:07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장 1절~5절]

 

요한복음은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늦게 기록 된 복음서이다.

주후 약 9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태, 마가, 누가는 공관 복음서이다.

반면에 요한복음은 희랍철학의 로고스를 도입부에 인용하고 있다.

동양철학, 한 철학사상에 가장 근접한 복음서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장1절]

 

 

창세기의 창조는 물질세계의 창조사역을 기록한 것이고
요한복음의 창조는 영적세계의 창조를 기록한 것이다.

창조는 말씀으로 이루어 진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하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이 말씀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말씀은 품고있는 말과 발설된 말로 나눌 수 있다.

하나님이 품고 있는 말씀,

즉 하나님과 함께 있는 말씀이 로고스(이성)이다.

말씀이 성령으로 왔다는 것은 얼이(정신) 생각 속으로 왔다는 것이다.

생각 속에 품고 있는 말씀이 하나님과 얼줄로 연결되어 있는 영이 성령이다.

하나님이 품고 있는 말씀은 창조의 모든 유전자 정보를 내재(體)하고 있다.

이 유전자 정보가 운동(用)을 하게 되면 물질적인 창조가 이루어 진다.

 

성경은 비유와 비사로 기록되어져 있다.

비유에는 3가지 비유가 있는데

첫째 상징적인 비유가 있고

둘째 은유적인 비유가 있으며

셋째 사실적인 비유가 있다.

 

창세기에서 창조사역은 6일동안 이루어진다.

6일 천지창조는 엄청난 은유적, 상징적, 사실적 비유가 숨겨져 있다.

가장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요한복음의 창조를 제2의 창조사역이라 부른다.


어떤 한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는 것은 일종의 창조이다.

 

그런데 영적인 창조는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거듭나야 한다. 솟나야 한다

부활해야 한다.


肉的인 獸性에서 靈的인 얼나(靈我)로 부활(거듭남)해야 한다.

 

요한 복음 2장에서 예수님의 첫번째 이적이 나오는데 예수가 어머니와 함께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대 되어서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이적을 행하신다.

영적인 창조는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것처럼 속성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이 요한복음 3장 니고데모와의 대화에 나온다.

요한복음 3:3 - 8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성령으로 거듭남이란?

죽음의 제나에서 얼나인 생명으로 완전히 옮겨가야 한다.

 

천지창조가 6일동안 이루어졌다는 상징적, 은유적인 성경말씀을 앞에서 나누었는데....
가나의 혼인잔치에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이적에 6개의 물 항아리가 나옵니다.

6이라는 은유적 비유가 숨겨져 있는 겁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을 김흥호 목사는 다음과 같이 풀어주었다.

 

"태초에 계란(말씀)이 있었다. 이 계란(말씀))이 어미닭(하나님)과 함께(품고) 있었으니

이 계란(말씀)이 곧 병아리(그리스도)가 되었다.

그가(병아리) 태초에 어미닭(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계란이 어미닭과 함께 있었다

어미닭이 계란을 21일동안 품음으로 병아리가 되었다.

그가(병아리) 태초에 어미닭(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그리고 병아리가 되었다

어미닭의 도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병아리 즉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거듭났다.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성령(말씀)이 계셨다. 이 성령(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성령(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3 만물이 그(성령)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성령)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성령)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그리스도)이라

5 빛(그리스도)이 어둠(세상)에 비치되 어둠(세상)이 깨닫지 못하더라"

 

사람은 몸나와 맘나(제나, 수성, ego) 그리고 얼나(영아, 성령)로 되어 있다.

제나를 죽이고 얼나로 솟나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거듭남이다.

 

그렇다면 영적인 거듭남(부활)의 효과는 무엇인가?

 

영원한 생명인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다.

영원한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이다.

영원한 생명이 말씀이다.

영원한 생명이 로고스이다.

영원한 생명이 그리스도이다.

영원한 생명이 얼나이다.

영원한 생명이 참나이다.

영원한 생명이 성령이다.

영원한 생명이 빛이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께서 얼나(성령)로

보내주신다.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는 요한 복음 4장에

'예수님과 수가성여인이 나누는 대화'에서

자세하게 나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 4장 13]

 

여기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말씀이다. 샘물은 생명을 살린다.

즉 영원한 생명이 말씀이다. 말씀이 생명수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한 4장 21-24]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리고 얼나로 거듭난 사람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시편 82-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요한 10장 34-36]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크리스찬 속에는 모든 해답이 들어있다. 예수께서는 인간들의 마음속에
드리워진 무지의 어둠을 남김없이 밝히고 그들을 깨우쳐서 진리의 길,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 그 당시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신을 이미 내면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절대영원성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다. 그들에게는 가르침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이들을 가르치셨다. 말씀으로써,
그리고 행동으로써.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무한한 진리의 보고였으며,
그의 일거일동은 인류의 완성과 구원을 향한 초석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진리를 강조하시기 위하여 다양한
기적을 행하셨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세인들의 관심을 모아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적은 인간들을 매혹하여 숭배를 받기 위함이 아닌, 순수하게 그들을 일깨우기 위해, 그리하여 그들이 진리를 깨닫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그들 내면의 영성을 깨우기 위함이었다. 그 분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동경을 받는 데에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 그 분의 유일한 목표는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한복음 10:30)라고 하셨다. 이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임과 동시에 우리의 아버지이다. 이 말씀을 통하여 그 분은 우리와 신 사이의 운명적 결속을 강조하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가 신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본질적으로
신이라는 궁극의 진리를 깨닫게 하고자 하셨다. ‘너희의 율법에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고 하였다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요한복음 10:34)

 

 

柏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