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性通光明(성통광명) 본문

배움과 깨달음/숨터일지

性通光明(성통광명)

柏道 2020. 8. 28. 17:10

性通光明(성통광명)

 

 

眞性이 곧 一神이니 그 진성을 통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성통광명이다.

성통이란 인간이 스스로의 중심에서 우주의 절대자이며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니 이것이 道通인격이다

(상구보리이다)

 

 

성통광명은 개인구원이요, 재세이화는 사회구원이요, 홍익인간은 인류구원이다.

 

물질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오늘날의 현대문명은 사람들의 물질적 풍요에는 크게 기여했으나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크게 황폐화 시켰다.

 

사람들은 누구나의 마음속에 자신을 지켜주는 절대자 하나님(하느님, 천주님, 부처님, 상제님, 진아, 한얼, 한님, 신 등 무어라고 부르든지 같음, 곧 절대 지존의 존재)이 항상 계시니, 우리 모두 서로를 존중해야 할 것이며,

어떤 절대자나 구세주 같이 저 멀리 저 높은 곳에 있다는 외부의 힘인 우상에 의존하여 구원을 바라지 말고,

 

스스로의 마음속에 이미 내려와 계신 구세주를 밝게 깨닫고(성통광명),

세상에서 조화로운 삶을 이루어(재세이화),

람들에게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홍익인간) 실천하여 온 세상이 밝고 밝은 광명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곧 깨달음을 얻어 자기도 완성하고, 세상에서 재물을 얻거나 권력을 얻거나 명예를 얻거나 하면, 거기에서 그치지 말고 주위에 크게 유익한 사람이 되도록 해서, 멋진 인생을 완성토록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천궁이다.

 

 

*** 성통광명 ***

 

* 성통광명(性通光明) : 본 성품을 통하여 빛을 밝히라는 것이니, 밖에 있는 우상화된 구세주가 아니라 내안에 계신 절대자, 곧 내 본 성품 안에서 빛과 같은 구세주를 깨달아 밝히라는 것이다.


외부의 우상화된 힘에 의존하거나, 그 힘을 믿지 말고, 내안에 잠재되어 있는 힘, 곧 내안에 숨어있는 힘인 내안의 구세주를 깨달아 발견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자기 스스로가 자기 삶의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주 전체와 하나가 된 완전한 영혼으로서 자신을 깨닫는 것이 곧 하나님을 깨닫는 것이다.

그대가 곧 우주이니 그대 안의 우주를 열라.

 

그리하면 스스로가 신적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안에 이미 완전함이 깃들어 있으나, 단지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 일뿐이다.

 

신을 찾고자 하는 나의 마음은 참 나(자아)를 찾으라는 신의 마음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신의 아들이다.

 

다만 그 신성(神性)을 스스로 찾지 못하고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며, “하나님은 이미 뇌 속에 내려와 계시니 스스로에게서 구하라”는 삼일신고의 가르침과 같이, 자기 안에 이미 깊이 내려와 계시는 하나님을 부활시켜야 한다.

 

신은 분명 우리의 90%의 잠자는 뇌 속에 분명히 살아계시므로 저 멀리에 있다는 신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내 안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부활시키기만 한다면 누구나 현인이 될 수 있고 성인도 될 수 있다.

 

사람들은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이 앞서며,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내면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런 내면의 대화는 바로 내 안에 머물고 있는 어떤 영적인 존재일 것이다.

 

내 안에 머물고 있는 이러한 영적인 존재와 스스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유는 내 안의 보다 차원 높은 영적존재, 곧 차원 높은 자아가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며, 깊은 깨달음이 수반되면 확신으로 이어져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심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차원 높은 인간의 자아(自我)와 하나님의 신성(神性)은 동일하다.

 

항시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우리의 구세주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계시며, 나의 구세주 하나님은 바로 내안에 계신다. 따라서 이미 한 사람마다에 하나님이 상주하고 계시므로 하나님의 분신으로서 한 사람의 생명이 그 무엇보다도 귀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에 깃들어 계시며 내 안에서 활동하고 계시므로 우리와 다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매개체로서 하나님과 나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존재다.

 

내 스스로가 하나님(하느님, 천주님, 신, 부처님, 상제님, 진아, 한얼, 한님 등 무어라고 부르든지 같음, 곧 절대 지존의 존재)과 하나임을 진실로 깨달을 때 본인 스스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으며, 자신감이 생김으로서 비로소 남을 위한 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모든 능력을 이미 나누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오히려 고통과 불행을 창조하고 있다.

 

일단 조용히 명상의 상태에서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라. 눈에 보이지 않고 현실적 감각으로 느껴지지는 않으나 지금 이 순간에도 초월적 존재이신 그분은 내 안의 깊은 곳에 깃들어 계시며. 동시에 초월적 존재이신 그분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내면의 대화를 통하여 감성과 지성을 연결시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므로, 내면의 대화 상대방(자아)과 일상적인 상황에 대해서 부정적인 대화를 나누면 그 상황이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대화하면 긍정적인 상황이 된다.(자기 최면, mind control)

 

 

마음은 모든 것을 창조하고 소멸시키는 신의 창조적인 힘이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에는 스스로의 삶 속에서도 부정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며, 예전에는 생각이 물질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하였으나, 최첨단의 심리학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양자물리학을 비롯하여 유전공학까지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물질세계와는 다른,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 주고 있다.

 

하나님, 한님, 천주님, 부처님, 상제님, 한얼님, 브라마 등 어떻게 불리는 신적 존재이던 나의 구세주는 현실과 동떨어진 저 멀리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절대자이신 구세주는 창조만 하고 분리된 존재로서 멀리 떠난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 속에 영(靈)으로서 스스로 깃들어 계시며, 우리의 생각 이전의 차원에서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깃들어 계시면서 우리 인간과 항시 함께하며 모든 변화의 과정에 동참하고 계시다.

 

‘신(神)은 초월적 존재로서 전지전능하다’는 말은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얘기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말은 불가능이 없다는 것으로서, 존재론적으로 볼 때 위아래 전후좌우도 없고 어느 곳이든 시공에 관계없이 동시에 없는 곳이 없으며, 또한 안(속)과 밖(겉)의 구별 없이 가장 클 수도 있고 동시에 가장 작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존재를 우리가 굳이 말로서 표현 한다면 그것은 허공밖에 없다. 곧 신을 비유할 수 있는 용어는 허공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계라 하는 세상이 결코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우리의 옛 영적 스승들은 이미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최근에야 이를 발견하여 증명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물들은 빈 공간 없이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으며 서로가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세한 차원으로 관찰해 보면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는 물질도 실제로는 허공 속에서 수많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입자들 역시 마지막에 남는 것은 오로지 순수한 에너지 체의 결속임이 밝혀져, 에너지(기)와 물질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게 되었으니, 결국 물질은 표현된 에너지요, 에너지는 드러나지 않은 물질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의 실체도 90% 이상이 공간으로 채워진 허공의 존재임이 밝혀졌다.

 

이 허공의 자리는 눈에 보이는 실체는 아니나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으로서 이 허공이라는 존재의 본질은 바로 신의 자리로 드러남이다.

 

뉴턴의 물리학적 개념은 객관적 실체인 입자, 곧 더 이상 파괴시킬 수 없는 객관적 입자만을 물질의 고유한 성질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뉴턴 물리학의 입장은 이미 부정되어진지 오래다.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데이비드 봄 등 선구적인 양자물리학자들은 뉴턴의 입자설이 타당성이 없음(절대적이지 않음)을 밝혀주었으며, 결국 과학자들은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이론에 근거하여 ‘관찰자의 관찰행위 자체가 관찰결과에 영향을 미친다’(코펜하겐 선언)고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은 자연의 물질과학에서 마저도 관찰자의 주관적인 사고방식이나 의지, 감정에 따라 객관적 관찰결과가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곧 관찰자의 의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니, 결국은 본인 스스로의 의지,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것이다. 이것이 현대 물리학이 도달한 ‘과학적’이란 것의 결론이다.

 

뉴턴역학의 절대적 개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상대성이론에 이어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는 항상 물질적인 성질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허공 속 에너지인 파동의 성질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양자역학은 더욱 발전하여 우리의 눈으로는 단단해 보이는 물질이라는 것도 실제로는 순수한 물질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입자성과 파동성을 띤 에너지’라는 양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밝혀 주었을 뿐만이 아니라, ‘관찰자 참여 우주론’에 근거하여 입자의 이동과정에 사람의 관찰 주관이 개입함으로써 그 이동이 상하, 좌우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사람의 관찰 주관, 곧 인간의 마음이 개입함으로써 물질입자가 변한다는 것이 드디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부분을 이해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프렉탈 이론과 우주만물은 하나의 거대한 끈(네트워크)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이른바 ‘초끈 이론’까지 등장하게 되었고, 현대 과학자들도 드디어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많은 과학자들이 유전자 코드와 DNA의 단백질구조를 해독하면 생명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으나 인간 유전자는 의외로 생각처럼 많지 않았다.

대신 유전자가 서로 결합되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생명 비밀을 푸는 열쇠는 개별 유전자가 아니라 결합체, 곧 유전자 네트워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최첨단 과학이론인 양자역학은 인간이 우주(절대적 존재)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했다. 양자역학은 의식과 물질 사이에 다리를 놓은 셈이니 곧 정신력의 과학에 다름 아니다.

 

최첨단의 이러한 사고 체계는 뜻밖에도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우리의 옛 가르침을 살펴보면 우리의 옛 철학적 사고를 표현한 천부경 및 삼일신고, 366 사 등의 경전에 이미 완벽하게 전개되어 있다.

 

* 옛날의 서구과학이나 낡은 사고방식에서는 오직 큰 것 안에만 작은 게 들어간다는 이론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작은 것 안에도 큰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곧 과거에 우리의 조상들이 ‘사람 안에 우주가 있다’고 설파하던 것을 이제야 깨달은 프렉탈이론인 것이다.

 

양자역학 연구 후 ‘관찰자 참여 우주론’은 입자의 이동과정에 관찰 주관이 개입함으로써 그 이동이 상하, 좌우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사람의 관찰 주관, 곧 인간의 마음이 개입함으로써 물질입자가 변한다는 것이 드디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음을 말해준다.

 

1979년 스페인에서 물리학, 생물학, 의학, 심리학, 철학 분야 등 각계의 세계적 석학들이 함께 모여 의식과 물질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토의를 한 이후, 일단의 과학자들은 마음과 물질이 별개의 것이라는 기존의 이원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마음과 물질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일원론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신과학운동(New Age Science Movement)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을 갖기 전에 어떤 일들이 먼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생생하게 상상하는 것은 실제로 경험한 것과 같아 몸속에서 물리적 작용을 일으킨다. 따라서 우리가 마음속에 새로운 사실을 품는 순간에 그 자체로 호르몬을 생성시켜 에너지를 이끌어내고 물질적 차원의 형태로서 드러나게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의 원천인 창조적 에너지는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에게서 평화를 구하는 순간에 벌써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믿음은 감정이나 행동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신체까지도 바꿀 수 있다. 믿음은 두뇌신경에 명령을 내려 체내 생화학 변화까지도 만들어 내므로 정신적 스트레스뿐만이 아니라 육체적 스트레스도 지배한다.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도 나요, 나를 붙잡아 매는 것도 나다.

과학적으로 드러난 바에 따르면 두뇌의 능력은 최첨단 컴퓨터를 능가한다.

 

두뇌는 매 초당 300억 비트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으며 사람의 신경계는 약 280억 뉴런(신경세포)을 가지고 있으며 각 뉴런은 100 만 비트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초소형 컴퓨터와 같다고 한다.

 

뉴런은 각기 독립적으로 활동하지만 네트워크화 되어있어 0.02초 안에 수십만의 다른 뉴런들에게 체증현상 없이 제각기 동시에 정보를 전달하며 한 문제를 동시에 공략할 수 있다. 또한 하버드 대학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몸속에 들어간 약의 화학작용까지도 압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편적인 믿음을 진실 된 믿음으로 바꾸면 생활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다. 스스로 뛰어난 결과를 만들도록 진실 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내안에 잠재되어 있는 힘을 믿고 확신이 설 때 자신의 능력은 최대한으로 발휘되는 것이다.

 

 

 

정신력의 과학에 대하여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나 스스로 깨닫고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마음의 변화만으로 심장이 더 심하게 뛰고, 입에 침이 마르며, 편해지기도 하고, 답답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평상시의 의식단계를 베타파의 단계라 하는데, 명상으로 이완된 상태, 혹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긴장을 풀어주면 실제로 뇌파의 흐름이 바뀌며, 이를 알파파의 단계라고 한다.

알파파의 단계는 매우 건강한 의식상태로서 우리 몸의 긴장도 풀어준다.

 

이와 같이 마음의 변화에 따라 물질인 몸이 반응하고 변화하는 현상은 수 없이 많은 과학적 실험에서도 이미 밝혀진 바 있으며, 하버드 대학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몸속에 들어간 약의 화학작용까지도 믿음의 힘이 압도하여 약리작용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리적인 면에서 볼 때 우리 몸은 에너지의 집합체로서 몸의 약 70%가 물이다.

 

물은 마음의 변화에 따른 의식은 물론이고 관심 있게 바라보기만 해도 물질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물의 결정체 사진집(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모토 마사루)도 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생각이 물질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하였으나, 물이라는 물질이 사람의 의지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물질도 사람의 의지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방증 하는 것으로 이는 곧 정신과 물질이라는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여겨지던 것들이 실은 서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곧 서양철학과 과학을 이끌어온 이원론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사실 정신력의 힘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암암리에 믿어온 바다.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단지 그 능력을 스스로 차단시키고 있는 것뿐이다.

 

사람들이 학습을 통해서 배워왔던 것들, 그동안 가지고 있던 지식이나 판단기준을 버린다는 것은 어떤 내용이든 처음에는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지식만이 진리라는 닫쳐진 태도로는 진정한 발전과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만일 서구의 이원론적 학문체계에만 익숙해져 있는 사고만을 유지시켰다면 닐스 보어나 아인슈타인 같은 대 학자들의 새로운(?) 이론 체계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접하게 되는 지식이나 어렵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소극적이며, 오히려 기왕에 접해보았던 것이나 쉬운 일에는 적극성을 띤다.

그러나 나를 방해하고 있는 ‘어렵다’는 생각은, 오로지 잘못된 학습에 의한 부정적인 저항감 때문이다.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더 심할 수도 있으나, 이러한 거부감은 자아의식에 대한 변화와 성장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보다 높은 자아, 곧 절대자 하나님과 마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절대자이시며 구세주이신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다.

항시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우리의 구세주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계시며, 나의 구세주 하나님은 바로 내안에 계신다.

 

따라서 이미 한 사람마다에 하나님이 상주하고 계시므로 너와 나, 그들이라는 구별 없이 한 사람의 생명이 그 무엇보다도 귀하다. 곧 온 생명 모두가 귀한 존재인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자체가 신의 축복으로서 오직 사람만이 신을 감지하고 깨우침을 통하여 자신이 신의 분신임을 자각하고 거듭날 수 있으며, 천부경의 가르침인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란 곧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의 만물이 하나로 모이는 것이니,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곧 신의 분신이자 화신임을 자각한 자로서 우주 자체가 그 속에 들어 있는 존재다.

 

먼저 깨우친 사람이 이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

 

삶의 새로운 주기를 시작하려면 깨어나야 한다.

 

깨달음이란 곧 어둠에서 깨어남이다. 깨어있는 상태로 내안에 내재되어 있는 힘, 곧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구세주임을 깨닫고, 나 자신과 하나님이 하나임을 깨우쳐 알아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버리면 하나님의 분신으로 거듭 태어나 자신의 의지가 자기 인생의 창조자라는 사실을 항시 잊지 않게 된다.

 

이 때 내안에 잠재되어 있는 절대적 힘을 믿고 노력하게 되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으니, 믿음이 크면 클수록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더욱 강해져 소망을 현실로 이룰 수 있다.

 

꼭 성취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없이 맹목적으로 일을 진행하면 삶은 무의미 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소망하는 것과 나의 목표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자신감을 가져야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성품 안에 현실세계의 천궁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 놓으셨으니 진정으로 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순간 그때부터 하늘도 움직이기 시작하며 비로소 내재되어 있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세세한 것들은 천궁의 하나님께 맡겨라.

저 멀리 천궁에 계시는 하나님은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사사건건 벌을 내리고 복을 주시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내 현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은 바로 내 안의 궁전에 계시는 내 안의 하나님이시다.

 

내 삶의 주인은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며, 필요한 모든 것들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나의 구세주이시니 모든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항상 나를 도와주시며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을 인도하시니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 자신감을 갖고 삶을 소중히 여겨 깨어있는 삶을 이루라.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시고 활동하신다. 소망을 성취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게 해주신 구세주 하나님께 스스로 감사하라.

 

하나님은 나의 내면에 깃들어 계시며 내 안에서 활동하고 계시므로 나와 분리된 다른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분신으로서 하나님과 한 몸이니, 그의 일부분이자, 동시에 전체다.

 

나와 하나님이 하나임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요(성통광명),

내가 하나님과 하나임을 진실로 깨달았을 때 내 스스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으며(재세이화),

비로소 남을 위한 내가 있을 수 있으니(홍익인간), 이것은 곧 구원받은 것이다.

 

성통광명은 개인구원이요, 재세이화는 사회구원이요, 홍익인간은 인류구원이다.

 

자기 혼자 구원받아 천당 가겠다는 것도 개인의 욕심이요, 자기혼자 깨달아 부처 되겠다는 것도 개인의 욕심이다.

보다 높은 기준을 적용하여 스스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온 누리에 계시는 분으로서, 초월적 존재임과 동시에 나에게 내재해 계시는 분이시다.

저 멀리 있는 신에게 의존하지 말라, 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나뿐이다.

 

단지 내안에 살아계시는 고급한 영성인 내 의지, 내 본 성품, 내 하나님에게 의존하여 최선을 다하라.

 

개체인 내 안에 전체인 하나님이 계시고, 전체인 하나님 안에 개체인 내가 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복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노력하라는 것이다.

 

* 본심 본태양 앙명 인중천지일(本心 本太陽 昻明 人中天地一 ) : 본 마음에 있는 근본 빛을 우러러 밝히면 사람 마음 안에서 하늘과 땅이 모두 하나의 이치다. - 천부경

 

* 자성구자 강재이뇌(自性求子 降在爾腦) : 스스로의 성품에서 하나님의 자손 됨을 구하라. 이미 머리 속에 내려와 계시니라. - 삼일신고

 

그대가 곧 우주이니 그대 안의 우주를 열라.

 

영(靈)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마음으로 보아야만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신을 찾고자 하는 나의 마음은 참 나(자아)를 찾으라는 신의 마음으로서, 본 성품은 곧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신의 성품이니, 본성에서 그 신성을 되찾으라.

 

스스로가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식이라는 바보상자 속에서 틀을 깨고나와 이미 내부에 갖춰져 있는 지혜라는 깨달음의 길을 찾으라.

자신의 내면세계와의 대화, 자기 최면, 곧 본 성품, 차원 높은 참 자아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나서는 뒤따르는 행동적 실천, 곧 스스로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 본인이 원하는 바 소원성취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미 내 안에 상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깨달았다면 이제부터는 실제적인 행동, 곧 재세이화의 삶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출처] 성통광명 (내 안의 구세주)|작성자 지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