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다석어록 -나라 다스림(政治) 본문
다석어록 -나라 다스림(政治)
▶ 우리가 역사를 보면 임금이라는 것이 있어서 세상 사람들을 깔고 앉
아 충성을 바라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여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사람이 사람 위에 서 있는 것이 우스운 일이 아닌가? 그 뒤로 민주정
치가 발달되어 지금은 밝아진 세상이다. 사람 위에 사람이 없어졌다.
임금이 없어진 세상에 민주정치가 시행되는 이 땅에 아직도 우스운 사
람이 있는 것은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세상에서 높은 분은 하느님 한
분밖에 안 계신다. 이것을 모르고 아직도 우스운 짓을 하고 있는 민족
이야말로 마지막에 이른 우스운 민족이 아닐 수 없다. (1956)
▶ 이 세상에 나서 나를 바로 알고 산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나라
는 것은 하나의 국가다. 국가에는 입법부.행정부 사법부가 있는 하
나의 유기체이다. 나도 지(知) ·정(情) ·의(意)가 있는 하나의 유기체
이다. 국가가 목적을 가지고 발전해 가듯이 나도 인격의 완성을 목적으
로 하여 무한히 발전해 가는 하나의 생명이다. 나라(국가)란 나의 그림
자이다. 나라(국가)도 하나의 생명력이 강한 생명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나라가 역사적으로 계속 발달되고 새로워져야 한다. 이상(理
想)적으로 말하면 나라도 이름이 없어야 한다. 이름 없는 나라만이 참
나라라 뽐낼 수 있는 나라일 것이다. (1956)
▶ 스스로를 낮출수록 남이 나를 대국이라 해야지, 내가 먼저 대국(대
한민국)이라고 하면 외국 사람이 우리를 크다고 부를까? 도리어 적다
고 하지 않을까? 내가 나면 되지 내가 인플레(inflation)가 될 필요가
어디 있나? 그것은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일이다. 내가 없다고
해도 남이 있다면 되는 것이고, 내가 적다고 해도 남이 크다고 해야 한
다. 대국(大國)은 이름에 큰대(大)를 안 붙여도 대국이지만 소국(小
國)엔 이름에 큰대(大)를 붙여도 소국이다. 그러므로 이름에 매일 필요
가 없다. 그저 한국이면 된다. 이 세상에서 큰 것은 이미 우상이지 생
명이 아니다. 커야 대접받는 줄 알지만 겸손한 사람이 대접받지 교만한
사람은 욕바가지다. (1956)
▶ 높은 자리는 어진 사람을 앉혀 국록을 넉넉히 주어 씨알(백성)을 길
러 간다는 것이다. 훌륭한 인물이 나랏일을 보면 능히 지어지선(止於
至善)인 하느님에게 가서 그칠 수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상국가를
이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야 큰 바름(大正)을 구현할 수 있
다. (1956)
▶ 이제 우리는 몇 대조 할아버지 들추는 족보타령은 집어치워야 한다.
내가 위대해야지 조상만 위대하면 무얼 하나? 조상은 위대한데 내가
망국지종(亡國之種)이라면 조상에 대하여 불효이니 무슨 면목으로 조
상을 들출 수 있을까? 신라와 고려의 문화를 말하는 것은 모두 어리석
고 창피한 일이다. 왜 우리는 그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옛날 조상 얘기
만 해야 하는가? 젊어서 범을 잡았는데 지금은 꼼짝 못한다면 그것은
노쇠지 무엇인가? 날마다 더 젊어져야 나요 나라지 늙어지면 나도 나
라도 아니다. 우리는 조상 얘기는 그만하고 아들과 손자를 자랑해야 한
다. 우리는 조상을 몰라도 좋다. 아버지만 알면 된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요 나는 아버지보다 나아야 한다. 아버지보다 나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속알(참나) 실은 수레(몸나)이기 때문이다.
내 몸은 수레이지만 내 정신은 속알(참나)이다. '속알'이란 덕(德)자
를 우리말로 옮긴 것인데 창조적 지성(知性)이란 말이다. 솟구쳐 올라
앞으로 나아가는 지성이 속알이다. 우리말에 '속알머리가 없다'느니
'속알딱지가 없다'라는 말을했다. 옛날에는 속알을 밝힌다고 하여 '불
수레에 속알을 실었다'고 한다. 속알(참나)이 든 나를 생각한다면 벌써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는 옹졸한 생각은 없어졌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
한 생명인 속알(얼나)을 실은 수레지기로 자기 긋(참나) 머리(하느님)
를 밝히고 나가면 된다. 창조적 지성으로 살아나가는 것이다. (1956)
▶ 국가라는 말은 틀렀다. 국가라 하면 으레 집 가(家)자가 붙어 다닌
다. 우리나라가 망한 것은 가족주의 때문에 망하지 않았을까?제 집안
만 생각하고 나라까지는 가지도 못한 것이 아닌가?나는 집 가(家)자
대신에 차라리 사방천하(圖方天下)라는 모방(方)을 써 나라를 국방(國
方)이라고 했으면 한다. 일본이 쓰던 국가라는 말을 우리가 따라 쓸 필
요는 없다. 이 나라의 학생들은 국방(國方)의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
큰 돌은 큰 대로 작은 돌은 작은 대로 무슨 돌이나 다 쓴다.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국방초석의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 남을 지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겠다는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
국가라는 말이 좋지 않듯이 민족이란 말도 틀렸다. 민체(民體)라는
말이 좋겠다. 체는 커다란 유기체(有機體) 또는 공동체라는 뜻이다. 민
체는 피가 깨끗해야 한다. 민체혈청(民體血淸)을 배워야 한다. 교육은
국방초석과 민체혈청을 가르쳐야 한다. (1956)
▶ 기차 안에서 자리다툼하다가 종착역에 다다르면 그 자리를 내버리고
내린다. 자기가 의지했던 자리이지만 돌아보지 않고 서슴없이 버린다.
예수도 제자들에게 자리다툼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사람들이 다툴 때
다투더라도 어느 때 가서는 깨끗이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기차에서 앉
았던 좌석을 버리고 내리듯 그쯤 깨끗하게 버렸으면 한다. (1956)
▶ 공자(孔子)는 예(禮)를 모르고서는 서 있을 수 없다. (不知禮 無以
立也)고 했다. 예(禮)는 노자(老子)를 비롯해서 여러 사람이 말했지만
우리가 사는 제도(制度)를 말한다. 이것은 죽 이어 내려온 것이다. 무
엇을 하는 데는 차례가 없어서는 안 된다. 제도의 제(制)는 물가 수
(洙)자가 변한 것으로 나무(木)가 흐트러지지 않게 가로질러 묶은 것
이다. 그 옆에는 견제한다는 뜻으로 큰 칼을 갖다 놓은 것이다.
도(度)는 한도를 말한다. 이 한도로 묶어진 나무가 흐트러지면 안 된
다는 것이 제도(制度)이다. 제도는 법이고 법이 예(禮)가 된다. 이 예
가 잘못하면 그 제도가 사람을 쥐어 못살게 한다. 제도가 그 구실을 넘
어 사람을 누른다. 이렇게 되면 못 견딘다. 이것은 혁명을 해야 한다.
제도가 사람을 따라야지 사람이 제도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1956)
▶ 한미(韓美)조약이라는 것이 맺어졌다. 그런데 미한(美韓)조약이라고
하면 무슨 큰 일이나 난 것같이 떠든다. 미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 일본이 이 나라를 삼켰을 때는 일한(日韓)합병이라고 했
다. '한일합병'이라고 하면 큰 벼락이 났다. 남의 나라 집어삼키고 일
한(日韓)이라고만 해야 된다니 남의 나라 즘 존대하면 어떤가?국제관
계에서도 정말 형제관계를 맺는다면 조그만 양보로 서로가 대접할 것
대접해야 한다. 손님 대접을 하는데도 내 아들이 손님 시중을 든 다음
에 내 시중을 들어야 주인된 내 마음이 시원하고 흘가분하다. 실상 이
것은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괜히들 말하는 것이다. (1956)
▶ 이 세상에서 지위가 높고 큰 사람이 되려면 어렀을 적부터 공부를
잘하라고 한다. 공부하는 것은 무엇이며 크게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대통령이나 장관이 크단 말인가?도시 모를 소리만 하고 있다. 영웅이
되는 것이 크게 되는 것이란 말인가? 큰 이는 하느님뿐이시다. 그 다
음은 하느님 아들(얼나)이 크다. (1956)
▶ 어떤 사람이 돈을 많이 쓰고 별 운동을 다 해서 감투를 됐다면 이것
은 아무것도 아니다. 바라지 않는 것을 자꾸 써라 써라 해서 쓰는 감투
가 정말 감투이다. (1956)
▶ 악과 선을 대결시키는 데 법으로만 처리되지 않는다. 세력 잡은 놈
이 자기가 선하고 약한 놈을 악하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법을 뒤집어
사용한다. 인류의 역사라는 것이 모두 이렇다고 볼 수 있다. 이기는 놈
은 선이고 의롭지만 지는 놈은 악이고 불의하다. (1956)
▶ 바로 하려고 노력했지만 바로 되지 않는 게 인간의 역사다. 한마디
로 실패의 역사가 우리 사람의 역사이다. 실패의 역사에 무엇을 보겠느
냐 하겠지만 요행으로는 안 된다. 이 원정미정(願正未正)의 역사에 그
래도 바르게 해보겠다는 이것이 우리의 길인 인도(人道)이다. 하느님
께서 무능한 사람을 세상에 내신 것은 이 인도를 가라는 것이다. 이제
까지 바르게 못한 것을 바로 해보라고 사람을 세상에 또 내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힘껏 그렇게 하고 가는 것이다. (1956)
▶ 사람이 자기가 살았을 때에 그 사업이 완성됐다는 말을 듣고 싶어한
다. 자기 생전에 했다고 해야 좋아한다. 그러자니 급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바로 하려는 일이 욕속부달(欲速不達)이다. 밤낮 다스린다는
정치는 불치(不治)이다. 급해서 그렇다. 빨리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
어서다. 그러니 부달(不達)일 수밖에 없다. 속히 하려고 하는 것은 이
루어지지 않는다. (1956)
▶ 바른 것을 바라고도 바로 하지 못하는 데서 역사가 생긴다. 바로 된
일을 속히 하려고 하는 데도 그때가 오지 못하여 미급(未及)하다. 이
역사는 하느님께까지 가는 원정 (遠征)이다. (1956)
▶ 이 나라 정치인들은 감투를 채워 주면 된다니 한 3천만 개의 감투를
만들어 채워 주면 좋을 것이 아닌가? 감투가 이 나라이고 민족인가?
참으로 답답한 사람들이다. 여기에 무슨 득의(得意)가 이루어지겠는
가? 이 땅 위에서는 득의하지 못하는 것이 진리로 보인다. 그러니 신
천지(新天地 하느님 나라) 위에서 정의를 기(企)할 수밖에 없다. 이
땅 위에서 자기 생명을 연장하는 데 더 이상 힘들일 필요 없이 신천지
(하느님 나라)위에 정의를 이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참으로 정의
(正義)를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 누가 나를 알아주나 하고 기
웃기웃해도 소용이 없다. (1957)
▶ 제도상이나 인생살이에 모순이 있다는 데 놀랄 것 없다. 거의 완전
하다는 우리 몸뚱이 오관사지(五官四肢)에도 모순이 있는 것을 어찌
하는가? '지금 모순이 일어나서 그런 것이다' 하고 지냄으로 모순을
타당화하려는 사람의 편리한 생각으로 그냥 배겨 내야 한다. 너무 약게
알려고 하고 알다가는 인생을 그만두어야 하는 수가 많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사이 더구나 위 아래 곧 지도자와 인민사이의 모
순이 개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중에 기특하게도 사람의 밑바탕에는
도심(道心)이 있다. 다시 말하면 진리(하느님)를 향하여 올라가려는 마
음이 있다. 이것이 귀찮은 것이기는 하나 이것 아니면 삶을 그만두는
것이 오히려 낫다. 이 도심(道心) 때문에 우리의 한몸은 모순인 줄 알
고도 안심할 수 있고 건강할 수가 있다. (1957)
▶ 옛부터 관청(官廳)이란 탐천(貪泉)과 같아서 탐관오리(貪官汚吏)들
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요순같이 어진 이가 임금이 되면 탐관오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1957)
▶ 독립은 나만 할 것이 아니다. 집을 지으면 모든 기둥이 서야지 한
기둥만 서 가지고는 집이 안 된다. 모든 기둥이 서야 한다는 것이 민주
(民主)라는 것이다. 독재는 외기둥으로 집을 세우겠다는 말인데 외기
둥집이 어디 있으며 그런 집이 몇 날이나 가겠는가?외기둥 집은 없으
며 외기둥 세상은 없다. 온 세상이 다 눕지 않도록 일으켜 세워야 한
다. 그렇게 일으켜 세워야 할 사람이 누구냐 말이다. 참으로 모든 사람
을 다 일으켜 세우는 박시제중(博施濟衆)을 할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그
이가 나다. 그런데 나부터 서지 못하고 누워 버렸으니 외누리만 하는
못난 나가 되고 말았다. 내가 못나면 남을 못 보게 마련이다. (1957)
▶ 요새 중공의 모택동(毛澤東)이 백화제방, 백가제명(百花齋放, 百家
齋嗚)이라는 말을 했는데 요즘 신문에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말이 나왔다. 혹 식자(植字)가 바뀌지 않았나 의아해 보았다. 소련 정
치 아래서도 아직껏 인민과 지도자 사이에 모순이 없다고 하여 참 이
상(理想)국가라고 떠드는데 떠드는 그 자체가 벌써 모순을 범하고 있
는 것이다.
모택동은 지도자와 인민사이에는 모순이 있고, 그 때문에 제각기 다
투어 말을 하게 하고 모든 언론의 꽃봉오리를 피게 하라는 것이다. 인
민과 지도자 사이에 모순이 없다 하고 거기에 비판이 없는 것은 그 나
라에는 무슨 전제(專制)나 군국주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모택동이 말한 그것은 쓸만한 말인데 앞으로의 실천이 어떻게 될 것이
냐는 두고 볼 일이다. 자유를 사랑하는 우리들도 그러한 구호를 앞세워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1957)
▶ (요한복음 3장 낭독) 니고데모가 예수에게 말하기를 어떻게 하면 당
신의 일을 할 수 있느냐고 했을 때 예수는 대답하기를 사람은 몸나에
서 얼나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느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했다. 우
리나라지도자 가운데 몇 사람이나 얼나로 거듭날지 모르겠다. 이 나라
에 얼나로 거듭난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 얼나로 거듭나서 하느님과
성령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몸의 욕망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나라의 지
도자들이 엄청난 욕심만 가졌기 때문에 이 나라가 아직도 이렇
다. (1957)
▶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3.1운동 독립선언서 끝에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라는 말이 있지만 이것을 잘 알고서 싸움터에 들어가
야지 무작정 그런 소리만 하고 들어간다면 안 되는 일이 있다. 물론 쓴
사람도 이러한 염려가 있어서 쓴 것은 아니고 그냥 했을 것이다. 그러
나 그런 말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싸
워야만 충성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충성이 하늘 밑에 어디 있는가? 살
겠다고 하는 것이 충성이다. 혁명을 해도 무혈혁명을 해야 한다. 최후
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피를 흘려서 싸워야 혁명이 된다면 어디
그렇게 흔한 피가 어디 있으며 사람의 피를 그렇게 헛되이 할 수 있는
가? 이것은 거죽만이 사람이고 정신은 개의 혼이 뒤집어 씌었을 것이
다. (1957)
▶ 이집트(애굽)에는 피라미드라는 임금의 무덤이 있다. 피라미드는
크기가 얼마나 큰지 크기로 유명한 스핑크스가 태산 골짜기의 짐승
이 보일 정도로 크다. 이 피라미드를 임금들이 자기의 묘지로 쓰려
평생을 두고 쌓는 데 해마다 수많은 백성을 동원하여 그 큰 역사(役
事)를 시켰다. 지금같이 기계가 있은 것도 아니라 모두 사람의 힘으로
태산 같이 쌓아 올렀으니 사람의 산(人山)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에 들어가서 묻히겠다는 것인데 이런 못된 임금이 어디 있는가?
이집트 왕들이 이런 짓을 하게 된 것은 그들이 죽은 뒤 몸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다. 송장이 다시 살아 나올 때는 속히 살아나겠다고 해서
자신의 죽은 몸(송장)을 잘 보존해 두려고 '미라'라는 법도 만들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안 되니까 그처럼 태산 같은 피라미드를 쌓아
놓아 자신의 육체 부활을 쉽게 하고자 한 것이다. 자신의 뼈다귀 묻는
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혹사했으니 그런 어두운 짓이 또 어디 있겠
는가?임금이 사나와 도깨비 같으면 그런 짓을 하게 된다.
이 나라에서는 임금이 죽은 국상을 인산이라고 했다. 인산(仁山)이
라고 해야 옳은데 근래까지도 사람의 인산인해(人山人海)가 되어 버렸
으니 죽어서까지 사람들을 괴롭힌 것이다. (1957)
▶ 살생을 좋아하지 않는다(不嗜殺),살생을 하지 않는다(不殺生)는 사
상은 본래 사람이 날 때부터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유교에서는 고기를
먹으면서도 죽는 짐승의 꼴을 보고서는 먹기를 꺼린다 하여 점잖은 사
람은 푸줏간을 될 수 있는 대로 멀리하고 산다고 했다. 짐승이 죽는 것
을 보면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사람을 죽여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될 뻔한 말인가?
공맹(孔孟)도 늘 말하기를 불살생을 사상의 원칙으로 하고 참으로
바로 살겠다는 사람은 천하를 경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천하를
통일하고 경륜할 수 있는 사람은 애매한 사람을 한 사람도 죽이지 않
는 불기살생자(不嗜殺生者)라야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태평양 전쟁
동안에 일본 사람이 동앙의 질서를 바로 잡아야 세계가 평화로워진다
고 할 때, 이 사람은 생각하기를 불기살생자(不嗜殺生者)가 천하를 바
로 잡는다고 말했다. (1957)
▶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했으나 얼마
견디지 못하고 한조(漢朝)가 뒤를 이었다. 그동안 많은 백성들이 죽었
다. 한고조(漢高朝)가 천하를 장악하고야 한 4백 년 동안 전쟁 없이
지냈다. 이 한고조가 비교적 사람 죽이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미 선지자(맹자)가 이미 예언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이전
부터 사람 죽이기를 좋아했으니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다.
남보다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면 먼저 미끄러질 것이다. 이것이 이치인
데 이미 공맹(孔孟)이 말한 것으로 이 말은 선지자적 예언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세대의 예언자로 나올 분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이다. 간디는 거짓말 한마디하지 않고 하느님을 기리던 이로 3억(현재
인도 인구 10억) 인도 사람들의 가슴에 살아 있다. 그 간디의 사상도
성경과 같다. 마귀란 거짓말 잘하고 사람 죽이기 좋아하는 자라면 거짓
말 잘하는 이는 사람 죽이기도 썩 잘할 것이다. (1957)
▶ 나라가 무장(武裝)을 왜 하느냐 하면 나라가 평화하기 위해서다. 다
시 말하면 백성들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다. 무(武)자는 싸우자는 글
자가 아니다. 창 과(戈)자가 나타내는 싸움을 멈추게 하자는 그칠 지
(止)가 합하여 무(武)자가 되었다.
절대 평화론자는 비전쟁자로서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모름지기 비전쟁론자들은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싸움을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싸움을 않겠다는 이것만은 마하트마
간디가 몸소 일생을 통해서 자세히 보여주고 갔다. 이 세상에서는 어떤
때는 싸움에 참여하게 된다. 싸움이 아주 없다는 주의(主義)가 없다.
요새는 싸움하기 위한 싸움이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진리의 샘(泉)을
바로 팔 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암만해도 무엇을 잊고 멍하게만 가
고 있는 것 같다. (1957)
▶ 우리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훌륭한 소우주를 간직한 개인이다.
우리는 사람이라는 우주의 체통을 하나 가지고 있다. 우리가 만나서 이
렇게 생각하는 이 시간만 하더라도 어떠한 분열과 결합을 가져오는 세
상이기도 하다. 이 세상을 삶에 있어서 우리가 잘 치르고 못 치르고는
이 다음 전체 우주와는 무슨 관계가 있을 것 같다. 멍하게 거저 지나가
는 것과 힘 있는 확고한 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과의 차이는 알 수 없
지만 이 다음 세대에 영향을 준다는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이전과는
우리가 상관이 없는 것같이 보이나 다 영향을 끼쳐 오늘 이 시간도 있
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공(中共)의 인해 전술이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백성을 전쟁에
몰아넣고 독전대가 뒤에서 기관총을 대고 독전을 한다. 이렇게 되면 백
성을 죄다 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중공의 국방상 팽덕회가 4억을 내버려서라도 원자탄 수소탄
에 대항하겠다는 것이다. 4억이 죽어도 2억이 남으니 전쟁에 이긴다는
것이다. 그런 놈에게는 100억의 백성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그따위 정
신으로 이기려 든다면 하나 무서워할 것 없다. 무엇을 가르쳐서 독전하
겠다면 혹 모르겠다. 백성을 버리겠다는 자가 무엇을 위해서 백성을 받
드는 자리에 있는지 나는 그 목적을 알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
인민주의 (人民主義)라고 한다. 팽덕회가 그런 소리를 한 것도 무슨 영
향을 받아서 했고 또 그 말이 무슨 영향을 끼칠 것이다. 우선 나라는
이 사람의 세포(細胞)를 가만히 있게 하지 않는 것만도 영향이 있는
것이다. 잠깐 획 지나가는 이 시간도 무슨 영향을 어디다가 줄 것이
다. (新報 彭德懷言 可棄四憶而二億殘勝云云)(1957)
▶ 조그만 일에도 여왕(厲王), 유왕(幽王) 노릇 하겠다는 것이 눈에 많
이 보인다. 학교나 단체에서 자기는 할 일이 별로 없는데도 일부러 바
쁜 심부름꾼을 이리 쫓고 저리 쫓는 일을 시킨다.
시집살이 사납게 살은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더 사납게 부려먹는다.
나는 이제 앉아서 먹을만한 자리에 있으니 나를 받들어라는 것이다. 간
단하게 말하면 교대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죄악이다. 공산당
이 따로 있고 이집트 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인자(人子)로서 알
것을 알아야지 모르면 다 같이 악이다. 어떤 이는 예수교를 가리켜 쌍
놈의 종교라고 했다. 남에게 봉사만 하라니 쌍놈이 아니겠는가? 유교
는 양반의 종교라고 한다. 웬만큼 일을 치르고는 떡 앉아서 많은 사람
의 숭배를 받겠다는 것이다. 모두 쓸데없는 소리다. 자본(資本), 유물
(唯物) 두 사상을 가지고서는 앉아서 죄다 빨아먹고 나중에는 그래도
시원치 않아 다 잡아먹게 된다. 자기 일을 하지 않고 시켜먹겠다는 놈
은 다 김일성처럼 되어 보겠다는 것이다. 자라서는 무서운 놈이 될 것
이다. (1957)
▶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거늘 우리는 생
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느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했노
라."(이사야 53:4) 이 구절은 우리가 그냥 듣거나 읽을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름 없는 무식한 동포, 가난한 동포, 그 가운데는 하느님의 종
이 많다. 행세 못하여 모든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촌떼기'라는 별명을
듣고, 서울 구경을 한번 못하고, 대접받지 못하는 이들 중에 하느님의
종이 많다. 그들은 가난하여 남에게 무시당하고도 그 끝에 가서는 다른
사람의 질고와 괴로움을 대신하여 진다. 그들은 잘 먹지 못하나 부지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은 우리나라 어머니들일 것이다.
요새 어머니들은 덜 할는지 몰라도 우리 시대(19세기 초엽)의 어머니
는 모두가 무식했다. 바깔 구경은커녕 이름자도 모르는 어머니가 많았
다. 못나서가 아니다. 우리들의 어려움과 가난함과 괴로움을 대신 짊어
진 것이다. (1957)
▶ 옛날에 이상(理想)의 시대가 있었다는 사상도 있고 미래에 이상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사상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추측한 범위 내에서는
옛날에 좋은 때도 없었고 차차 내려오면서 언짢아졌다는 것도 믿어지
지 않는다. 앞으로 천국이 온다고 해도 거기서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키가 커지겠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보겠는가?뭣이 이상적으
로 될 것인지 몸을 가진 이상 그대로 바로 되리라고 믿어지지 않는
다. (1957)
▶ 우리가 민주주의 시대에 사니 그 민주주의라는 것은 참 귀한 것이
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중하고 귀한 것을 알아야 한다. 대중(大衆)이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는 데서 민주의 무게가 있다. 옳은 자리에 옳지
않는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분별하여 내고 옳은 사람이 오르지 않는
것을 구별해야 민주주의가 무게 있게 된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귀한 것
은 명분(名分)이 분명해지고 그 권리를 밝혀 주기 때문이다. 즉 권리
를 가진 이, 책임을 진 사람이 자(尺)를 재어주는데 바르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이 귀한 사람이 된다. 이번에 동장(洞長)
선거가 있는데 이 자(尺)를 잘 재는 사람이 않게 되면 그 동에는 복이
고 그렇지 못하면 그 동네에는 큰 불행이다.
그런데 원칙(原則)이 틀어지면 헛된 이름만의 민주(民主)가 된다.
그러한 세상에는 마귀가 참여해서 세상을 더럽힌다. 이렇게 되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자만이 심해지고 부끄러운 것이 없어진다. 그야말
로 세기말의 마귀들이다. 민주주의가 이뤄진 좋은 세상에 그따위 마귀
때문에 귀하고 중한 것을 놓쳐 버리다니 억울하지 않는가?(1957)
▶ 임금에게도 선생이 있다. 임금의 선생은 하느님이 보내신 선지자들
이다. 임금은 지존(至尊)의 자리에 앉아 있는지 모르지만 임금이 배우
긴 선지자한테서 배워야 한다. 그러니 임금은 선지자인 스승을 대단히
두렵고 어렵게 공경해야 한다. 감히 친압(親押)할 수 없으며 더욱이
업신여기지 못한다. 임금이 스승은 성현일지라도 내 신하이니 별 수 있
느냐고 해서는 안 된다. 성현이 자기 마음을 다해 도우려 해도 임금으
로부터 친압을 받으면 다 하지 못하게 된다. 성현(聖賢)의 인격을 인
정해 주어야 성현이 성심(誠心)과 전력(全力)을 다 한다. 성현의 인격
을 인정해 준다면 감히 친압을 하지 못한다. 선생이 제자를 업신여기고
제자가 스승을 업신여긴다면 아무리 교육을 해도 망한다. (1957)
▶ 사람을 등용할 때 얼굴이 훤하고 재주가 좋다고 해서 부리면 못쓴
다. 그렇게 되면 더 잘 생기고 더 재주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나
앞사람을 내쫓고 새 사람을 쓰게 된다. 그러면 친압하게 되어 군자는
자기의 속알을 다 할 수 없다. (1957)
▶ 임금일지라도 밑에 심부름꾼이나 일꾼들에 대해서 압모(狎侮)하면
그들이 힘을 다해서 일을 보아주지 않는다. 임금이 아랫사람을 압모하
게 되면 어떤 놈은 내가 이만한 사랑을 받으니까 나는 일을 하지 않아
도 괜찮겠지 하고는 압모를 거꾸로 이용하는 약은 놈이 나온다. 그러므
로 임금은 임금 자리에 올라도 누구 한 사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압모하다가는 나라를 그르치는 큰 일이 난다. (1957)
▶ 우리나라의 옛 물건 가운데 좋은 것이 많은데 모두가 발전을 못 보
고 도중에 쓰러졌다. 그 중에 대나무 숯으로 만든 즉묵(竹墨)이 우리
나라에서 유명했다. 죽묵이 유명하다니까 나라에서는 자꾸 공짜로 바
치라고 하게 되었다. 그러니 안 갖다 줄 수 없고 갖다 주자니 손해만
나고 그래서 죽묵을 만드는 사람이 한 사람 두 사람 죽묵 만드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사정이 이러한데 산업발전이 되겠는가?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의 술국이 참 맛이 좋다고 끓인 국인데 아침
식전(食前)에 먹었다. 여느 사람들은 설렁탕 대신에 이것을 먹는 사람
도 있었다. 이 술국이 맛이 있다는 바람에 고관(高官)이 광주의 술국
을 들여오라고 하게 되었다. 그 옛날 조선조시대에 교통수단이라고는
마차 밖에 없던 시대에 서울에서 사십 리나 떨어진 곳에서 아침 식전
에 술국을 갖다 바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가져오라
니 할 수 없이 저녁에 끓여서 밤새껏 걸어서 가져오는데 그것이 식으
면 다시 데워서 바쳤다. 그래서 그 술국이 효종갱(曉鐘羹)이라 일컬어
졌다. 그것이 어찌 술국인가? 한숨국이요 원망국이 되었다. 그래도 다
른 술국보다 맛이 좋다니까 먹어 보고는 딴 데 것보다 낫다고 하여 그
술국 맛은 좋다고 인정됐다. 이렇게 되면 한 두 사람만 고생하는 게 아
니다. 온 동네가 술국 끓여 갖다 바치느라 바쁘게 된다. 그러면 그 동
네는 망하게 되는 것이다. (1957)
▶ 대통령 자리는 다른 게 아니라 인사처리 하는 자리다. 대통령은 딴
것 할 것 없다. 옳은 사람으로 하여금 국무총리를 시켜서 내각조직을
하게 한다. 만일 국무총리가 하는 일이 잘 안 되면 시각을 지체하지 않
고 갈아내어 다시 내각을 조직케 한다. 이 일을 하는 것이 대통령직이
다. 이는 꼭 덕성 (德盛)해야 한다. (1957)
▶ 옛 임금이 기밀(機密)을 지키지 못하면 신하를 잃고 신하가 기밀을
지키지 못하면 자기 자신이 죽게 된다. 국가의 기밀이 지켜지지 못하면
나라가 해(害)를 입는다고 했다. 요사이는 왜 이렇게 언론의 권위가 땅
에 떨어지고 정치는 엉망이 되어 가는지 알 수가 없다. (1957)
▶ 나라를 다스림은 사람에게 있다(爲政在人)고 했다. 대통령 자리가
무슨 자리인가? 좋은 사람 골라서 쓰는 자리이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고기잡이를 그만두고 사람을 낚으라고 했다. 대통령은 좋은 사람 낚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좋은 사람은 어버이를 잘 섬
기는 사람 가운데서 골라 얻는다고 했다. (1957)
▶ 옛날에는 자꾸 지려고 한 세상이 있었다. 진다고 하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말이다. 요즘 사람은 책임을 지긴 지는데 무엇을 지느냐 하면
선수로 나가서 이기고 와야 한다는 것이 책임진다는 것이다. 이기려고
하니까 지지 않으려고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스피드 시대
요, 경쟁시대라 이기려고만 하지 , 지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단 말
이다.그래서 책임을 안 지려고 하는 세상이다. 옛날같이 짐을 지려고
하는 책임감을 갖는다는 것은 볼 수 없으며 책임을 벗어붙이려고만 한
다. 이기면 자기를 이겨야지 남을 이기려고 하면 하느님이 허락하지 않
는다. 지기를 이기려고 해야 한다. 자기를 이겨 나가면서 남을 도와 주
어야 한다. 자기를 남에게 짐을 지워서 남을 이기려고 하는 짓은 하느
님을 생각하는 이는 통히 할 수 없는 일이다. (1957)
▶ 성경에 피 흘린 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
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는데 그 피 흘린 것을 하느님이 찾을 때 도로
뱉어놓았다고 했다. 이 놈의 세상은 땅 때문에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
여 땅에게 억지로 피를 먹인다.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한다(罪不
容於死)고 했다. 이것이 공맹(孔孟)의 정신인데 이쯤하여 놓고 보면
공맹(孔孟)도 선지자임에 틀림없다. 이 세상에서 전쟁을 잘하는 놈은
상형(上刑)에 처해야 한다. (善戰者 服上刑-『맹자』 이루상편)고 했
다. 요새말로 하면 전쟁범죄자는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말이다. (1957)
▶ 단조진념 (檀祖軫念)에 단조는 단군 국조님을 말하는 것이고 진념은
깊은 생각을 뜻한다. 특별히 높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을 진념(軫念)이
라고 한다. 단군 한아버지(할아버지)의 진념을 이어오는 사람이 없었
다. 우리는 이제라도 단군 할아버지의 뜻을 내 뜻으로 알고 홍익인간
(弘益人間)해야 한다. 단군 할아버지께서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하
고 산 위에서 내려보실 때 이 나라를 보시고 홍익인간을 하여 보고자
오신 것이다. 이러한 단군 할아버지의 진념(軫念)을 몇 사람이 더 계
승해서 그대로 했다면 해방 후의 우리의 건국도 이렇게 까지는 안 되
었을 것이다. 단군국조의 진념을 이을 자식이 없다. (1957)
▶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 주시어 아들이 아버
지의 영광을 드러내게 해주십시요."(요한 17:1) 사람은 누구나 드러내
야 할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이 있다. 사람은 자꾸 하느님 아버지를 찾
아 올라가려고 한다. 하느님께로 올라가려는 자성 (磁性)과 같은 본성
이 우리에게 있다. 이 본성은 하느님의 본성을 찾아서 하나되는 영광을
지니려고 한다. 햇빛보다 더 밝고 온전한 하느님의 영광을 찾아 올라간
다. 우리의 정신적인 근거가 여기에 있다. 기어코 보아야 할 이 영광을
보지 못하면 우리의 인생은 만족하지 못한다. 나라의 대통령이나 장관
도 이 사실을 알아야 하느님 아들로서의 온전한 일을 할 수 있다. 자기
밖에는 위가 없다는 무상(無上)의 행동을 하게 되면 이는 하느님의 원
수가 되고 또한 순진한 아이들(백성)의 원수가 된다. (1957)
▶ 어지러울 난(亂)자를 다스릴 난(亂)이라고도 한다. 괴상한 일치이다.
중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신하에 충신(忠臣)을 두고 말하기를 난
신(亂臣)이 있었다고 했다. 무왕이 어지러운 세상을 이 난신(亂臣)들
로 하여금 다스리게 했다. 다스린다는 것이 결코 온전한 것이 아니다.
어지러우니까 다스리게 한다. 어지러운 것이 없어야 다스리는 것이 없
어진다. 이 세상은 천 년이나 만 년이 가도 이 모양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치(治)는 안 되고 난(亂)이 된다. 역사가 모두 다스리고 정의
를 세운다고 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가? 치(治)가 아
예 없는 것인지?아니면 때가 치자(治者)를 못 만난 것인지 유구한 몇
천 년을 두고도 치(治)를 이루지 못한 난(亂)의 역사이다. (1957)
▶ '불환무위 환소이입야'(不患無位, 急所以立也-논어 이인편) 자
기가 지위 없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일어설 소이(所以)를 걱정하라는
뜻이다. 어떻게 하면 일어설까? 무엇을 가지고 일어설까 하는 것을 걱
정하라는 말이다. 그러면 높이 올라가서도 조명(照明)을 할 수 있다.
자리 위(位)자가사람이 선다는 뜻이 되는 것도 이상한 일치다. 일어서
는 그 자리를 보지 않고 의자만 본다. 높은 데 올라서서 지휘를 하면서
맞춰가야 한다. 영원절대(하느님)하고 지휘를 하는 것이다. 실은 우리
속을 지배하는 것은 하느님이시다. 세상을 지휘하는 것은 하느님이시
다. 위에 계시는 하느님의 지휘에 시종하라는 말이다. 하늘로 올라가는
데 힘씨하면 팔을 휘젓는 것같이 보인다.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높은데 올라가는 이는 많은데 이것을 모르니 사회
가 캄캄할 수밖에 없다. 오직 향상일로(向上一路) 하느님을 향하여 올
라가는 일이다. (19i7)
▶ 최고 학부를 나온 이도 나를 위해서 일을 한다. 장관이나 대통령 자
리에 앉아도 우선은 자기의 맛을 위주(爲主)한다. 그가 배운 것을 다
하면 더러는 잘 되는 수가 있다. 정의(正義)도 알고 있다. 백성들의 안
녕을 도모하고 문화의 발전을 이룩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알
고 있다. 그러나 이상적인 국가사회를 이룩하기보다는 자기의 인생관
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 인생관이란 무엇인가 하면 세상의 맛을 보자는
것이다. 맛있는 것 실컷 먹고 여편네와 사랑으로 잘 만나고 즐겁게 하
자는 것이다. 이제는 학문도 이루고 돈도 붙들고 권력이라는 것이 겹쳐
서 그의 밥줄을 점점 튼튼하게 해준다.
온 세상 사람은 실직을 하더라도 자기는 실직할 리가 없다. 상당한
권세와 체면 때문에 일시에 재산을 모으지 못하더라도 조금씩 자기 욕
심을 채울 수 있다. 이쯤 되면 자기의 인생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세상은 자기가 아니더라도 저절로 되겠지 하고 사회적인 목적
에는 열성과 능률을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인생관을 높여 나가야 한다. 사람이 사는
데 그 인생관이 비록 맛을 위하여 산다 하더라도 좀더 정도를 높이기
전에는 볼 일 다 본 사회일 뿐이다. (1957)
▶ 일을 당해서 맘써 열심히 하지만 결코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일
이라는 것은 자꾸 줄여 간소화해야지 만들면 안 된다. 사무를 보는 것
은 무슨 필요로 보면 안 된다. 쥐를 잡아오면 상을 준다고 할 것 같으
면 쥐를 기르는 사람이 생긴다. 도둑놈을 잡아오면 상을 준다고 하면
도둑놈을 만들어 잡는다. 언젠가 소방서 직원이 여러 달 동안 불이 나
지 않으니까 불을 일부러 내서 불을 끈 일이 있었다. 직업적 사무라는
것은 자꾸 줄여야지 자꾸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근본 정치는 이처
럼 해야 한다. 그래서 일을 만드는 놈이나 물건에 생심하는 놈에게 빛
을 비춰 주면 해는 꺼져 버리고 캄캄한 세상이 되고 만다. 곧 멸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나라 백성은 아이들이다. 아주 악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이 몇 사람 안 되는 악한 사람이 어린아이 같은
우리 동포를 못살게 해주고 있다. 우리 동포의 한숨 섞인 말은 우연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성령이 시킨 말이요 하느님의 말인 것이다. 이들
의 소리는 몇 사람 안 되는 악인을 잠잠케 할 때가 반드시 오리라고
본다. (1957)
▶ 정치하는 사람은 특별한 재주가 필요 없다. 정 (政)은 바름을 잡는다
는 뜻이다. 재주는 없어도 몸 하나 바로 가질 줄 알고 격물(格物)에 소
견(所見)을 다 할 수 있다면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제 몸 바르게
하고 제 집안을 바로 잡게 되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바로 할 수 있다.
자기 몸을 참으로 바르게 가질 수 있다는 사람은 선지자(先知者)가 아
니고서는 안 된다. (1957)
▶ 몇 천 년 동안 역사를 해내려 왔다는 정치가 이지적(理智的)으로 생
각할 때 참 부끄러운 점이 많다. 평화에 실패한 역사이기도 하다. 정치
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비뚤어진 것을 바로 잡자는 것이다. 몇 천
년을 두고 바로 잡겠다는 것이 오늘날까지 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
운 일이고, 바로잡겠다고 한 것은 모두 헛소리였다. 그동안 나라를 다
스린다면서 실제로 바로 잡은 것이 어디 있는가? 임금들이 임금 노릇
을 으스대기 위한 무슨 장식쯤으로 알았다. 그냥 임금 소리 듣기 위해
서 임금 노릇을 하고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태오 5장 47절~48절
은 정치의 이상이 아니겠는가?(1957)
[주]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인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마태오 5 :47一48)
▶ 백성이 깨닫는 것은 아니다. 그저 좋다면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하는
것들이다. 남이 하는 것은 빠지지 않고 죄다 한다. 그러나 뭔지 모르고
한다. 민주주의 정치를 하려면 진리를 깨달은 민주(民主)의 수효가 많
아야 한다. (1960)
▶ 나는 이 세상에서는 이상(理想)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
다. 그러나 아무리 안 되는 이 세상이지만 혹 되는 듯하면 참 기쁘다.
하룻밤 자고 가는 곳이라도 뭐가 좀 되는 것 같으면 나도 퍽 복을 느
낀다. 이 땅 위에서는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는데 그러나 8.15 광복
때는 나도 참 복이 있다고 느꼈다. 또 4 19 의거가 일어나자 내가 무
슨 복이 있어 쾌한 꼴을 두 번씩이나 보게 되나 하고 퍽 기뻤다. 이 민
중이 스스로가 민주주의 나라의 시민이 된 것을 감격스레 생각해야만
참 민주주의가 된다. (1960)
▶ 맹자(孟子)라는 이는 민주(民主)의 정치를 완성하자는 이다. 씨알
(民)들과 함께 가고 싶지만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 참된 길로 간다고
했다. 요즘 같은 이런 때에는 맹자의 혼이 펄펄 뛰어야 한다. 제 집의
집안살림만 하는 이는 사나이가 아니다. 이(가정)에서 솟아나 떠나야
사나이 대장부이다. (1960)
▶ 어떤 이는 지금이 제일 좋은 때라 한국이 세계에서 제 할 사명을 다
할 때라고 한다. 이것은 분명히 아첨이다. 우리는 지금 제일 못된 세상
을 만났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둘 다 틀렸다. 그것 가지고는 안 된
다. 세계에서 자살율이 제일 높기로는 일본이 첫째이고 덴마크가 둘째
라는데 그게 안심입명(安心立命)을 못한 나라인 것이다. 이혼률은 스
웨덴, 덴마크가 제일 많다는데 그게 못살 나라이다. (1960)
▶ 세상 사람들이 먼저 할 것과 뒤에 할 것을 몰라 뒤죽박죽이다. 윤리,
정치, 경제에서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템템 돌고 있다 먼저
속알(明德)이 밝혀져야 살림이 잘된다. 속알이 밝아져야 다스림(정치)
이 잘된다 속알이 근본이다. 구경(究竟)의 목적도 속알이다. 속알이
컴컴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1960)
▶ 이 씨알(民)을 위함이 하느님 위함이다. '이 소자 중에 가장 작은 자
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 ' 백성을 모른다 하면서 하느님만 섬긴다
함도, 하느님을 모른다 하고 백성만 위한다 함도 다 거짓이다. 이 시대
가 민주주의 사대가 되어서 처음부터 마음이 민주(民主)가 되어야 한
다. 씨알(民)이 나라의 임자(主)가 된 것은 천의(天意)요 천도(天道)
이다. 그러므로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게 백성을 위하
는 것이 되어야 한다. 참으로 민주주의라면 주의(主義)가 없어져야 한
다. 주의가 있으면 전제(專制)가 된다. (1960)
▶ 지금 내가 잘 경륜하겠다고 나서지만 조금 지나면 그놈이 그놈이다.
역사는 비망록으로 적어 놓은 거다. 이 역사를 자세히 본 사람은 내가
잘 경륜하겠다고 나서는 현재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다 믿지 못한
다. 예수를 정말 믿고 염불(念佛)을 정말 하는 사람은 씨알(民)님을 머
리에 인 자다. 거죽은 거짓이라 참이 없다. 참은 맘을 비워야 맘속에
온다. 참은 하나이다. 자기가 참이거니 하는 것처럼 거짓은 없고 자기
가 선하거니 하는 것처럼 악한 것은 없다. 자랑하고 싶지 않는 덕(德)
이 최량덕(最良德)이다. 내가 제법 무던하거니 생각하는 것이 병이
다. (1960)
▶ 좋거나 싫거나 사람은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미워할 때는 미
워해야지 도무지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 아니다. 나만이 미워할
것을 미워하고 사랑할 것을 사랑한다면 자기 공부가 꽤 된 것이다. 감
정을 바로 가지는 사람은 된 사람이다. 미워할 것을 미워하고 좋아할
것을 좋아하는 게 우리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 4.19 때 나타난 것은
미워할 것을 바로 미워한 거다. 그렇게 잘 할 수 없다. 그것은 하느님
이 시키신 것이다. (1960)
▶ 나는 이 세상을 다 살아 그런지 몰라도 이 세상에서 뭔가 된다는 것
은 우습다. 이 세상에서 되는 게 뭣이 있는가?장사가 잘 된다는 등 이
따위 것이 있을지 몰라도 그러나 그게 되는 건가? 이 세상이 달라진
게 있다면 사람 숫자가 많아진 것 그리고 세상이 좁아진 것 이것뿐이
다. 어리석은 것들은 역시 어리석은 그대로 있고 달라진 게 없다. (1960)
▶ 대통령이니 총리니 하여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영광이니 축하
니 한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놈의 일인가? 글쎄, 정치는 아파하는 민
중을 위해서 의사 노릇을 하는 거다. 민중이 아무 일 없으면 의사가 필
요 없다. 축하는 마치 병자가 의사를 불러놓고서 축하하는 것과 같다.
이게 무슨 놈의 일인가?글쎄 병이나 다 낫게 해놓으면 축하요 영광이
지만 성가신 의사가 무슨 영광인가?(1960)
▶ 이 세상에서 안 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나는 치
국평천하(治國平天下)가 그렇게 호락호락 될 것 같지 않다. 이 세상에
서는 모든 것에 제한이 있다. 형이하(形而下)에도 형이상(形而上)에도
그만큼 되는 거지 뭐든지 다 된다는 법은 없다. 그것은 욕심이다. (1960)
▶ 오늘 오면서 학생들의 시가 행진을 보았는데 그 구경을 하자고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사람이란 이런 때는 빼지
않고 구경을 하려고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뭔가 일치하는 것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겉으로 일치한 제복(制服)을 입은 여럿이 모인
광경을 보기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에 흥미가 없다. 그게 뭐란
말인가? 공연히 하루를 헛되이 보내는 것이다. 거죽이 일치하면 월 하
는가?속이 일치해야 한다. 속이 일치하면 하느님 나라일 것이다. 시가
행진 때문에 교통이 얼마나 불편하게 되는가?시가행진을 한다고 재건
이 되는가?(1961)
▶ 영광 영광 하는데 하도 세상에 들뜬 영광이 많아서 나는 영광이란
말을 집어치우고 뚜렷이라 한다. 맨 처음인 바로 우리 생명의 그 자리
가 곧 영광 아닐까? 예수의 윤리로 하면 아버지(하느님)가 뚜렷해야
한다는 것이다. (1961)
'마스터와 가르침 > 다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석어록- 땀 흘려 농사해야 (0) | 2020.01.02 |
---|---|
다석어록- 공산주의는 않 돼 (0) | 2020.01.02 |
다석어록- 참 삶이란(眞善美) (0) | 2020.01.02 |
다석어록- 올(理)을 타야(과학) (0) | 2020.01.02 |
다석어록- 몸성히(건강) (0) | 2020.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