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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와 소도 본문

천지인 공부/단군과 한민족

신시와 소도

柏道 2019. 8. 1. 12:00


신시와 소도

  



 

아주 오래 전 우리와 중국은 어떤 관계였을까요? 우리는 많은 전통문화가 중국으로부터 유래되어 한국을 거쳐 일본에 가서 꽃피웠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종교의식에 큰 차이가 있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종교라는 믿음체계는 우주와 세계와 인간에 대한 관점이며 그것이 다르다 함은 후대에 어떤 절차에 있어서 일치하는 점이 있고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다 해도 근본적으로는 상이한 사고방식과 철학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간 출토된 유물을 보면 고조선의 청동기는 청동검, 청동거울, 청동방울, 치레거리 등이 주를 이룬 반면 중국의 것은 음식그릇, 술통, 술잔 등이 대부분인데 이러한 차이는 신을 섬기는 종교의식이 달랐기 때문이었을 겁입니다. 그때의 종교에 대하여 『삼국지』의 한전(韓傳)의 기록을 보면 삼한(三韓)나라의 여러 거수국에는 하느님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한사람씩 있었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불렀고 소도라는 종교성지가 있었는데 그곳의 큰 나무에 북과 방울을 걸어놓고 신을 섬겼으며 죄인이라도 그 안으로 도망가면 잡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주:윤내현, 고조선 미래가 보인다]

 

 

소도에 대하여 신채호 선생은 수두라 불렀고 신단(神壇)이라는 뜻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상고시대 아시아 대륙을 뒤덮었던 신앙형태로 수두교라 이름하며, 해마다 5월과 10월에 수두에 나아가 천신에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한편 이병도는 소도는 솟은 지역이라는 뜻의 솟터가 한자로 소도(蘇塗)가 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름이야 어찌됐든 이 소도는 『삼성기』에서 '한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정상 신단수에 내려왔는데 이곳을 신시라 한다.'는 기록의 신시에서 유래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늘의 뜻을 신성한 곳이며 제천하는 자리이고 천손임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초기에는 산 정상에 그 자리가 있었겠지만 인구가 늘어나고 생활이 분화되면서 점차 마을로 옮겨왔을 것입니다.

 

 

 

 < 출처 : http://www.aljago.com/history_data/2_12.html >

 

 

 

 [출처] 신시와 소도|작성자 신명천부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