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역사서의 서문 (단군세기 규원사화 삼국사기 삼국유사 발해고 고려사) 서전서문 본문
역사서의 서문 (단군세기 규원사화 삼국사기 삼국유사 발해고 고려사) 서전서문
歷史書의 序文
檀君世紀 공민왕12년 癸卯 1363.10.3. 紅杏村叟 李嵒 于江都之海雲堂
揆園史話 숙종2년(1675년)乙卯三月上澣 北崖老人 序于揆園草堂
三國史記 進三國史表 雷川 金富軾(1075∼1151) 고려 인종때 50권
三國遺事 紀異第一 忠烈王 一然 金見明(1206∼1289)
渤海考 泠齋 柳得恭(1748∼1807)
高麗史 進高麗史箋 金宗瑞 鄭麟趾 等 高麗時代正史 139권
書傳序文 仲黙 蔡沈(1176∼1230)
檀君世紀 序 1363.10.3. 李嵒 編
爲國之道 莫先於士氣 莫急於史學 何也
나라위한 도리 士氣보다 먼저 없고 사학보다 서둘 것 없다 어째서인가
史學不明 則士氣不振 士氣不振 則國本
사학이 불명하면 사기 떨칠 수 없고 사기 떨칠 수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搖矣 政法岐矣 蓋史學之法 可貶者貶
흔들리고 政法이 갈라지니 어찌 사학의 법이 아니랴 깎으면 깎이고
可褒者褒 衡量人物 論診時像 莫非標準
기리면 기린다 인물을 달아 재고 때와 장소를 따져 보면 아닌게 아니라
萬世者也 斯民之生 厥惟久矣 創世條序
만세의 표준이다 이 백성의 삶은 그 토록 오래일 터 세상 생겨 벌어진 차례
亦加訂證 國與史竝存 人與政俱擧 皆自我
또한 더해 고쳐 알려 國과 史 나란히 있고 사람과 다스림 같이 들어 다 우리부터
所先所重者也 嗚呼 政猶器 人猶道 器
먼저 하고 무게 둘 바 이다 아! 政이 器라하고 사람이 道라 하면 器가
可離道而存乎 國猶形 史猶魂 形可失魂
道에서 떨어져 存하겠느냐 國이 形이라 하고 史가 혼이라 하면 形이 혼을 잃고
而保乎 並修道器者我也 俱衍形魂者
保하겠느냐 도와 기를 아울러 닦음도 나이고 형과 혼을 함께 폄도
亦我也 故天下萬事 先在知我也 然則
역시 나이다 그래서 하늘아래 모든 일이 먼저 나를 아는데 있다 그러므로
其欲知我自何 而始乎 夫三神一體之道
내 스스로 어떤가를 알려고 함이 시작인 것이다 대저 三神一體의 道는
在大圓一之義 造化之神降爲我性 敎化
큰 동그라미 하나의 뜻에 있다 조화의 신이 내려 나의 性이 되고 교화의
之神降爲我命 治化之神降爲我精
신이 내려 나의 命이 되고 치화의 신이 내려 나의 精이 되니
故 惟人爲最貴最尊 於萬物者也 夫性者
그래서 사람이 만물에 비해 가장 貴하고 尊하게 된 것이다 대저 性이란
神之根也 神本於性 而性未是神也 氣之
神의 뿌리이다 神은 性에 바탕을 두나 性 아닌 것이 神이다 氣됨은
炯炯 不昧者 乃眞性也 是以神不離氣
밝게 빛나 어둡지 않음에 참다운 性이다 이로서 神은 氣에서 떨어지지 않고
氣不離神 吾身之神與氣合 而後吾身之
氣는 神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내 몸의 神과 氣가 합하고 나서 내 몸의
性與命可見矣 性不離命 命不離性 吾身
性과 命을 볼 수가 있다 性은 命에서 떨어지지 않고 命은 性에서 벗어나지 않아
之性與命合 而後吾身未始神之性 未始
내 몸의 성과 명이 합하고 나면 내 몸은 神의 비롯함 아닌 性이며 氣의 비롯함
氣之命可見矣 故其性之靈覺也 與天神同
아닌 命이라 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 性됨은 靈적 깨달음이다 天神과 더불어
其源 其命之現生也 與山川同其氣 其精
그 源이 같고 그 命됨은 나타난 삶이다 산천에 더불어 그 기가 같고 그 精됨은
之永續也 與蒼生同其業也 乃執一而含三
영원한 이음이다 창생과 더불어 그 할일이 같다 이에 하나집어 셋 머금음이다
會三而歸一者是也 故定心不變 謂之眞我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감이 이것이다 그래 마음을 둬 바꿈 않음을 참 나라한다
神通萬變謂之一神 眞我一神攸居之宮也
신통만변을 일러 一神이라 한다 참다운 나는 일신이 머무는 宮이다
知此眞源 依法修行 吉祥自臻 光明恒照
이 참源을 알아 법에 맞게 수행하면 길상이 저절로 이르고 광명이 항상 비춰
此乃天人相與之際緣 執三神戒盟
이것이 곧 하늘사람과 더불어 사는 사이이다 삼신을 지켜 맹세를 지킴이며
而始能歸于一者也 故性命精之 無機
하나에 돌아 갈 비롯함이다 그래서 성 명 정 됨은 틀이 없는
三神一體之上帝也 與宇宙萬物混然同體
삼신일체의 하느님이시다 우주만물과 더불어 섞여 같은 몸 되니
與心氣身 無跡 而長存 感息觸之 無機
심기신과 더불어 자취 없으나 감식촉 됨에 오래 있음이다 틀이 없는
桓因主祖也 與世界萬邦一施而同樂
환인 주 국조이시다 세계만방에 더불어 하나로 베풀어 같이 즐김이다
天地人無爲而自化也 是故其欲立敎者
천지인은 함이 없으나 스스로 바뀜이다 이래서 가르침을 세우려 함은
須先立自我 革形者須先革無形 此乃知我
모름지기 먼저 스스로를 세우고 형을 고침은 먼저 형 없음을 고친다 이는 곧 날 알아
求獨之一道也 嗚呼痛 依夫餘無夫餘之
홀로되는 하나의 도를 찾음이다 아! 슬프다 부여를 보면 부여의 도가 없어
道 然後漢人入夫餘也 高麗無高麗之道
그런 다음 한인이 부여에 들어 왔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없어지자
然後蒙古入高麗也 若其時之制先而
몽고가 고려에 들어 왔다 만약 그 때의 제도가 먼저와 같고
夫餘有夫餘之道 則漢人歸其漢也 高麗
부여에 부여의 도가 있었다면 한인은 한나라로 돌아갔고 고려에
有高麗之道 則蒙古歸其蒙古也
고려의 도가 있었다면 몽고는 몽고에 돌아갔을 것이다
嗚呼痛矣 向年潛淸輩之邪論陰與百鬼
아! 아프다 지난해 깨끗하지 못한 무리의 어긋난 논리가 판쳐 백귀가
夜行以男生發岐之逆心相應而合勢爲國
야행함이 남생 발기의 역심에 딱 맞았고 합세하여 나라 위한 것을
者抑何 自安於道器兩喪 形魂全滅之時乎
누름은 어찌하랴 도기 둘다 잃고 형혼 모두 사라지는 때에 스스로 안주함인가
今外人干涉之政去益滋甚 讓位重祚任渠
오늘날 외인이 정사를 간섭함이 갈수록 더욱 심하고 양위 중조를 마음대로
弄擅 如我大臣者徒束手 而無策何也
가지고 놀아도 우리 대신이란건 모조리 손 묶었고 대책 없으니 어찌 할꼬
國無史而形失魂之故也 一大臣之能姑
나라에 역사가 없는 건 형이 혼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한 대신이 한다 해도
無可救之爲言 而乃擧國之人皆救國自期
이를 구할 수 없다는 말이고 곧 온 나라의 모든 이가 다 나라를 구해야 할 때다
而求其所以爲有益於救國 然後方可得
나라 구함에 보탬 되는 그 것을 찾고 그런 뒤 바야흐로 얻을 수 있는
以言救國也 然則救國何在哉 向所謂
말대로의 나라 구함이다 그러면 구국은 어디 있는가 나아가 이르되
國有史而形有魂也 神市開天自有其統
나라에 역사가 있어 형에 혼이 있다 신시개천으로부터 그 계통이 있고
國因統而立 民因統而興 史學豈不重歟
나라는 계통으로 서고 백성은 계통으로 흥하니 사학이 어찌 중하지 않겠느냐
書此樂爲檀君世紀序 上之十二年 癸卯
이 즐거움을 써서 단군세기서가 되었다 임금 된지(공민왕) 12년 계묘년
十月三日 紅杏村叟書 于江都之海雲堂
10월 3일 홍행촌 늙은이는 강도의 해운당에서 쓰노라
揆園史話序
北崖子旣應擧而不第 乃喟然投筆 放浪於江湖 벼랑애 한숨위
북애자는 과거를 보았으나 급제하지 못했다 이에 한숨으로 붓을 던져 강호를 떠돌았다
凡數三歲 足跡殆遍於鯷域 而深有蹈海之悲 메기제 밟을도
무릇 여러 세 해에 발길은 나라 거의 두루 다녔으며 바다에 뛰어 들고픈 슬픔도 있었다
時經兩亂之後 州里蕭然 國論沸鬱 끓을비
때는 두 난리를 겪은 뒤라 고을 마을이 스산했고 국론은 들끓어 답답하며
朝士旰食 野氓懷慍 於是北崖子 南自金州月城 해질간 백성맹 성낼온
조정의 선비 해 져야 먹고 들에 백성 화를 품었다 이럼에 북애자는 남쪽 금주 월성으로부터
歷泗沘熊川 復自漢山入峽而踏濊貊舊都之地
사비 웅천을 지나 다시 한산에서 골짝에 들어 예맥의 옛 서울 땅을 밟고
北登金剛之毘盧峰 俯看萬二千峯簇擁峭列 도울비 조릿대족 가파를초
북쪽 금강산 비로봉에 올라 굽어보니 만이천봉이 촘촘히 안겨 가파르게 널려있다
乃望東海出日而泣下 眺萬丈瀉瀑而心悲 바라볼조 쏟을사
이에 동해를 바라보니 해는 돋는데 눈물이 진다 만길 쏟아지는 폭포를 보면서 마음 슬프다
慨然有出塵之想 更西遊至九月山 분개할개
슬퍼 속세 떠날 생각을 하며 다시 서쪽으로 가니 구월산에 이르렀다
低徊於唐莊坪 感淚於三聖祠 及自平壤到龍灣
내려가 당장평을 거닐어 삼성사에서 눈물이 어렸다 평양에서 용만에 이르러
登統軍亭 北望遼野 遼樹薊雲 點綴徘徊 삽주계
통군정에 올라 북쪽 요야를 보니 요동의 나무 계주의 구름이 점점이 이어 오락가락해
於指顧之間 若越一葦鴨江之水 則已更非我土矣 갈대위
가르켜 보는 사이에서 만일 한 조각배로 압록강을 넘으면 하나 이미 다시 우리 땅이 아니다
噫 我先祖舊疆 入于敵國者已千年 而今害毒日甚
아! 우리 선조의 옛 땅 적국에 들어간 지 이미 천년인데 오늘에 해독이 날로 심하구나
乃懷古悲今 咨嗟不已 後還至平壤 適自朝家 물을자 탄식할차
이에 옛 품고 이제 슬퍼 탄식 아니 그침이라 뒤에 평양으로 돌아오니 마침 조정에서
有建乙支文德祠之擧 卽高句麗大臣
을지문덕의 사당을 세우는 행사가 있는데 곧 고구려의 대신으로
殲隋軍百餘萬於薩水者也 經月餘 至松京 다죽일섬
수나라 백여만 군사를 살수에서 무찌른 분이라 한 달 남짓 지나 송경에 닿으니
始聞荊妻之訃 急遽還歸居家 益復寂寞 於是 형처:아내의 겸칭 갑자기거
비로소 아내의 부고를 듣고 헐레벌떡 집에 돌아오나 날로 다시 쓸쓸함이라 이로서
搆揆園書屋於舊居之南 負兒岳之陽 聚諸家書 차릴구 헤아릴규
규원서옥을 차리니 옛집의 남쪽이요 부아악의 앞쪽이라 제자백가의 책을 모아
廣采其說 意欲以此終餘生焉 캘채
널리 그 설을 캐내어 이것으로 남은 삶을 마치려 마음먹었다
夫以力服人者 力窮而人叛 以財用人者 배반할반
대저 힘으로 사람을 굽히게 함은 힘이 다하면 사람은 등 돌리고 돈으로 사람을 씀은
財竭而人去 力與財 余旣不能有焉
돈 떨어지면 사람도 떠난다 힘이나 돈은 내가 이미 가지지도 못했으며
而亦不曾冀求 觀乎 荒凉北邙坂下 바랄기 비탈판
또한 일찍이 바래 찾지도 않았다 보라 황량한 북망산 비탈아래에
曾何力與財之有乎 且名者實之賓也
일찍이 어찌 힘이나 돈이 있으랴 또 이름이란 참됨의 손님인데
余將慕名而爲賓乎 名亦不足願
내가 이름을 바라려고 손님이 되랴 이름 또한 바랄 것이 아니다
昔者勿稽子有言 曰 天識人心 地知人行 머무를계
옛날 물계자가 말함이 있어 이르길 하늘은 사람 마음을 알고 땅은 사람 움직임을 알고
日月照人意 神鬼鑑人爲 夫 人之善惡正邪
해와 달은 사람 뜻을 비추고 귀신에 사람 함이 비친다 대저 사람의 착함 나쁨 바름 삐딱함
必爲天地神鬼之所照臨監識 則斯已矣
반드시 천지와 귀신이 비춰와 살펴 아는바 되니 곧 이것인 것이다
寧向髑髏人世 汲汲然競寸銖之名利哉 해골촉루 길을급 무게단위수
어찌 백골로 나아가는 사람 세상에 바쁘게도 한 조각의 이름 냄을 다툴 것인가
余決不爲 惟存性養志 修道立功
나는 잘라 하지 않으리라 오직 바탕을 지녀 뜻을 기르고 도를 닦아 공을 세워
以遺效於來世後孫 則雖終世無知者
남기므로 오는 세상의 후손들에게 본보기가 되게 함인데 비록 세상 다해 아는 이 없다 해도
亦可無慍 或萬世之後而一遇知其解者
또한 성낼 수 없으나 어쩌다 만세가 흐른 뒤라도 그 풀이를 아는 이 한번 만나보리
是旦暮遇之也 觀夫閃忽千年往事 번쩍할섬
이것이 아침저녁 만나는 것이다 보라 번쩍하고는 사라진 천년의 지난 일들을
曾復何向髑髏人世 爭寵辱於石火光中耶 괼총 욕되게할욕 電光石火
일찍이 다시 어찌 백골로 나아가는 사람 세상에 내리친 돌 불빛 속에 뻐김과 욕됨을 다투랴
余嘗論之 朝鮮之患 莫大於無國史
내가 일찍이 논하니 조선의 걱정이란 나라의 역사가 없음보다 큼이 없다
夫 春秋作而名分正 綱目成而正閏別
대저 춘추를 지으니 명분이 바르게 되고 강목을 이루니 정통과 윤통이 나뉘었다
春秋綱目者 漢士之賴以立者也 我邦經史
춘추와 강목이란 한의 선비가 하고자 하는 대로 세움이다 우리나라의 경전과 사서는
屢經兵火 散亡殆盡 後世孤陋者 좁을루
여러 번 겪은 병화로 흩어져 잃어 거의 사라졌다 뒤 세상의 외따로 좁은 이는
流溺於漢籍 徒以事大尊周爲義 빠질닉
한의 서적에 휩쓸려 빠지니 헛되이 사대와 존주를 옳다고 여겨
而不知先立其本 以光我國 是猶藤葛之性 등나무등 칡갈
먼저 세운 빛나는 우리나라로서의 그 바탕을 알지 못하니 이는 마치 등과 칡의 성질 같아
不謀其直而便求纏絡也 豈不鄙哉 自勝朝 얽힐전 헌솜락
곧지 못해 얽혀 꼬여 버리는 것이니 어찌 어리석지 않으랴 승조(고려)로 부터
以降貢使北行累百年而不爲之恨
굽힘에 조공 사신이 북쪽에 다니길 몇 백년이나 한으로 여기지 않다가
猝以滿洲之讎爲不俱戴天 則獨何故耶 갑자기졸 짝수
갑자기 만주를 함께 살 수 없는 원수로 삼아서 혼자 어쩌자는 까닭인가
噫 雖然 若天加선寧廟十年之壽 寧陵:효종
아! 비록 그렇다하나 만약 하늘이 효종께 십년의 나이만 더 주었다면
則卽可陳兵於遼瀋 馳艦於登萊 즙심
나아가 요동 심양에 군사를 깔 수 있고 등주 래주에 함선을 달렸을 것을
縱敗衄旋至而亦不失爲近世之快事也 코피뉵
늘어져 패해 다쳐 돌아오더라도 또한 잃어버리지 않아 근세의 통쾌한 일이 될 것인데
乃天不假만聖壽而終無其事
이에 하늘이 임금의 수명을 빌려주지 않아서 끝내 그 일이 없었으니
幸耶 不幸耶 余則悽切而已矣 슬퍼할처
행운인가 불행인가 나로선 무척 슬플 뿐이구나
余嘗有志於述史 而固無其材 且名山石室
내 일찍이 역사서술에 뜻이 있었으나 참으로 그 재료가 없고 또 이름난 산의 석실에
渺無珍藏 以余淸貧匹夫 亦竟奈何哉 아득할묘
아득히 고이 간직함이 없어 청빈한 필부인 나로서는 또한 뭘 어찌할 것인가
然何幸 峽中得淸平所著 震域遺記 골짜기협
그러나 어쩐 행운인지 골짝 속에서 청평이 지은 책을 얻으니 진역유기라
中有三國以前故史
속에 삼국이전의 옛 역사가 있으니
雖約而不詳 比於巷間所傳區區之說
비록 줄여 자세하진 않으나 거리에 떠도는 이런저런 말에 견주어
尙可吐氣萬丈 於是復采漢史諸傳之文
오히려 기상을 드러냄이 만 길이라 여기에 다시 한의 사서와 여러 전의 글을 가려
以爲史話 頗有食肉忘味之槪矣 雖然 자못파
역사 이야기가 되게 하니 자못 고기를 먹어도 맛을 모르는 그런 것이다 비록 그러나
凡今之人 孰能有志於斯而同其感者哉
무릇 이제 사람이 누가 여기에 뜻이 있을 수 있어 그 느낌을 같이 할 것인가
經曰 朝聞道 夕死可矣 亦惟此而已矣
경에 일러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된다하니 또한 이것이구나
若天假我以長壽 則卽可完成一史
만일 하늘이 나를 오래 살 수 있게 한다면 나아가 하나의 역사를 완성할 수 있겠는데
此不過爲其先驅而已也 噫 後世若有執此書
이것은 그 선구가 되는데 불과할 뿐이다 아! 뒤 세상에 만일 이 책을 붙잡음이 있어
而歌哭者 是乃余幽魂無限之喜也
울어 노래함이란 이는 곧 내 유혼에 끝없는 기쁨일 것이다
上之二年 乙卯三月上澣 北崖老人 序于揆園草堂
숙종 2년(1675년) 을묘년 3월 상순에 북애노인이 규원초당에서 서문을 쓴다
進三國史表 三國史記 雷川 金富軾(1075∼1151) 고려 인종 50권
臣富軾言 古之列國 亦各置史官 以記時事
신 부식이 옛날 열국을 말하니 또한 사관을 따로 두어 때의 일을 적었다
故 孟子曰 晉之乘 楚之檮杌 魯之春秋一也 등걸도 그루터기올
그래서 맹자가 일러 진의 승 초의 도올 노의 춘추가 그 하나다
惟此海東三國 歷年長久 宜其事實 著在方策
여기 해동의 삼국에 역사의 해 오래라 마땅히 그 사실이 꾀함 있어 드러나야 함이라
乃命老臣俾之編集 自顧缺爾 不知所爲 더할비
이에 늙은 신에게 명하니 좇아 편집하나 스스로 보아 모자라고 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伏惟聖上陛下性唐堯之文思 體夏禹之勤儉
엎드려 생각하니 성상폐하의 성정은 당요의 문사요 체질은 하우의 근검이라
宵肝餘閑 博覽前古 以爲今之學士大夫
밤에도 충정으로 시간을 내 옛 역사를 널리 살피신다. 오늘날 학사 대부라 여겨
其於五經諸子之書 秦漢歷代之史
오경과 제자서에서 진 한의 역대 역사는
或有淹通詳說之者 至於吾邦之事
혹 잘 꿰어 상세히 말하는 이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일에는
却茫然不知其始末 甚可嘆也
물리쳐 아득하여 그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하니 매우 한탄할 일이다
況惟新羅氏 高句麗氏 百濟氏 開基鼎峙
하물며 신라씨 고구려씨 백제씨가 기틀을 열어 정립하여 우뚝서서
能以禮通於中國 故 范曄漢書 宋祈唐書 빛날엽
중국과 예로 통할 수 있었다 그래서 범엽의 한서와 송기의 당서에
皆有列傳 而詳內略外 不少具載
다 열전이 있으나 안은 상세하고 밖은 간략해 갖춰 실림이 적지 않고
又其古記 文字蕪詘 事迹厥亡 거칠어질무 굽힐굴
또 그 옛 기록의 문자가 거칠고 짧아 사적을 잃었으니
是以君后之善惡 臣子之忠邪 邦業之安危
이로서 군후의 잘잘못과 신하의 충성 간사함과 나라의 안위와
人民之理亂 皆不得發露以垂勸戒
백성의 다스려짐 어지러움이 권함 타이름 보임으로 다 드러나지 않아
宜得三長之才 克成一家之史 貽之萬世 三長: 才操 學問 識見
마땅히 삼장의 재주라야 이겨 일가의 역사를 이뤄 만세에 남겨
炳若日星 如臣者 本非長才 又無奧識
해와 별처럼 빛날 텐데 신 같은 이는 본래 난 재주가 아니며 또 깊은 식견이 없어
洎至遲暮 日益昏蒙 讀書雖勤 淹卷卽忘 물부을계 담글엄
늦은 밤에 이르러 날이 갈수록 희미해져 책을 부지런히 읽어도 책에 머물러 곧 잊고
操筆無力 臨紙難下 臣之學術
붓을 잡아 힘이 없어 종이를 펴놓고 써 내리기 어렵다 신의 학술이
蹇淺如此 而前言往行 幽昧如彼 是故 절건
이처럼 짧고 얕아 먼저 말이 지나버려 깊고 어두움이 저 같아 이런 까닭에
疲精竭力 僅得成編 訖無可觀 祗自愧耳 겨우근 이를흘 공경할지
정력이 지치고 다하여 겨우 책을 이루었으나 볼만 한 것이 없기에 이르러 스스로 부끄럽다
伏望聖上陛下 諒狂簡之裁 赦妄作之罪 용서할사
엎드려 바라오니 성상폐하께서 함부로 됨을 너그러이 생각하셔 마구 지은 죄를 용서 하소서
雖不足藏之名山 庶無使漫之醬瓿 區區 단지부
비록 이름난 산에 품어둘 수는 없으나 장 단지에 아무렇게나 쓰이게 됨은 없기를
妄意 天日照臨
망령되이 생각합니다. 하늘의 해가 비춰올 것입니다
紀異第一 三國遺事 5권 忠烈王 때 一然 金見明(1206∼1289)
叙曰 大抵古之聖人 方其禮樂興邦 仁義設敎
머리말로써 대개 옛 성인이 바야흐로 그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켜 인의를 가르침에
則怪力亂神 在所不語 然而帝王之將興也
괴력과 어지러운 신은 말하지 않는 바이나 그래도 제왕의 일어남에
應符命 受圖籙 必有以異於人者 然後能乘大變 책상자록
부명에 응해 도록을 받아 반드시 남과 다른 점이 있었으니 그 다음 큰 변화를 탈 수 있어
握大器 成大業也 故河出圖 洛出書 而聖人作
큰 그릇을 쥐고 큰일을 이루었다 그래서 하도가 나오고 낙서가 나와 성인이 지었다
以至虹繞神母而誕羲 龍感女登而生炎
무지개 감싸 신모가 복희씨를 낳음에 이르고 용을 느낀 여등이 염제를 낳고
皇娥遊窮桑之野 有神童自稱白帝子 交通而生少昊
황아가 궁상의 들에 가니 신동이 있어 스스로 백제의 아들이라 함에 다녀 소호를 낳았다
簡狄呑卵而生契 姜嫄履跡而生弃 胎孕十四月而生堯 이름원 버릴기
간적은 알을 삼켜 설을 낳고 강원은 자취를 밟아 기를 낳고 열넉달을 배어 요를 낳고
龍交大澤而生沛公 自此而降 豈可殫記 늪패 다할탄
용과 큰 못에서 사귀어 패공을 낳으니 이로부터 내려옴에 어찌 다 적을 수가 있겠는가
然則三國之始祖 皆發乎神異 何足怪哉
그러하니 삼국의 시조가 다 신이함에서 나옴을 어찌 괴상하다 할 것인가
此紀異之所以漸諸篇也 意在斯焉
이러한 기이로 모든 편에 나아가는 까닭이며 뜻함이 여기에 있음이다
渤海考序 泠齋 柳得恭(1748∼1807)
高麗不修渤海史 知高麗之不振也. 昔者 高氏居于北
고려가 발해사를 펴지 못함은 고려가 떨치지 못함임을 안다. 옛날 고씨가 북쪽에 있어
曰高句麗 扶餘氏居于西南 曰百濟 朴昔金氏居于東南
일러 고구려이고 부여씨가 서남쪽에 있어 일러 백제이고 박석김씨가 동남쪽에 있어
曰新羅 是謂三國. 宜其有三國史 而高麗修之 是矣.
일러 신라이니 이를 삼국이라 한다. 마땅히 그 삼국사가 있어야 하고 고려가 펴내니 옳다.
扶餘氏亡 高氏亡 金氏有其南 大氏有其北 曰渤海.
부여씨가 망하고 고씨도 망하나 김씨는 그 남쪽에 있고 대씨가 그 북쪽에 있어 일러 발해니
是謂南北國 宜其有南北國史 而高麗不修之 非矣.
이를 남북국이라 한다 마땅히 그 남북국사가 있어야하나 고려가 펴내지 못하니 옳지 않다.
夫大氏 何人也? 乃高句麗之人也. 其所有之地 何地也?
대저 대씨는 어떤 사람인가? 곧 고구려 사람이다. 그 가진 땅이 어떤 땅인가?
乃高句麗之地也. 而斥其東 斥其西 斥其北 而大之耳.
곧 고구려의 땅이다. 그 동쪽을 물리고 그 서쪽을 물리고 그 북쪽을 물리니 클 따름이다.
及夫金氏亡 大氏亡 王氏統而有之 曰高麗.
대저 김씨가 망함에 이르러 대씨도 망해 왕씨가 계통을 이어 있으니 일러 고려이다.
其南有金氏之地則全 而其北有大氏之地則不全 或入於女眞
그 남쪽 김씨의 땅은 온전하나 그 북쪽 대씨의 땅은 온전치 못하니 혹은 여진에 들어가고
或入於契丹. 當是時 爲高麗計者 宜急修渤海史
혹은 거란에 들어갔다 마땅히 이 때 고려를 위한 꾀함은 마땅히 발해사를 급히 펴내
執而責諸女眞曰 何不歸我渤海之地? 渤海之地
지켜 여러 여진을 꾸짖어 일러 우리 발해 땅에서 어찌 돌아가지 않는가? 발해 땅은
乃高句麗之地也. 使一將軍往攸之 土門以北可有.
곧 고구려의 땅이다 한 장군으로 하여금 가서 다스리게 해 토문강 북쪽이 있을 수 있고
執而責諸契丹曰 何不歸我渤海之地? 渤海之地
지켜 여러 거란을 꾸짖어 일러 우리 발해 땅에서 어찌 돌아가지 않는가? 발해 땅은
乃高句麗之地也. 使一將軍往攸之 鴨綠以西可有也.
곧 고구려의 땅이다 한 장군으로 하여금 가서 다스리게 해 압록강 서쪽이 있을 수 있다.
竟不修渤海史 使土門以北鴨綠以西 不知爲誰氏之地
끝내 발해사를 펴지 못해 토문이북과 압록이서를 누구의 땅인지 알지 못하게 했다
欲責女眞而無其辭 欲責契丹而無其辭
여진을 꾸짖으려 해도 그 말할 것이 없고 거란을 꾸짖으려 해도 그 말할 것이 없어
高麗遂爲弱國者 未得渤海之地故也 可勝歎哉.
고려는 마침내 약한 나라가 되었으니 발해 땅을 얻지 못한 까닭이라 한탄을 이길 수 있으랴
或曰 渤海爲遼所滅 高麗何從而修其史乎?
어떤 이가 일러 발해는 요나라가 없앤바 되니 고려가 어찌 좇아 그 역사를 펴낼까? 하나
此有不然者. 渤海憲象中國 必立史官 其忽汗城之破也 홀한성:발해수도
이는 그렇지 않다. 발해는 중국을 본받아 반드시 사관을 두었고 그 홀한성이 무너지자
世子以下奔高麗者 十餘萬人 無其官 則必有其書矣.
세자이하 고려로 쫓겨 온 이가 십 몇 만이나 되었다 그 벼슬이 없으면 그 책은 반드시 있다
無其官 無其書 而問於世子 則其世可知也
그 벼슬이 없고 그 책이 없어 세자에게 물으니 곧 그 세대는 알 수 있고
問於其大夫隱繼宗 則其禮可知也 問於十餘萬人
그 대부 은계종에게 물으니 곧 그 예법은 알 수 있고 십 몇 만 사람에게 물으니
則無不可知也. 張建章 唐人也 尙著渤海國記
곧 알 수 없는 것이 없었다. 장건장은 당나라 사람인데 오히려 발해국기를 지었다
以高麗之人 而獨不可修渤海之史乎? 嗚呼! 文獻散亡
고려 사람으로 우리만 발해사를 펴지 못할 것인가? 아! 문헌은 흩어져 잃어 가는데
幾百年之後 雖欲修之 不可得矣.
거의 백년 뒤에는 비록 이를 펴고자 하나 할 수가 없을 것이다.
余在內閣 頗讀中秘書 遂撰次渤海事
내가 내각(규장각)에서 자못 비밀스런 책을 읽는 가운데 드디어 발해의 일을 이어 지으니
爲 君臣 地理 職官 儀章 物産 國語 國書 屬國 九考
임금신하 지리 관청직제 행사표장 생산물 나랏말 나랏글 딸린나라 아홉살핌으로 하였다.
不曰 世家 傳 志 而曰考者 未成史也
세가와 전 지(기전체 서술)로 말하지 않고 고라고 말하니 역사를 이룩하지는 않음이다
亦不敢以史自居云. 甲辰閏三月二十五日.
또한 감히 역사로서 스스로 차지하여 말하지 않는다. 갑진년(정조8년 1784년) 윤 3월 25일
進高麗史箋 高麗史 金宗瑞 鄭麟趾 等 高麗時代正史 139권
前略 竊聞 新柯視舊柯以爲則 자루가
앞부분 생략 듣건 데 새 자루는 헌 자루를 본 삼아보고
後車鑑前車而是懲 盖已徃之興亡 혼날징
뒤 수레는 앞 수레를 살피니 이는 깨침이다 대개 지나버린 흥망은
實將來勸戒 玆紬編簡 敢瀆冕旒 명주주 도랑독 면류관면 깃발류
실로 앞으로 권함 알림이 되고 이 모임은 책이 되니 감히 면류관을 더럽힘이 됩니다
惟王氏之肇興 自泰封以堀起 칠조 굴굴 高麗太祖 王建 918
왕씨가 비롯해 일어나니 태봉으로부터 일으켜
降羅滅濟 合三韓而爲一家
신라를 항복시키고 백제를 없앴다 삼한을 아울러 한 집안이 되니
舍遼事唐 尊中國而保東土
요를 버리고 당을 섬겨 중국을 높이어 동쪽 땅을 지켰다
爰革煩苛之政 式恢宏遠之規 매울가 넓을회 클굉
이에 번거롭고 가혹한 정치를 바꿔 넓고 크고 먼 규범을 밝혀
光廟臨軒策士 而儒風稍興 벼줄기끝초 4대光宗 949
광종 때 집에 책사를 모아 유풍이 점차 일었다
成宗建祧立社 而治具悉備 조묘조 6대성종 981
성종 때 사당을 모셔 세워 다스림을 다 갖추었고
宣讓失御 運祚幾傾 7대穆宗 997
목종 때 실정으로 국운이 기울었고
顯濟中興之功 宗祏再定 위패석 8대顯宗 1010
현종 때 중흥시킨 공에 종실 위패를 다시 놓고
文闈太平之治 民物咸熙 迨後嗣之昏迷 미칠태 11대文宗 1046
문종 때 태평한 정치로 백성과 만물이 다 빛났으나 후사에 이르러 혼미하게 되어
有權臣之顓恣 擁兵而窺神器 전단할전 안을옹
권신이 있어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하니 병권을 쥐고 신기를 엿봐
一啓於仁廟之時 犯順而倒大阿 엿볼규 17대仁宗 1122
한번 열어 인종 때에 따름에 어긋나 크게 넘어졌고
馴致於毅宗之日 由是巨姦迭煽 갈마들질 부칠선 18대毅宗 1146
의종 때에 길을 들이니 이리하여 큰 간신이 번갈아 부추겨
而置君如碁奕 强敵交侵 而刈民若草菅 벨예 골풀관
임금을 세움이 바둑 두기 같았다 강적이 번갈아 쳐들어오니 백성 베기가 풀 베듯 하였다
順孝定大亂於危疑 僅保祖宗之業 겨우근 23대고종 1213 24대원종 1259
고종 원종 때 큰 난에 위급하여 겨우 조종의 일을 지켰고
忠烈昵群嬖於遊宴 卒構父子之嫌 친할닐 사랑할폐 얽을구 25대忠烈王 1274
충렬왕 때 친한 여인들과 잔치 벌여 놀다 마침내 부자간에 싫어함을 얽어 놓았다
且自忠肅以來 至于恭愍之世 變故屢作 衰微益深 27忠肅1314 31恭愍1351
또 충숙왕으로부터 공민왕 때에 이르기까지 변고가 거듭 일어 쇠미함이 날로 깊었다
根本更蹙於僞朝 歷數竟歸於眞主 下略 32대禑王 1375 朝鮮太祖 1392 李成桂
근본이 다시 오그라들어 거짓 조정에서 몇해가 지나 마침내 참 주인에 돌아갔다
※太惠定光景成穆 顯德靖文順宣獻 肅睿仁毅明神熙
태혜정광경성목 현덕정문순선헌 숙예인의명신희
康高元烈宣肅惠 穆定恭禑昌讓 34세 475년간(918년∼1392년)
강고원충렬충선충숙충혜 충목충정공민우창공양
書傳序文 南宋 仲黙 蔡沈(1176∼1230) 書集傳의 서문
慶元己未冬 先生文公 ※晦庵 朱熹(1130∼1200)
경원(남송 寧帝) 기미년(1199년) 겨울 주문공선생께서
令沈作書集傳 明年先生歿 죽을몰
침에게 서집전을 짓게 하시고 이듬해 선생이 돌아가시어
又十年始克成編 總若干萬言 이길극 엮을편
또 열 해에 비로소 이기어 엮음을 이루니 모두가 만 얼마의 말이라
嗚呼 書豈易言哉 二帝三王
아! 서경을 어찌 쉽게 말할까 두 임금과 세 임금의
治天下之大經大法 皆載此書
온 누리를 다스리는 큰 다스림과 큰 법이 다 이 책에 실렸으니
而淺見薄識 豈足以盡發蘊奧 쌓을온 속오
얕은 본데와 엷은 앎에 어찌 넉넉히 간직한 속을 다 피워낼까
且生於數千載之下 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 익힐강
더구나 몇 천 년 아래에 태어나 몇 천 년 앞을 익혀 밝히려하니
亦已難矣 然二帝三王之治 本於道
또한 이미 어렵다 그러나 두 임금 세 임금의 다스림은 도에 바탕을 두고
二帝三王之道 本於心 得其心
두 임금 세 임금의 도는 마음에 바탕 하여 그 마음을 얻으면
則道與治 固可得而言矣 何者
도와 다스림은 참으로 얻어지며 말할 수 있다 무엇인가
精一執中 堯舜禹相授之心法也 잡을집 줄수
하나에 엉겨 속을 지킴은 요 순 우가 서로 내려준 마음먹음이며
建中建極 商湯周武相傳之心法也
속을 세우고 다할 끝을 세움은 상탕과 주 무왕이 서로 물려준 마음먹음이니
曰德曰仁曰敬曰誠 言雖殊而理則一
덕이라 인이라 경이라 성이라 일러 말은 비록 다르나 속내는 곧 하나이니
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
이 마음의 야릇함을 밝힐 까닭이 아님이 없어
至於言天則嚴其心之所自出
하늘을 말함에 이르러선 그 마음이 내키는 바를 의젓이 했고
言民則謹其心之所由施
백성을 말함에 이르러선 그 마음이 내두르려는 바를 삼갔으니
禮樂敎化 心之發也 典章文物 心之著也
예악과 교화는 마음이 피어남이며 전장과 문물은 마음이 드러남이다
家齊國治而天下平 心之推也
집안 가지런히 나라 다스려 온 누리 반반히 함은 마음이 밀어나감이니
心之德 其盛矣乎
마음의 덕은 그 채워져 담김이라
二帝三王 存此心者也
두 임금 세 임금은 이 마음을 간직한 이이며
夏桀商受 亡此心者也 홰걸
하나라 걸과 상나라 수(紂)는 이 마음을 잃은 이이며
太甲成王 困而存此心者也 괴로울곤
태갑과 성왕은 괴로워도 이 마음을 간직한 이라
存則治 亡則亂 治亂之分
간직하면 다스려지고 잃으면 어지러워지니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이 나뉨은
顧其心之存不存如何耳 돌아볼고
그 마음을 간직하고 못하고가 어떤지를 돌아볼 따름이다
後世人主有志於二帝三王之治
뒷세상의 임금이 두 임금 세 임금의 다스림에 뜻이 있다면
不可不求其道 有志於二帝三王之道
그 도를 찾지 않을 수 없고 두 임금 세 임금의 도에 뜻이 있다면
不可不求其心 求心之要
그 마음을 찾지 않을 수 없으니 마음을 찾는 바람직함에
舍是書 何以哉
이 책을 버리고 무엇으로 할까
沈自受讀以來 沈潛其義
침이 받음에 읽어오면서 그 뜻에 깊이 빠져서
參考衆說 融會貫通 迺敢折衷 화할융 이에내 속마음충
여러 말씀을 헤어 살피고 녹여 모아 꿰어 뚫고서야 이에 한껏 꺾고 채워
微辭奧旨 多述舊聞 지을술
가느다란 말과 깊숙한 뜻은 옛날 들은 것을 많이 쓰고
二典禹謨 先生 蓋嘗是正 꾀모 덮을개
이전과 우모는 선생이 대개 일찍이 바로잡으시어
手澤尙新 嗚呼惜哉 아낄석
손자국 질 남에 아직도 새로우니 아! 아까워라
集傳本先生所命故
집전은 본디 선생께서 하게하신 까닭에
凡引用師說 不復識別
무릇 끌어 쓴 선생님의 말씀은 다시 따로 알리지 않고
四代之書 分爲六卷 ※사대:虞夏殷周
사대의 글을 여섯 묶음이 되도록 나누니
文以時異 治以道同
글은 때에 따라 다르나 다스리는 도는 같으니
聖人之心 見於書 猶化工之妙
성인의 마음이 서경에 나타남은 마치 조화옹의 재주 오묘함이
著於物 非精深 不能識也 분명할저
물건에 드러남과 같아 알뜰히 깊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是傳也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心
이 집전은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의 마음에 대해
雖未必能造其微
비록 그 숨음을 반드시 지을 수 없었지만
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書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의 글에서는
因是訓詁 亦可得其指意之大略矣 주낼고 다스릴략
이로 말미암아 배워 붙이면 또한 그 뜻의 큰 굴레는 얻을 수 있으리라
嘉正 己巳 三月 旣望 武夷 蔡沈 序
가정 기사년(1209년) 삼월 기망(음력 16일)에 무이 채침이 서문을 쓰다
[출처] 역사서의 서문 (단군세기 규원사화 삼국사기 삼국유사 발해고 고려사) 서전서문|작성자 joh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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