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저질러 신을 노하게 하지 말라](http://dimg.donga.com/egc/CDB/SHINDONGA/Article/20/12/07/24/201207240500005_1.jpg)
아킬레우스가 아마존 여왕 펜테실레이아의 목에 창을 겨누고 있다.
신화時代의 범죄
아킬레우스가 아마존 여왕 펜테실레이아의 목에 창을 겨누고 있다.
영화 ‘트로이의 목마’의 한 장면. 트로이 군중이 목마를 보고 경탄하고 있다.
인도 베다 신화의 대홍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마누라는 사람이 물을 길어왔는데 양동이에 물고기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물고기가 “조만간 대홍수가 나서 세상이 전부 물에 잠길 겁니다. 나를 잘 길러주면 그때 당신을 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마누는 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키웠다. 물고기가 다 자란 뒤 바다로 돌아가면서 대홍수가 일어날 해를 일러줬다. 그러곤 “배를 준비하면 제가 도우러 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물고기가 말한 그해에 실제로 큰 홍수가 났다. 마누가 준비한 배에 올라타자 물고기가 나타나 배를 히말라야 산맥 쪽으로 인도했다.
고구려 건국신화에서도 주몽이 하늘의 힘을 빌려 대홍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고향 동부여를 떠나 졸본 비류에 도착한 주몽은 비류의 송양(松讓)왕과 만나 누가 진짜 하늘의 자손인지를 겨뤘다. 주몽이 상제의 자손임을 증명하고자 7일 동안 계속 비를 내리게 한 뒤 비류를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했다. 결국 송양왕은 나라를 주몽에게 넘겨주었다.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대홍수 얘기는 이렇다.
“먼 옛날 옥황상제가 성질 나쁜 인간을 몰살하고자 대홍수를 일으켰는데 다 죽고 선량한 오누이 두 사람만 살아남았다.”
신화의 시대에는 이렇듯 인간이 타락하거나 범죄에 물들면 신의 선택을 받은 몇 명만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분노는 범죄가 일어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살인을 흔히 격정의 범죄(crime of passion)라고 하는데 살인은 분노를 참지 못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나 부모를 욕보였다든지, 간통 현장을 목격하는 등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살인과 같은 극단적 범죄로 연결된다. 범죄학자 마빈 울프갱(Marvin Wolfgang)은 전체 살인의 26%가 피해자가 유발한 것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신들의 분노와 질투
신화에서도 분노와 질투가 살인과 같은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제우스의 바람기를 상대 여성에 대한 철저한 복수로 응징한다. 세멜레가 제우스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안 헤라는 세멜라를 번개에 타 죽게 만들었다. 헤라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멜레의 자매인 이노를 미치게 만들어 이노가 자기 아들 멜리케르테스를 삶아서 죽인 후 시체를 바다에 던져버리게 했다. 끔찍한 보복이 아닐 수 없다.
영웅 탄탈로스의 딸 니오베는 일곱 명의 자식을 낳았다. 자식 자랑에 침 마를 날이 없던 니오베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밖에 낳지 못한 레토 여신보다 자신이 훨씬 자식 복이 많다고 떠벌렸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레토는 화가 치밀어 아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시켜 니오베의 자식을 모두 활로 쏴서 죽여버렸다. 니오베는 너무 슬퍼 아버지 탄탈로스가 사는 소아시아의 시로스 산으로 들어가 돌이 됐다. 돌이 된 뒤에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트로이 전쟁 역시 복수심에서 출발한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올림포스의 모든 신이 초대받은 연회에 홀로 초대받지 못하자 화가 났다.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바치는 선물이라며 황금사과를 던졌다.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이 황금사과를 차지하려고 다퉜고, 난처해진 제우스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누가 제일 아름다운지 가려달라고 했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파리스에게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해주면 아시아 전체의 왕이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는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게 해주겠다고 다짐했고, 아프로디테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와 결혼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고 결국 다른 두 여신의 분노를 샀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헬레네였다. 그런데 헬레네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동생이자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와 결혼한 상태였다.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헬레네가 파리스의 매력에 빠지게 했다. 사랑에 빠진 둘은 메넬라오스가 크레타 왕 장례식에 간 사이에 스파르타를 떠나 트로이로 향했다. 아내를 잃은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트로이를 정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리스 도시국가 전체로 퍼져나갔다.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트로이 원정대가 구성됐으며 용맹한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도 원정 대열에 합류했다. 전쟁은 10년을 끌었으나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가르쳐준 대로 오디세우스는 속이 빈 거대한 목마를 만들고는 그 안에 자신을 포함한 그리스군 용사들을 숨겼다. 다른 그리스군은 목마를 남겨둔 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근처 섬에 숨어 대기했다. 그리스군이 전쟁에 지쳐 철수한 것으로 판단한 트로이 사람들은 남겨진 목마를 전리품으로 삼은 뒤 성안으로 들여놓고는 성대한 승전 파티를 열었다. 술에 취해 모두 깊이 잠든 사이 목마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빠져나와 성문을 열고 밖에서 대기하던 그리스군을 불러들였다. 트로이 병사들은 모두 처참하게 살해됐고 여자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신을 노하게 하지 말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의 고난도 신들의 분노를 사서 벌어진 일이다.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서 불을 훔쳐와 인간에게 전해주자 제우스는 크게 분노했다. 제우스는 자신을 속이고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는 독수리를 불러 매일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게 했다.
오이디푸스의 기구한 운명도 범죄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는 테베에서 피사로 망명해 펠롭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다. 라이오스는 펠롭스의 아들 크리시포스의 가정교사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라이오스가 미소년이던 크리시포스에게 동성애 욕망을 느꼈다. 라이오스의 유혹을 받은 크리시포스는 수치심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라이오스의 행동에 분노한 펠롭스는 라이오스가 앞으로 얻을 사내아이에게 저주를 걸었다. 테베로 돌아와 왕이 된 라이오스는 사내아이가 태어나자 녀석의 양쪽 발꿈치를 황금 핀으로 찌른 다음 목동을 불러 아이를 산중에 내다버리라고 지시했다. 산중에 버려진 오이디푸스는 또 다른 목동에게 발견돼 아이가 없던 폴리보스에게 입양돼 친자식처럼 키워졌다. 아이는 발뒤꿈치가 부어 있어 ‘부은 발’이라는 의미의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코린토스의 왕자가 된 오이디푸스는 어느 날 친구들로부터 자신이 왕의 친자식이 아니란 소리를 듣고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의 신탁에 가서 자신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물었다. 아폴론은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답해주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태어난 고향을 찾아서는 안 된다. 고향에 가면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
아폴론의 말을 들은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고향이라고 믿고 있던 코린토스가 아닌 테베로 향했다. 테베로 가는 길에 수레를 타고 오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이 오이디푸스에게 길을 비키라고 요구하면서 지팡이로 때리려고 했다. 화가 치민 오이디푸스는 노인을 때려죽였다. 이 노인이 오이디푸스의 친아버지 라이오스다. 라이오스가 죽자 왕비 이오카스테의 오빠 크레온이 섭정을 맡았다. 스핑크스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을 때인데, 크레온은 누구라도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면 왕비와 결혼시켜 테베의 왕위에 오르게 하겠다고 선포했다. 스핑크스가 “몸은 하나이면서 네 다리, 두 다리, 세 다리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라는 수수께끼를 내자 오이디푸스가 “인간”이라는 정답을 내놓았다. 스핑크스는 수수께끼가 풀린 것에 절망해 스스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크레온은 약속대로 오이디푸스를 이오카스테와 결혼시켰다. 나중에 저간의 사정을 모두 알게 된 이오카스테는 목을 매 자살했다.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보지 못한 자신의 눈을 저주하면서 황금 핀으로 두 눈을 찔렀다. 라이오스의 그릇된 욕망이 빚은 비극이었다.
신화를 대신한 法
대부분의 신화에서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나타난다. 현세에서 선행을 쌓으면 천국에 가고 악한 일을 저지르면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의 행동이 기록으로 적혀 있는 재판소로 향한다고 가르친다. 미스라 신이 주심 판사, 슬라오샤 신과 라시느 신이 배석 판사를 맡고 있는 이 재판소는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행한 모든 행동을 심판한다. 재판이 끝나면 죽은 영혼은 안내인을 따라 내세로 이동한다. 선인의 영혼은 아름다운 처녀의 안내를 받고 악인의 영혼은 노파의 안내를 받아 친바트 다리를 건넌다. 착한 영혼이 건널 때는 다리 폭이 넓어진다. 선인은 다리를 건너 천국으로 들어간다. 악한 영혼이 건널 때는 다리 폭이 좁아진다. 악한 영혼은 결국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 조로아스터교의 지옥에 대한 묘사는 구체적이다. 살아서 만행을 저지른 통치자에게는 50명의 악마가 뱀을 던진다. 사악한 부자는 고문대에 묶여 1000명의 악마에게 짓밟힌다. 남을 속여 돈을 번 장사꾼은 먼지와 재를 센 뒤 그것을 먹어야 한다. 간통을 범한 여자는 악마들이 전신을 잡아당긴다. 고통은 사면 없이 영원히 계속된다.
신화는 저주와 벌을 보여줌으로써 순종과 복종을 강요한다. 불행은 잘못된 행실의 결과라는 가르침을 받은 인간은 악과 거짓, 불법과 혼란, 부정과 억압을 멀리해야만 했다. 신에 대한 절대적 순종만이 행복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인간이 응징당하는 것을 보면서 신의 위대함과 인간의 나약함을 배워야 했다.
위대한 신화의 시대가 스러지고 역사가 시작될 때 인간은 신화를 대신할 새로운 장치를 찾아야 했다. 그것은 바로 ‘법(法)’이었다.
● 이창무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형사사법학(Criminal Justice)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패러독스 범죄학’(2009) 등 다수가 있다. 현재 한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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