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하나님 아들노릇해야 사람˙˙˙이것이 복음이고 깨달음이다” 본문
<3>인간과 역사-박재순(59·씨알사상연구소장·목사)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신대에서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겸임교수, 한신대 강사를 거쳐 지금은 (재)씨알 상임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 1학년 때 함석헌을 만나 그의 사상과 인품에 감화됐으며, 이후 함석헌과 그의 스승 유영모를 함께 묶은 씨알사상 전파에 몰두하고 있다.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 ‘다석 유영모’ ‘조직신학’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하나님 아들노릇해야 사람˙˙˙이것이 복음이고 깨달음이다”
인간은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
씨알은 작고 초라한 존재이지만 속에 큰 생명을 지니고 있다. 사람도 덧없고 작고 모자라고 흠 많은 존재지만 하늘의 영원한 신적 생명을 지녔다. 스티븐 호킹은 광막한 우주에 아주 낮은 차원의 생명체가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 같은 지적 존재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억, 수백억광년의 간극을 가진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이 태어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저 술이나 먹고 잔머리나 굴리며 살 인생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주보다 사람 한 사람이 더 큰 존재다. 사람 속에 우주의 모든 요소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자다가고 잠이 깬다.
한민족은 한의 민족이고 자손이다. ‘한’은 큰 하나를 뜻하고 하늘, 하나님, ‘하나임’이다. 한민족은 한의 아들·딸이고 씨알이다. 우리 민족정신이 잘 담긴 사상이 19세기 등장한 동학이다. 동학 교리인 시천주(侍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한겨레, 한백성에서 나온 말이다. 다석과 함석헌은 동학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사상의 줄거리를 따져보면 시천주, 사인여천, 인내천에 깊이 들어가 있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자각했다. 자기뿐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딸·아들임을 깨닫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씨알임을 알리고 선언했다. 이것이 복음이고 깨달음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아들 노릇을 해야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형제자매로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한, 하나님의 자손임을 자각하고 살았다는 점에서 한민족과 기독교(예수)는 일치한다.
길은 누구나 지날 수 있게 환하게 뚫려야
끊임없이 생각할 때 내가 사람 만들어져
사람은 하나님의 딸·아들이다. 유영모 사상은 부자유친(父子有親)의 효 신학이고, 함석헌 사상은 하나님의 아들 노릇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하늘은 빈탕한 데이고 사랑과 정의다.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의 본성과 모습도 빈탕한 데이고 사랑과 정의다. 사람은 하늘을 품고 하늘을 사는 존재다. 빈탕한 데를 사는 존재이고 사랑과 정의를 사는 존재다. 빈탕한 데서 사랑과 정의를 이루는 것이 사람 되는 것이다.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 곧게 선 존재’라는 말이 유영모·함석헌 사상에서 자주 등장한다. 사람은 흙으로 빚은 몸 생명에 깊이 뿌리를 박고 하늘의 영기를 숨 쉬는 얼이다.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로 통해야 한다. 줄곧 뚫림으로써 하늘과 땅, 이웃과 만물에 두루 통해야 한다.
생명진화는 땅의 물질에서 하늘의 영(靈)에로 올라가는 것이다. 사람은 이 생명진화의 중심과 목적이다. 사람 속에 물질, 생명, 심리, 이성, 얼, 신이 다 있다. 우주 생명의 모든 존재요소가 사람 안에 종합되어 있다. 사람은 압축된 우주다. 물질에서 영에로,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인생길에서 우주만물의 이치와 법칙과 진리가 다 구현되고 완성된다. 생명진화는 다석·함석헌 철학의 중심이다.
다석은 생각하는 것은 나를 불사르는 것, 제사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석은 숨, 피, 콩팥, 염통과 허파, 몸의 깊은 곳에서 생각의 구름이 피어오른다고 하였다. 숨과 피와 맘을 완전히 연소시켜서 나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생각은 말씀으로 몸과 맘을 사르는 것이다. 사람은 말씀을 사르는 화로다. 다석은 ‘내가 나를 낳는다’고 말했다. 씨알이 씨알을 낳듯이 사람은 생각함으로써 참된 나를 낳는다. 끊임없이 나를 새롭게 낳음으로써 나는 내가 된다. ‘내’가 되는 것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사람 되는 것이고 나를 사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유영모 사상에 심취한 일본 도쿄대 오가와 하루히사 명예교수는 “사회주의 사회는 사람다운 지도자가 없고 사람다운 인민이 없어서 실패했다. 오늘 사람다운 사람이 없어서 공동체가 무너지고 생태계가 파괴된다. 고결한 생각과 검소한 삶만이 세상을 구한다.”고 말했다. 오가와 교수는 유영모의 글을 읽고 “인류를 구원할 사상은 바로 이것”이라고 확신했다.
하나님과 통한 ‘나’는 우주와 생명의 중심이며 길이다. 다석은 우주와 생명의 큰 길로서의 ‘나’를 이렇게 표현한다. “길은 언제나 환하게 뚫려야 한다···비록 성현이라도 길을 막을 수는 없다···언제나 툭 뚫린 이 길로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자전거도 나귀도 말도 벌레도 일체가 지나간다. 이런 길을 가진 사람이 세계보다 크고, 우주보다 크다. 이런 길을 활보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다···우주와 지구를 통째로 싸고 있는 호연지기가 나다.”
다석과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한없이 어렵다. 실마리를 붙잡기는 쉬우나, 삶 속에서 이루기는 어렵다. 하루아침에 한 세계가 되지 않겠지만 100년, 천년, 만년을 두고 이 길을 가야할 지 모른다. 두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꽃과 열매를 잘 거둔 사람이다. 두 분과 비슷하게 살면서 이름 없이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씨알사상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평생 노동과 농사밖에 모르고 사는 사람, 햇볕에 그을린 농군의 얼굴 같은 경지가 씨알사상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주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다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기까지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으로 불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시간은 공간과 결합된 시공이 되었고 시공은 공간 안에 있는 물질에 속박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시간은 물질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 물질이 주도하는 시간이다. 시간은 물질과의 관계에서 이해되고 물질의 영향아래 있는 물질의 시간이다.
유영모와 함석헌은 씨알의 내부에서 시간을 보았다. 생명의 주체인 ‘나’가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 시간의 내용이고 척도이다. ‘나’는 정신이고 얼이고 신(神)이다. ‘나’의 속에 신이 계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얼이 깃들어 있다. 거룩한 얼과 하나님이 시간의 중심이고 주인이다. 따라서 시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나타낸다. 비종교적·세속적으로 말하면 시간이 하나님이다.
우주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다. 땅의 물질에서 하늘의 정신으로 진화·발전하는 역사다. 땅의 물질 속에 하늘 생명의 씨앗이 심겨짐으로써 땅의 물질에서 하늘의 영에로 나아가는 생명진화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땅의 물질이 하늘의 영이 되는 운동이기도 하다. 이 운동의 중심에 사람이 있고 이 운동을 이끌고 완성하는 것이 신이다. 이것이 역사다. 이 역사를 이루자는 것이 신의 마음이다.
시간은 언제나 지금 여기 나의 시간이다. 생명은 언제나 지금 여기 나로 서있다. 과거는 지나간 때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때이다. 있는 것은 언제나 지금 여기 내가 사는 이 순간이다. 때는 생명의 주체, 정신에서 나온다. ‘제’, ‘나’가 없으면 때가 없다. 시간은 본래 제 때, 저의 때이다. 저만의 때이므로 흥겹고 신이 난다. 저의 때를 사는 사람에게서 시(詩)가 나오고 춤이 나온다. 제소리가 나온다.
유영모 “물질이 정신되는 운동이 역사”
함석헌 “참역사는 민중의 삶속에 있어”
유영모는 오늘 하루에서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려 했다. 오늘은 ‘오! 늘’이다. 늘은 덧없는 시간 속에서 변함없는 영원이다. ‘늘’은 변함없는 것이지만 ‘늘’을 잡으면 생명과 정신은 늘어난다. 늘어나면 늘늘이야 신이 난다고 다석은 말했다. 다석은 오늘 하루에서 ‘늘’을 잡기 위해 가온찍기를 했다. 가온찍기는 시간의 한 가운데를 찍고 영원한 생명을 붙잡는 것이다. 오늘 이 순간의 가온찍기에서 시간이 생성된다. 과거와 미래가 가온찍기의 순간에서 만난다. 시간 속에 영원한 생명의 줄, 말씀의 줄, 얼의 줄이 있다. 현재의 깊이에서 영원한 과거와 미래가 만난다. 말씀 얼, 하나님, 공과 무가 영원이다. 공간과 시간은 말씀에 매달려 있다. 역사는 태어나고 내가 역사의 주인이다.
올라가고 나아가는 것이 역사적 존재의 기본자세다. 올라가고 나아가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나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새로운 나가 될까. 유영모는 생각함으로써 “내가 나를 낳다”고 하였다. 생각한다는 것은 나를 깊이 파는 것이고 낡은 나를 불태우는 것이다. 생각하면 새로운 나가 된다. 새로운 나가 되면 ‘내’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주님이 있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뚫고 앞으로 나아간다.
함석헌은 오늘의 역사는 새로운 역사를 낳는 진통을 겪고 있다고 하였다. 오늘의 역사가 내일의 역사를 낳는다. 함석헌에게 내일의 역사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낳기 위해 산통(産痛)을 겪고 있다. 우리 속에서, 우리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와야 한다.
1950년대 함석헌이 사상계에 쓴 글들은 통렬하다. “낡은 역사책을 모두 불살라 버려라. 새 역사를 쓰자. 그것 내놓고 사료가 어디 있느냐? 걱정마라. 말하는 3천만 산 역사가 있지 않나? 이 나라의 지도자라 하고 다스린다는 놈들이 돈에 팔리고 권세에 팔려 역사를 삐뚤어지게 쓰고 있는 동안 무식한 민중은 무식하기 때문에 붓과 먹으로 쓰지 않고 피와 땀으로 쓴 역사를 석실(石室) 아닌 육실(肉室)에, 골실에, 지성소(至聖所)에 감추어 지켜왔다···나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내 안에 있다. 하나님 없이 나없지만, 나 없이 하나님도 없다.”
그의 말은 거칠지만, 새 역사관, 민중관, 종교관, 철학관이 다 들어가 있다. 함석헌에 따르면 돌과 책에 기록된 역사는 거짓 역사이다. 참 역사는 민중의 삶 속에, 살과 피, 뼈와 머리 골 속에 새겨 있다. 민중의 몸, 맘, 머릿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우주 전체가 들어 있다. 거기서 역사가 해석되고 심판되고 결정된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체이고 근원이고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머릿속에 있다.
‘생명의 역사는 사랑에 의해 창조되고 진전된다.’ 이것이 함석헌의 철학적 명제다. 사랑은 약한 것이고 부드러운 것이다. 약하고 부드러움 속에서 새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다. 사회주의 사회는 평등만을 추구하다 사랑의 동력이 없어서 실패했고 자본주의 사회는 자유와 경쟁만을 추구하다가 사랑이 부족해서 생명파괴와 공동체 파괴의 늪에 빠졌다. 함석헌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통합해 통일된 새로운 나라를 이룰 근거는 사랑이라고 하였다. 사랑만이 자유와 평등을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생각이다.
일본에 민주당 정권을 출범시킨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우애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인상적이다. 다른 총리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점이다. 그의 조부는 ‘사랑의 바탕이 없는 자유와 평등은 허황된 구호’임을 깨달은 인물이다. 자민당과 재벌, 관료가 결탁한 것이 일본이었다. 하토야마를 통해 이 틀이 깨질 수 있다. 한·중·일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동아시아에 큰 변화가 올지 모른다. 결국 역사란 그 방향으로 크게 가는 것이 아닌가. <정리=정성수 논설위원
[출처] <3>인간과 역사-박재순(59·씨알사상연구소장·목사)|작성자 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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