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비전의 카발라 - 10장. 물 그룻 본문
제10장
물 그릇
매일 식사를 마치면 나는 손가락들을 물그릇 속에 담는다. 당신은 아마도 내가 손을 씻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나는 강연하기 전에 내 손을 잠시 동안 물에 담그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유일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몇 초 동안의 기회를 잡아 물과 함께 어떤 수행을 하고 있다.
내게 있어서 이 그릇 속의 물은 지상에 있는 모든 물을 상징한다. 사실상 한 방울의 물이면 전 세계의 모든 물, 모든 강과 대양의 물과 접촉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물의 양이 아니다. 물은 생명과 순수의 심벌이다. 이 작은 양의 물이 전 세계 모든 대양, 호수, 강물들의 생명을 상징한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어떻게 사랑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겠으며 그 안에 담긴 메시지에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작업에 당신이 나와 함께 동참하도록 초대한다. 만일 제자가 스승의 일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면 첫 번째로 해야 할 것은 매우 주의 깊어야 한다는 점이다. 제자는 물론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가 스승과 함께 할 때마다 그는 스승이 끌어당겨오는 에센스와 힘들의 입자들을 받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스승과 동일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당신이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장 실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물을 만지기 전에 당신은 물에게 말하고 인사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면 물은 더욱 생명이 넘치고 진동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당신 손을 물속에 담근다. 그리고 마음속에 그림을 떠올린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고산의 지극히 맑은 호수에서 목욕하는 그림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한기, 맑음과 교감하는 당신자신을 느껴라. 만일 당신이 신성한 감정을 가지고 이것을 한다면 당신은 몸이 전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진동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신은 완전히 정화되고 상쾌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심지어 당신의 두뇌도 보다 원활하게 기능하게 될 것이다. 이런 유의 행법에 의해 놀라운 변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물론 지극히 강력한 요인인 상념이 물속의 손을 통해 작용했을 때 말이다. 상념은 당신한테 신이 창조한 모든 것을 이용할 힘을 준다. 더욱 나아지고, 순수해지고, 강해지고, 지성적이 되도록 말이다.
투명한 물을 보는 것으로 이익을 얻기에 충분하다. 그것을 보는 동안 당신자신을 혼과 영의 순수성과 절대적 투명성에 연결되면 당신은 달의 영역, 세피라 예소드와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다. 만일 당신이 샤다이 엘 하이(세피라 예소드의 신 이름, 뜻은 전능자, 살아계신 신)와 천사단 케루빔(예소드의 천사단)을 지배하는 대천사 가브리엘(예소드의 대천사)의 이름을 부른다면 점진적으로 당신은 내적으로 투명하게 될 것이다. 물론 육체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그러나 내적으로 당신의 상념과 감정 속에서 당신은 진실로 투명해질 수 있다.
모든 것의 근원에 순수가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시대의 비전식에 정화의식이 포함되는 이유이다. 물은 정화의 심벌이다. 모든 세정, 침례, 성수 주수, 세례 등은 사원소 중 물의 특성에 대한 심원한 이해로부터 발원된 의식이다.
당신이 집을 짓기 원한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첫 번째 것은 기초공사이다. 당신은 벽이나 지붕부터 시작할 수 없다. 기초가 부실해도 제대로 지을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있다. 기초는 견고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믿을만한 재료들을 사용해야만 하고 충분한 깊이로 땅을 파야한다. 순수성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이유도 그와 같다. 순수는 재료의 견고성과 존재의 질을 보증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이 행법을 하도록 습관을 들이라. 수정 사발에 투명한 물을 넣고 그것을 응시하고 사랑으로 만지고 그 한기를 느끼고 투명성을 명상하는 것은 결코 사소하거나 무의미한 행위가 아니다.
이 사발 속의 물은 모든 피조물들이 잠겨 있는 우주 대양의 반영이다. 창세기에서는 이 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대 그대로 되니라.” 이 물들 중에서 궁창 위의 물은 아카샤 크로니카Akasha Chronica로 알려진 기록 보관소이다. 그 속에는 태초 이래 모든 사건과 모든 창조에 대한 기록이 저장돼 있다.
투시가들이 물그릇 속을 응시할 때 그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궁창 위의 물과 접촉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는 것은 궁창 위의 물에 떠다니는 이미지들이다. 또 어떤 이들은 특별히 준비된 물을 수정구 속에 넣어 마법 거울을 만든다. 그 물 속을 들여다봄으로써 그들은 우주혼으로 알려진 에테르 질료와 접촉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보는 물은 모든 피조물들이 잠겨 있는 우주혼의 반영이자 표현이다. 그리고 이 물은 혼, 가슴과 특별한 링크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천상의 물의 영역으로 상승할 수 있는 사람이 그 놀라운 요소들을 자신의 가슴과 혼속에 받는 이유이다. 우리 심장에 의해 펌프질되는 피는 그 물의 또 다른 속성이다. 그것은 정맥과 동맥을 따라 흐르며 우리에게 양분을 공급한다. 지상의 물들이 그 정맥과 동맥을 따라 흐르며 땅을 기름지게 하듯이 말이다.
물은 희고 피는 붉다. 백색과 적색은 하나의 신성한 에너지의 두 원리를 나타내는 색깔이다. 스피리추얼계에서 흰색은 여성, 붉은 색은 남성에 해당된다. 반면 물질계에서 흰색은 남성, 붉은 색은 여성에 해당된다. 연금술사들이 두 원리를 표현하고자할 때 그들은 태양(적색)과 달(흰색)을 말한다. 사실 붉은색(피)과 흰색(물)은 상이한 두 개의 원리가 아니라 여성 원리의 두 극성이다. 다른 것, 즉 남성원리는 불이고 그 반대 극성은 빛이다. 불은 붉은 색이고 빛은 흰색이다. 그러나 양자는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양자를 형제와 자매라고 말할 수 있다. 또는 각각이 상대를 낳았다고 말할 수 있다. 빛은 불로부터 나온다. 빛을 낳은 것은 불이다. 반면 피는 물로부터 나온다. 물은 피를 낳았다. 흰색은 아래의 붉은 색을 낳았다. 그리고 붉은 색은 위의 흰색을 낳았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나는 더 이상 나가기를 원치 않는다. 당신에게 이것은 다소 복잡하다. 나의 목적은 당신한테 보다 분명하고 정확한 개념을 주는 것이다. 당신의 영적인 진보를 위해 정말로 필요하지도 않는 온갖 종류의 이론을 내가 설명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의 모든 강연에서 나의 유일한 관심은 당신한테 실천하기에 분명하면서도 단순한 행법, 새롭게 적용할 어떤 방법들을 주는 것이다.
당신이 샘가에 서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샘을 바라본다. 그리고 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순수하고 투명하고 생명이 넘치는 물을 바라본다. 그러고 나서 당신은 샘가에 무리지어 나 있는 풀과 꽃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인근의 관목과 키 큰 나무들을 바라본다. 풀에는 수많은 벌레들이 붙어있고, 나무에는 새들이 노래하고 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와서 생명이 넘치는 그 장소를 보고는 거기에 정주하기로 결심한다. 이런 식으로 점차 전체 문명이 이 샘을 중심으로 발전해간다. 이것은 샘이 가져다주는 레슨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는가?
샘의 레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부지기수로 많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징적 물이 흐르도록 하는 것을 거절한다. 그리고 차츰 생명이 그들로부터 사라져간다. 상징적으로 말해서 식물들이 시들고 죽어간다. 벌레와 새들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심지어 인간들조차 그곳을 떠나간다. 누군들 사막 같은 곳에 즐겨 가길 원하겠는가?
여기서 흐르도록 해야만 하는 물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이다. 인간들은 사랑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그들은 신뢰하지 않고 비수용적이다. 만일 그들이 일단 어떤 작은 실망을 하거나 누군가에 의해 실망한다면 그들은 가슴을 닫고 더 이상 사랑과 관용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그들의 샘이 서서히 말라간다. 물이 흐르기를 그친다. 그리고 그들은 늪이 되어간다.
유일한 해결책은 물이 다시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다 좋은 소리요.” 당신은 말할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속임 당하고 실망하게 될 걸요!” 글쎄, 당신 샘이 완전히 말라버리는 것보다 속임 당하고 실망하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왜인가?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겠다.
한 상점 주인이 한 상자의 사과를 받았다. 그는 종종 한 박스 당 한 두 개의 썩은 사과를 발견하였다. 만일 그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보자. “항상 이 모양이니 더 이상 과일을 팔지 않겠어!” 그리곤 당장에 모든 거래를 끊는다고 해보자.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머지 않아 알거지가 될 것이다. 이것이 인간들이 가난에 빠지는 방식이다. 그들은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못한다. 때때로 나쁜 사과가 보인다고 해서 상점 문을 닫아버리기로 결심한다.
다시 말해 사랑을 표현하기를 그쳐버린다. 그러나 사랑을 억눌러버리면 모든 것을 억누르는 것이 된다. 그리고 고통 받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이것이, 샘에서 물이 흐르지 않게 하는 것보다는 실망하고 속임 당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이유이다. 상실과 상처는 선으로 항상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샘이 말라버린다면 그것은 당신의 종말이다.
내 말을 이해하겠는가? 그리고 나의 말을 믿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결코 당신의 샘으로부 물이 흐르는 것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확실히 물을 사방팔방으로 흐르게 하기보다는 수로를 내는 것이 더 낫다. 당신은 당신의 샘이 마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막아 제방을 쌓고 물길을 내어 목마른 신의 자녀들의 갈증만을 적셔주는 걸 금하는 법 따위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하는가? 걱정하지 말라. 신께서 그들을 돌보실 것이다. 당신의 일은 물이 당신의 샘으로 부터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봉팽, 1962. 9. 3.
[출처] 비전의 카발라 - 10장. 물 그룻|작성자 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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