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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임마누엘 [편집 후기] 본문

영성수행 비전/탈무드 임마누엘서

탈무드 임마누엘 [편집 후기]

柏道 2018. 1. 26. 18:05


[편집 후기]

 

우리가 알기로는 앨버트 마이어는 그의 친구인 이사 라시드, <탈무드>가 발견된 이후에 얼마동안 이를 번역했던 사람과 연락이 끊겼다. 사실상 앨버트 마이어는 1964년부터 1974년까지 이사 라시드로부터 아무 것도 듣지 못했는데, 1974년에 그는 <탈무드>의 번역된 36장을 포함하는, 겉봉을 다시 쓴 두 개의 소포를 노이탈에 있는 우체국 직원으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우리가 또 알기로는 앨버트 마이어가 그 비슷한 시기에 이사 라시드로부터 마지막으로 설명하는 편지도 받았는데, 그 편지는 바그다드에서 이사 라시드가 암살당하기 직전에 부친 것이었다. 그 마지막 편지는 이 편집후기의 끝에 포함되었으며, 누구든지 이를 읽고 싶어 하기를 바란다.

이사 라시드가 머물고 있던 바로 그 시각에 레바논 난민 캠프가 이스라엘 군에 의해 폭격 당했을 때 원본인 TJ 두루마리가 사라진 이후로 더 이상 <탈무드 임마누엘>의 신빙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몇몇 사람들이 요즈음 말한다. 그러나 <마태의 책(마태복음)><임마누엘의 탈무드>의 한 寫本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면, 또한 <임마누엘의 탈무드>의 한 버전인 <피닉스 저널 2>을 우리가 검토하면 그런 증명은 의문을 넘어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나는 말하고자 한다.

 

또한 나는 <피닉스 저널 2>이 임마누엘의 만년에 관하여 더욱 폭 넓게 광범위한 해석을 제공한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한다. 더욱 읽을 만한 가치를 그 해석이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임마누엘의 나머지 생애 이야기에 관하여 간결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피닉스 저널>에서 완벽하게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처형 사건 이후에 일어난 일은 임마누엘과 그의 어머니 메리 및 그의 동생 토마스가 북부 인도로 여행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여행을 최대한 이용하여 임마누엘은 여행길을 따라 있는 많은 나라에서 그의 말을 들으려는 사람 누구에게나 전도하기 위해 여행을 중단했다. 실로 그런 모든 여행 중단과 전도 때문에 임마누엘과 어머니 메리 및 동생 토마스는 인도에 도착할 때까지 여러 해가 걸렸다.

 

그 여행은 힘들었다. 우리는 임마누엘의 어머니 메리가 병이 들어서 임마누엘이 38세였을 때 서부 히말라야 산맥에서 죽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마누엘은 앞으로 계속 나아가 현재 인도의 캐시미르 지역으로 알려진 곳까지 여행했고,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더욱 전파했다. 실로 임마누엘은 서부 파키스탄과 북부 인도를 포함하여 인도의 많은 지역을 다녔다.

임마누엘은 45세 때에 결혼했으며, 인도의 캐시미르 지역에 있는 스리나가르에 정착했을 때에는 수많은 아이들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곳을 기점으로 해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수없이 여행하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더욱 전파했다.

임마누엘은 110~115세에 자연적인 이유(노환)로 인해 죽었으며 스리나가르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또한 유다 이스카리옷은 90세에 사망하여 역시 스리나가르 근처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임마누엘의 自然死 이후에 그의 장남인 요셉은 유다가 시작했던 자기 아버지의 가르침에 관한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그 전체 이야기가 완성되자 요셉은 인도를 떠났으며, 3년간의 여행 끝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 곳에서 죽었다. 죽기 전에 그는 유다가 기록했던 원본 두루마리들을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속으로 가져와 감추었다. 또한 요셉이 완성시켰던 이야기의 사본도 요셉이 죽은 후에 하나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사도 마태의 손으로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유다에 의해 만들어진 원본 두루마리들은 1963년 이사 라시드와 앨버트 마이어에 의해 다시 발견될 때까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안에 남았다.

힌빌에서 1974920일 편집자 에두아르트 빌리 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