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모든 이야기들은 마음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이야기 속의 죽은 아이는 무엇입니까? 이 이야기 속에서 아이는 그냥 아이가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속의 야망, 바람, 성취되지 않은 꿈입니다. 인간의 마음 안에 살고 있는 아이입니다. 말했듯이, 성경의 모든 이야기들은 마음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존재했던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 속의 모든 이야기들은 여러분 개개인의 마음 안에서 계속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예수는 인간의 깨어난 이성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감각의 한계를 벗어나 활동하고 이전에 가졌던 한계들을 씻어낸다면, 더 이상 여러분은 미친 사람이 아니라 이 이야기 속의 예수이고 인간의 가슴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소망을 소생시킬 수 있는 권능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혈이 있는 여인과 같습니다. 하혈이란 무엇입니까? 피가 흐르는 자궁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자궁이 아닙니다. 이야기속의 여인은 12년간 하혈을 앓고 있어서 임신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혈이 계속 진행됐기 때문에 그녀의 소망을 잉태시킬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그녀의 믿음이 자궁을 닫았고, 그로써 이 온전해진 자궁으로 씨앗이나 생각들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러분이 이전에 갖고 있던 관념들을 지워버리고 원하는 모습이 된 것을 사실로 받아들여 믿음을 유지하게 될 때, 여러분은 그 상상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고 여러분의 죽은 아이를 소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혈이 깨끗이 사라진 여인이 되었고, 이제 남은 일은 죽은 아이의 집으로 가는 겁니다.
아이, 즉 여러분의 원하는 상태는 이제 여러분 자아의 확고한 관념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갖지 못해서 원하기만 했지만, 이제는 그 원하던 것들을 이미 가졌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더 이상 원하는 행위를 계속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이젠 소망에 대해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존재로 변했는지에 관해서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이미 되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확실하기에, 그냥 그 모습으로 걸어 나갈 뿐입니다.
원하던 것들이 성취된 듯 걸어 나아갈 때, 사람들은 4차원적인 세상에서 내가 이미 소망을 성취한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3차원적인 눈으로 본다면 더 이상 내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계에 둘러싸인 시야로 세상을 보니 아이가 죽은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법칙을 알고 있는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는 죽지 않았다.”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고 있는 겁니다. 이제 소망이 이루어진 것을 사실로 받아들임으로써, 그것들을 눈에 보이게끔 깨웁니다. 사실로 받아들인 것들을 흔들리지 않고 유지한다면 그것들이 말하고 있는 것들을 일깨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는 이제 방문을 닫습니다. 문이란 무엇입니까? 감각의 문입니다. 감각이 보여주는 것들 모두를 완전하게 닫는다는 말입니다. 감각이 전해주는 증거들을 모두 거부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적인 판단을 멈추고 감각이 부정하고 있는 존재가 이미 되었다는, 확신에 찬 선언을 하면서 당당하게 걸어 나갑니다.
감각의 문을 닫고 이런 통제된 상태 속으로 누구를 들였나요? 오로지 아이의 부모와 예수의 제자들만을 들입니다. 그리고 야유하고 비웃는 군중들을 향해 문을 닫습니다. 더 이상 외부에서 전해주는 증거들을 구하지 않습니다. 감각들은 내가 사실로 받아들인 것들을 야유하고 비웃으면서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들을 나에게 전해주지만, 나는 그것들을 완벽하게 거부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실로 받아들인 것이 실현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다른 이들과 의논하지 않습니다.
방 안에 남겨두었던 부모란 무엇을 말합니까? 모든 창조물의 아버지-어머니는 인간의 IAMness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하느님입니다. 나는 소망이 이루어진 상태를 인식합니다. 나는 모든 생각들의 아버지-어머니이고 나의 마음은 새로운 자아의 관념에 믿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 통제된 마음 안으로 제자들만을 들이고 그것을 거부하는 모든 것을 닫아버립니다. 이제 아이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부활합니다. 사실로 받아들인 상태는 세상 안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어 상상의 힘의 증거들을 가져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결정하십시오. 제가 그 결정을 대신할 순 없습니다. 여러분은 죽은 과거 속에서 살든지, 하혈이 멈춘 여인으로 살든지 결정해야 합니다. 저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외부의 도움도 없이, 원하는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원하는 것들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까? 아니면 이전에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말하던 특별한 조건들을 갖추고,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거나 어떤 특별한 것들이 있어야 된다고 믿습니까?”
저는 어떤 특정한 교회들이나 종교단체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교회나 자신의 단체 외의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개신교도로 태어났습니다. 개신교에서 이야기하기를, 유일한 크리스천은 개신교도밖에 없다고 합니다. 가톨릭에서는 유일한 크리스천은 가톨릭 신자라고 말합니다. 유대인에게 물어보면, 크리스쳔은 이방인이고, 유대인만이 선택받은 자라고 합니다. 이슬람교도에게 말할 때는 유대교와 크리스천은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말할 때는 이런 모든 것은 천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누구에게 말하든 상관없이, 그들만이 선택받은 자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한 단체에 있어야 된다고 믿는다면, 여전히 미신과 과거의 선입견 뒤에 숨어있는 정신이 나간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이런 것들을 쫓아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중입니다.
어떤 이들은 저에게 말합니다. “인간 예수, 인간 모세, 인간 베드로에 대한 믿음을 버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런 것을 요구한다면 너무 가혹한 일이에요. 이런 믿음들을 갖고 있는 것이 저에겐 오히려 혼돈스럽지 않습니다. 전 이런 믿음을 갖고도 당신이 말하고 있는 성경의 마음에 관한 해석들을 따를 수 있습니다.”
죽은 과거로부터 나오십시오. 공동묘지로부터 나와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버지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걸어 나가십시오. 하느님이라 부르는 여러분의 아버지는 여러분의 의식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창조의 법칙입니다.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습니까? 비록 한계에 둘러싸인 3차원적인 시선으로는 원하는 목적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실로 받아들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사실로 받아들인 것과 맞추어 걸어 나가면서 믿음을 계속 유지하십시오.
3차원 안에서 시간이라는 것은 아주 천천히 흐르기 때문에, 어쩌면 실제로 받아들인 상상들이 세상 밖으로 현현되어 나오더라도 그것들이 한 때는 마음속에서만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마음 안의 것들은 항상 외부세계에 나타나지만, 시간이란 것이 천천히 흐르기 때문에 여러분은 둘 사이의 관계를 보지 못합니다.
자, 이제 여러분이 마가복음 5장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판단해 보십시오. 죽은 아이를 부활시키고 있습니까? 마음의 자궁을 닫기 위해서 도움이 필요합니까? 계속 피가 멈추지 않아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까? 죽은 과거 속에서 살고 있는 미친 사람입니까? 여러분만이 판단할 수 있고, 여러분만이 이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