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마음 상태

창세기 1장 26-28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현대사회의 신앙의 위기를 저는 '믿음의 부재'라고 이름짓고 싶습니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다음 세대들에게 무조건 믿어라는 통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모든 정보와 지식이 오픈되어 있는 현실에서 좀더 과학적이고,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입증이 전제 되지 않고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마음의 법칙에 대하여 배우고 나누고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의 중요성은 모든 종교가 강조하고 있는 핵심 법칙이기도 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중에 너히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잠 4장 23]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세상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화엄경의 일체유심조( 一切 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 낸다는 것입니다.
중용의 첫 머리에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도의 3대 경전중에 하나인 '우파니샤드'에서는 마음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 마음이 정화 되면 기억이 투명해지고, 기억이 투명해 지면 가슴에 얽혀 있는 모든 매듭이 풀어진다." 우파니샤드
마음을 통제하고 지키고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입니다.
"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이 내용의 핵심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바다의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은 우리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는 것에 대한 다스림입니다.
하늘의 새는 우리들의 머리와 뇌와 의식을 상징합니다. 뇌와 중추신경이 육제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즉 교감신경이 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은 심장과 폐와 간, 신장, 췌장, 내장등 우리들의 오장육부를 상징합니다. 배꼽과 명치 사이를 우리몸의 태양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태양신경총(복뇌)이라고 합니다.
신앙의 힘은 기적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종교에는 우리가 이해하고 입증하기 힘든 수 많은 기적의 체험들이 보고 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도 어쩌면 이적과 기적, 그리고 불가사의한 기도 응답과 신비한 체험들에 의해 신앙이 계승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이적과 기적, 그리고 신비한 체험들은 우연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법칙에 의해서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 변치 않는 법칙들이 바로 眞理라는 겁니다. 우주의 법칙이라든가 상상의 법칙, 창조의 법칙, 끌어당김의 법칙, 발산과 흡수의 법칙, 인과 응보의 법칙, 동조의 법칙, 기도의 법칙등 많은 법칙들이 있습니다.
오늘 나누고자 하는 창세기 1장 26-28 말씀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상상의 법칙에 의한 창조의 법칙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심히 좋았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인간 창조 과정을 이해하고 깨달을 때 참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있을 것이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이후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을 다른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즉 내면(의식)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성도님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시편 23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이 말씀의 핵심은 '생각이 바로 열매를 맺는 씨앗이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생각하셨고, 그 생각한 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겁니다
우리 목동교회는 시골교회이다 보니 대부분 농사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벼농사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쌀 속에는 탄수화물과 그 외에도 몇 가지 화학 성분밖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볍씨를 논에 뿌려 보게 되면 ....
그러면 그 속에서 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쌀이 됩니다.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요?
땅 속에서 불가사의한 작용이 일어나 쌀알을 성장시켜 벼로 만드는 것입니다.
호박씨를 심으면 호박이 나오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오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옵니다.
사과나무 씨를 심으면 사과나무가 생기고, 포도나무 씨를 심으면 포도나무가 생깁니다.
즉, 모든 씨앗을 땅에 심으면, 땅은 이를 싹트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예컨대,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떤분이 마음속에 품고 있다고 해 보자.
그렇다면 그 분은 자기가 흰 가운을 입고 여기저기 분주히 돌아다니며 환자를 돌보고 있는 모습을
마치 눈으로 보듯 생생히 마음속으로 그려봅니다.
이같이 '눈으로 보듯 생생히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視覺化)을 '생각'이라고 이름해 보자.
이 '시각화'를 분명히 해 놓고 나서 그것을 곧 잠재의식으로 옮겨 놓을 때, 이것이 바로 '씨앗을 뿌리는 일'이 된다.
씨앗을 뿌리면 반드시 그 씨앗에서 싹이 트며 자라난다.
씨앗에서 싹이 트기 위해서는 햇볕이 필요한데, 이것은 '신념'에 해당된다.
또 물도 필요하다. 이것은 '실감(實感)'에 해당된다.
잡초도 뽑아 줘야 한다. 이것은 '필요 없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 곧바로 그것을 잘라 버리는 '결단(決斷)'에 해당한다.
잠재의식이 기름진 땅이라면, 의식하는 마음은 그곳에 뿌려지는 씨앗입니다.
씨앗이 좋으면 훌륭한 열매가, 씨앗이 나쁘면 좋지 않은 열매가 맺히게 마련입니다.
조셉 머피 지음 / [머피의 100가지 성공 법칙]중에서
우선 훌륭한 씨앗, 즉 좋은 생각을 골라내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실감 나도록 되풀이하고, 비관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곧바로 그 생각을 떨쳐 버릴 수만 있다면, 반드시 그 씨앗은 훌륭하게 성장하여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
또 머리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당신은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야 한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보통 사람의 경우 4~5년 내에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두뇌가 명석해진다.
또한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여성은
자신의 이상형을 잠재의식 속에 불어넣은 다음 계속 기대를 간직하고 있다면,
보이지 않는 순간에 점차로, 그러나 확실히 외형까지는 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잠재의식의 법칙이다.
오늘의 이글귀를 통해,
오늘부터 나는 새롭게 잠재의식에 씨앗을 뿌리겠습니다.
'나는 현명하고 명석하고 지혜로운 부자다'
라는 씨앗을 뿌리고, 부정적인 잡초는 잘라버리고 일상에 행복을 찾겠습니다.
창세기 25장 20-26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그 아들들이 그의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우리 내면에 두 민족이 살고 있다. 아래로 부터 온 에서와 위로부터 온 야곱....
에서와 야곱은 두가지 의식을 말한다.
네빌고다드님은.. 에서를 외부세상에,
야곱을 내면세상(상상력)에,
이삭을 우리의 인식에 비유하셨죠.
내용은?
야곱은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준다는 정보를 듣고는
야곱은 에서처럼 털이 많게 보이기 위해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이삭에게 가서 자신이 에서이니 축복을 달라고 하죠.
이삭은 깜쪽같이 속고는 야곱에게 축복을 줍니다.
의미는?
우리의 인식은 인식한 대로 세상에 펼치는 힘을 갖고 있죠. 이삭의 축복처럼.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야곱이 에서의 흉내를 내듯.. 외부세상을 내면에서 만듭니다.
그러면 현실과 상상을 구별할 수 없는 우리의 인식(이삭)은 사실로 받아들인 그것에 축복을 내립니다.
우리에게는 에서와 야곱처럼..
뚜렷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자극의 소스가 있습니다.
하나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이고,
다른 하나는 내면에서 주어지는 자극입니다.
뚜렷하게 구분이 되는 두 종류인데
내가 지금은 외부에 자극을 수동적으로 받고 있는지?
내면에서 만들어낸 내 생각으로 능동적으로 받고 있는지?
구별해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점진적으로나마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던 습관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상상력을 이용해 원하는 세상을 만들고 그곳에서 자극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습관이 될 때까지 외부의 자극은 계속 우리를 흔들어댈 겁니다.
이럴 때마다 이미 완벽하게 완성되어진 모습이 우리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는 습관을 가져봐야 합니다.
'내부에서와 같이 외부에서도'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리라'
삶과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내면을 바꾸어라.
내면이 바뀌지 않고는 삶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의 상상력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진리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육적인것 뿐만 아니라
내면의 의지, 감정, 희노애락과 영적인 것과 4차원의 생각, 형이상학적인 사고등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한계가 없으신 무한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우리들 또한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고 하나님의 무한 한 축복을 누리는 비결은
하나님께서 주신 무한한 능력을 나의 내면에서 찾아 활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내면에 계시기 때문에
눈을 감고 내면으로 들어가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원하는 상태를 자신의 자아에 넣기 위해 ‘친구의 목소리’를 이용하는 것은 마리아의 성스러운 수태이야기 속에 아름답게 표현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천사를 마리아에게 보내어 마리아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알리려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하니, 그대가 그대의 태 안에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되리다.
그러자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니,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겠나이까?
그러자 천사가 대답하여 그녀에게 말하니, ‘성령이 그대에게 임할 것이고, 지극히 높은 권능이 그대를 덮을 것이더라.
그리고 또한 그대에게서 태어나게 될 신성한 이는 하느님의 아들로 불리 것이더라.’
하느님에게는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이더라.”
성경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마다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깔려 있습니다.
범죄로 사망선고를 받은 인류에게 살아날 방법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입니다.
그런 구속사의 최절정, 구속사가 향하고 있는 중심 인물은 예수그리스도 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것이라고 했습니다.(요17:3)
성경은 상징과 비유를 통해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 상징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 있어야
제대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문자로 읽고 있다면 예배당을 십수년을 다녀도 아무런 삶의 변화를 체험 할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에 관한 이야기라고는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원래 목표로 했던 교훈은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본래 이야기 속에는 생각과 말씀이 육신의 옷을 입는 방법이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하나의 생각, 즉 한 명의 아들을 낳는다고 합니다. 하느님은 천사를 마리아에게 보내서 아들을 잉태하였다는 사실을 알리게 하고, 하느님의 생각으로 잉태케 하여 싹트기 시작한 ‘하느님의 생각’을 마리아의 태에 ‘잉태’시켰습니다.
의식이 스스로 잉태하는 방법을 기록한 것 중에 ‘마리아의 수태고지’보다 더 간단명료한 것은 없습니다.
이 창조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인물은 아버지, 아들, 마리아, 그리고 천사입니다.
아버지는 ‘여러분의 *의식’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아들은 ‘여러분의 *욕망’이며 마리아는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태도’를 상징하고 천사는 마리아를 ‘잉태시키기 위한 *방법’을 상징합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됩니다.
아버지는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아들’을 얻습니다. 여러분 역시 다른 이의 ‘도움’이나 ‘암시’ 없이 ‘욕망’을 뚜렷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후에 아버지는 이 메시지, 즉 ‘현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리아에게 *전달하기 위해 ‘최상의 능력’을 갖춘 *천사를 *선택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세상 속에서 *사람을 *선택합니다. 그 사람은 ‘여러분의 *욕망이 실현’된 것을 알아차렸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 줄 사람(친구)’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어떤 남자의 도움도 없이 아들이 잉태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역시 소망이 현실이 되었을 때 *기뻐해 줄 친구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다’ *상상하시고,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십시오. 친구는 ‘여러분이 원하는 모습이 *되었다’고, ‘원하는 것을 갖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듣고 있는’ 것을 상상하십시오.
‘놀라운 희소식’을 들은 것에 대해서 ‘짜릿함’을 느낄 때까지 이런 ‘수용적인 마음의 상태’ 안에 머뭅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 속의 마리아처럼 이 경이롭고도 성스러운 처녀 수태를 비밀로 해서(말하지 않고),
그것이 때가 다 찰 때에 외적으로 현현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지닌 채 자신의 일상을 보낼 것입니다.
수태의 과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단지 아들을 태어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인 정자를 제공할 뿐이고,
직접 어머니의 자궁으로 정자를 운반하지는 않고 어쩐 매개체를 통해 정자를 실어 나르게 됩니다.
욕망을 지니고 있는 의식은 씨앗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 다시 말해 생각을 지니고 있는 아버지입니다.
‘하나의 뚜렷한 욕망’은 그 자체로 완벽하게 형성된 하나의 씨앗, 즉 ‘외동아들’입니다.
이 씨앗은 아버지(욕망을 가지고 있는 의식)로부터 어머니(원하는 상태가 된 의식, 원하는 상태를 가지고 있는 의식)에게로 옮겨갑니다. 이런 의식 안의 변화는 *천사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의 목표가 ‘이미 성취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상상속의 친구의 음성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의식에 ‘인상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천사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 즉 ‘친구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은
스스로 잉태를 위한 가장 신속하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뚜렷하게 만든 욕망’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은, ‘그것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는 마음의 태도를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상상하십시오.(아주 아름다운 목소리..) 그리고 그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 얼마나 행운이고 다행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십시오.
(그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상상하십시오.)
여러분이 이렇게 ‘수용적인 마음의 태도’에 있다면 여러분은 ‘천사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되고 싶은 모습이 이미 되었고, 갖기 원하던 것을 이젠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친구에게서 듣기 원하던 말을 들었을 때 가슴속에서 ‘짜릿함’이 솟아난다면 바로 ‘그 순간이 수태’의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바로 여러분이 스스로 잉태를 한 순간이며 이전까지 원하던 모습이나 갖고 싶었던 것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실제로 느끼는 순간입니다.
이런 내적인 경험을 한 후에 여러분이 깨어났다면 마치 성경속의 마리아처럼 변화된 마음의 구조에 의해서 아들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적인 상태를 확고하게 만들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부의 상태는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세상 속에 형체를 띄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 집에는 많은 저택들이 있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리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러 가노라.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그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희가 알고 또 그 길도 너희가 아노라.” 하시니 (5) 도마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 길을 알 수 있나이까?” 라고 하니 (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7) 만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는 너희가 그 분을 알고 또 보았느니라.” 고 하시니 (8) 빌립이 주께 말씀하시기를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그러면 만족하겠나이다.”라고 하니라.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빌립아, 내가 너희와 그처럼 오랜 시간을 있었는데 네가 나를 모르겠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그런데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라고 말하느냐? (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에게 하는 말들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그 일들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믿어라. 그리하지 못하겠거든 행한 그 일들을 보고 나를 믿어라. (12)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들을 할 것이요 또 이보다 더 큰 일들을 할 것이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라. (14) 너희가 무엇이나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우리 아버지 집에는 많은 저택이 있으니. 이 구절은 의식의 많은 상태들을 의미한다. 우리는 항상 마음의 상태 속에서 살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장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은 많은 꿈, 동경, 욕망, 열망, 계획, 느낌, 상상, 결핍, 감정들을 갖고 살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이다. 아침에는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던 사람이 오후에는 심술궂고 화가 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또 저녁에는 온화하고 차분해져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하루 동안 많은 저택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비록 어떤 이가 외형적으로는 궁궐 같은 집에서 살더라도 동시에 적의,걱정, 공포라는 정신적 감옥 속에서 살 수도 있다.진정으로 속박당하는 죄수는 마음 속에 있다. 만약 침대에 누워 있게만 되었다면 궁궐 속에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침에 일하러 갈 때 기쁜 마음으로 가는 사람은 훌륭한 마음의 저택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다. 따라서 인간의 능력도 무한하다. 인간 안에 있는 영광과 아름다움을 결코 다 표현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개념을 무한할 정도로 많이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실제로 마음의 무한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무형의 존재가 우리 안에 있고, 내부의 것을 외부로 표출시키는 우리의 드러냄은 끝이 없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면. 만약 우리가 현재의 집(한계 상태)에서 떠나려고 하면 의식 속에서 일어나 우리의 이상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상태(우리의 이상)를 확신하는 상태까지 확고히 한다면 우리가 결국 차지하게 될 장소를 준비하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먼저 마음 속에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 속에서 그것을 받았다는 상태까지 도달하게 되고 외부로의 실현은 뒤따른다.
6절은 어떤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적 의식이 건강, 자유,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나의 나는 IAM이 바깥세상의 모든 것과 모든 현현들로 향하는 문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된다. 나의 의식이나 인식은 실체實體이다. 왜냐하면 내가 사실이라고 느낀 것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소망의 성취가 지금 나를 속박에서 자유롭게 한다.이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이다. 이 진리를 테스트할 수 있다. 일상생활이 조화롭고 우호적이고,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다고 믿기 시작하면 나의 삶은 이런 새로운 태도로 인해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내가 믿는 그대로 나에게 이루어진다.
나는 마음의 법칙을 작동시키고 있다. 의기소침함, 그리고 실망과 외로움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진리를 발견했다. 내가 세상은 좋은것이라고 믿으면 이런 태도에 맞춰서 나의 생활과 나의 세상은 좋게 변한다는 것을 보게 된다. 나의 사고와 느낌이 나의 운명을 정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문제 위를 뛰어 넘어서 마음, 영혼 속에 있는 해결책에 거居할 수 있게 만든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당신 의식이 가는 곳으로 당신의 육신도 가게 된다. 의식이 가는 곳으로 손과 발이 간다. 만약 당신이“나는가난하다”고 말하면서 빈곤함을 느끼면, 당신의 의식은 가난을 더욱 끌어당긴다.그래서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욱 부유해진다.*마태복음 25:29 참조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이 구절은 우리 의식이 끌어당기는 것만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구절에서 나는 우리 각자의 나는 I AM을 말하는 것이다. 당신의 나는 I AM은 모든 생각의 부모이다. 빌립이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라고 말한 것은 우리의 주도적인 분위기를 불러내는 것을 의미한다.분위기나 느낌은 볼 수 없다.
당신이 내적원인의 원리를 알게 되었을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 생명의 원리를 발견 했다면 그것을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이 내적 생명의 자유로운 흐름을 패배와 무기력함이 방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무엇을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결핍이나 혼란을 보게 되는지 또는 부유, 질서, 조화를 보게 되는지를 결정한다.
우리는 원리를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결과는 볼 수 있다.
빌립은 인내를 의미하는 말 조련사이다. 오감에 의해서 받은 상像이 당신의 목표를 이루려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할 때 당신은 빌립이라고 불리는 이 마음의 자질을 불러낸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비전이 가는 대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를 보는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즉 당신의 의식이 당신 세계에서 이루어진 것들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당신의 모든 경험, 환경, 그리고 상태는 당신의 현재 세계 배후의 원인인 의식상태, 즉 아버지를 목격하는 아들로 표현할 수 있다.
내부의 무한한 힘을 새롭게 인식하고 현재 상태, 현재 사실을 뛰어넘어 목표에 집중한 채 하나님의 평화와 사랑, 기쁨과 행복이 지금 당신 것이라고 대담하게 주장하라. 외부세계의 양상樣相들이 당신을 겁주고 놀라게 하면, 즉시 내부의 신성으로 향한 채 당신의 목표를 지금 바로 그곳에서 선언하라. 그 어떤 것도 당신의 고양된 영혼의 기를 꺾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비록 아직 그것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당신 내부의 빛은 당신이 가는 길의 램프가 되고 당신은 신의 빛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걱정, 시련, 재난에 둘러싸여 있을 때, 마치 욥처럼 신의 촛불이 당신 머리 위에 켜져 있다는 것을 알아 신에게 믿음을 둔다. 그러면 암흑 속을 신의 빛으로써 걸을 수 있게 된다.
나(이루어진 소망)를 본 자는 아버지(내적 분위기 또는 확신)를 보았느니라. 이 구절은 내적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12절에서 다음과 같은 진리를 듣게 된다.예수가 하는 일들을 당신도 할 것이요 이 보다 더 큰 일들을 할 것이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임을 깨닫고 이 신성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 생각이 그토록 중요한가 /
여러분은 과학과 종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물리학과 철학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망원경으로 더 멀리 볼수록, 여러분이 현미경으로 더 자세히 볼수록, 여러분은 이 우주의 연속성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주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예전에 이미 그것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원자보다 작은 입자는 관찰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활동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물리학자들은 이미 여러 차례 보고하고 있습니다. 쿼크와 중성미립자의 움직임은 관찰하는 과학자의 생각과 종종 일치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아인슈타인은 '모든 물질은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지요.
모든 물질은 각양각색의 고유한 전자기의 진동에 의한 주파수를 지니기에, 과학자들은 계량적인 측정이 가능함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고밀도물질에서 소리에 이르기까지 진동의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빛의 영역에서는 진동의 속도에 따라 적외선에서 자외선에 이르기까지 그 성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우주에서 진동의 속도가 가장 빨라진 형태, 우리는 그것을 생각이라 부릅니다.
감정, 혹은 느낌은 모든 생각과 함께 움직입니다. 생각은 형제가 없는 덩어리가 되며, 그 덩어리는 물질이 됩니다. 여러분이 강력한 열망을 밖으로 보낼 때, 감정은 전자기적인 에너지를 내뿜게 됩니다. 그 에너지는 이 우주 전체에 끊임없는 파장을 일으킵니다. 여러분 모두는 비물질차원의 에너지를 활용하여 하나의 눈에 보이지 않는 덩어리를 만들며, 그것은 결국 물질세계에서 눈에 보이는 하나의 형태로 형상화됩니다. 여러분 모두는 창조자로서 빛나는 명성을 지니기에, 여러분이 창조한 모든 현실은 곧 여러분이 내뿜은 모든 에너지의 완벽한 반영인 것입니다!
창조자들이여, 여러분의 '생각'이야말로 그 모든 '창조'의 발사대입니다! /
삶이라는 게임을 이기려면 / 여러분이 원하는 것에 대해 명확히 초점을 맞출 때, 그 대상은 빠른 속도로 진동을 일으키며 여러분과 공명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생각이나 행위가 여러분이 원하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간다면, 여러분은 문자 그대로 진동의 속도를 낮추고 있는 셈입니다. 이 경우 여러분은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감정을 지니게 되지요. 여러분이 '부족함'에 초점을 맞춰 행동하는 것, 그것은 곧 부정적인 창조를 의미합니다. 눈 앞에 볼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원할 때, 혹은 여러분이 보기 싫은 것을 눈 앞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은 부정적인 창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너지가 원하지 않는 것, 싫은 것, 부정적인 것으로 향할 때 저항을 일으킵니다.
그 저항은 고생과 질병을 유도합니다. 에너지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긍정적인 것으로 향할 때 속도를 냅니다. 그 속도는 편안함과 건강을 유도합니다. '나는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나는 과연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건강과 풍요에 대해 이런 의문을 품는 순간 여러분은 '의심'의 씨앗을 뿌리게 되는 셈이며, 그 씨앗은 의외로 빨리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대상에 부정적으로 저항할수록 그 대상은 지속적으로 여러분을 괴롭히게 됩니다. 그러니 관심의 방향을 바꾸세요. 여러분이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대상으로. 여러분이 원하는 대상, 원하는 현실의 방향으로. 삶을 게임으로, 하나의 축구 경기로 비유하자면... 상대방 골문이 아닌 자신의 골문으로 열심히 달리며 계속 슛을 날린다면, 여러분은 결코 그 시합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을 꽁꽁 묶는 모든 환영을 깨부수세요. 그 환영을 저 멀리 여러분의 뒤로 보내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원하는 대상과 현실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세요. 끊임없이 좋은 일이 일어나는 삶을 사는 이는 스스로에게 '나에게는 끊임없이 좋은 일이 일어난다.' 고 주문을 걸기 때문입니다.
[출처] 삶이라는 게임을 이기려면 | 작성자 하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