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 공부/단군과 한민족

백두산과 마리산은 모두 두(頭)산

柏道 2019. 8. 6. 12:35


▷지명(地名)탐구

 

백두산과 마리산은 모두 두()



     단군님께 제천(祭天)하거나 민족의 이름으로 성화(聖火)를 채화(採火)할 경우에는 마리산으로. 부처님께 기원할 경우에는 마니산(摩尼山)으로 호칭해야 사리에 맞다” 

 

 

    이형석(교박, 한국땅이름학회장, 중앙지명위원)  

 

 ♤ 현재의 산이름은 ‘마니산’, 옛이름은 마리산(頭岳).

 산 정상에는 하늘에 제를 지내는 단이 있으니 강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 민족, 전 국토의 머리 구실을 한다는 뜻이다.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마리산’(摩利山)으로 되어 있으며 그 뒤 <동국여지승람>에 마니산으로 바뀌었다.

 산 산정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塹城壇, 사적 제136)이 있다. 높이 5m로 자연석을 쌓은 것인데, 기단(基壇)은 지름 4.5m의 원형이고 상단은 사방 2m의 네모꼴로 되어 있다. 이 단의 축조 연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못하고 있어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4000년을 넘는 유물일 것이다.

 또 그 위치나 구조로 보아 천문·관상대와 비슷하므로 후세에 와서 이를 병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고려 시대에도 왕과 제관이 찾아가 하늘에 제를 올렸고 조선 시대에도 제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단역은 수천 년 동안 계속 수축되어온 흔적이 있다. 정확한 수축 기록은 1639(인조 17)1700(숙종 26)이다. 현재 이곳은 성역(聖域)으로 보호되어 있으며 매년 개천절에는 제전이 올려진다.

 

 ‘마리산 (摩利山); 인천광역시 강화군(江華郡) 화도면(華道面)에 있는 산. 해발고도 467m. 강화도 남서단에 있으며 강화군에서 가장 높다. 마리산은 한반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산의 정상에서 남쪽 한라산까지와 북쪽 백두산까지의 거리가 같다. 본래의 마리산은 고가도(古加島)라는 섬으로 바다 가운데 솟아 있었던 것인데, 가릉포()와 선두포(船頭浦)에 둑을 쌓은 뒤로 육지가 되었다. 북쪽 양도면(道面)의 진강산(鎭江山)과 동쪽 길상면(吉祥面)의 길상산(吉祥山) 및 마리산 사이는 매우 낮아 과거 지질시대에는 지각이나 해면의 승강운동으로도 섬이나 육지와 이어진 섬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대는 이른바 마리산 화강암이라는 선캄브리아대 암석이 분포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또 변성암인 결정편암계의 편암이 마리산 동쪽지대에서 시작하여 정족산의 전등사 일대에까지 퍼져 있다. 이 산은 마리산· 머리산이라고도 불리는데, 마리란 고어로 머리를 뜻하는 것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를 뜻한다. 산꼭대기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塹星壇;사적 제136)이 있다. 높이 5m의 자연석을 쌓은 것인데, 기단은 지름 4.5m의 원형이고 상단은 사방 2m의 네모꼴로 되어 있다. 이 단의 축조연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어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4000년 이상 된 것으로 보이며, 고려시대에도 왕과 제관이 찾아가 하늘에 제사를 올렸고 조선시대에도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단역은 수천년 동안 계속 개축되어 온 흔적이 있다. 정확한 개축 기록으로는 1639(인조 17)1700(숙종 26)이다. 마리산 동쪽 봉우리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정수사(淨水寺)는 신라 선덕여왕 때 세운 고찰로서 보물 제161호로 지정된 유명한 법당이 있다. 또한 3면이 바다에 잇닿아 있어 산기슭에는 옛날 방어의 목적으로 설치한 전보·장곶보를 비롯하여 돈대 등의 유명한 유적지가 많다. 본래 마리산이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마니산(摩尼山)으로 바꿔 불리다가 1995년 본디의 이름인 마리산으로 되었다.

 

 위는 모 <백과사전>에 기록된 ‘마니산’에 대한 기록으로 대부분 사실대로 기술되었으나 마지막 부분인 ‘1995년 마리산으로 되었다’의 기록은 사실과 다르다. 1995년에는 인천광역시 지명위원에서 심의결과, ‘마리산’으로 통과되었으나 중앙지명위원회에서 통과되어야 지명이 확정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백과사전>이 발간된 듯 하다. , , 계곡 등 자연지명이 바뀌려면 ‘군지명위원회-도나 특별, 광역시지명위원회-중앙지명위원회’ 등 3관문을 통과해야만 확정된다.

 

 마리산이름은 중앙지명위원회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 보류된 것이다.

 그것은 마리산이름은 기독교의 ‘마리아’와 관련있는 이름으로써 불교와 관련된 ‘마니보주’(如意珠)와 관련된 ‘마니산’을 절대 바꿀 수 없다는 논리였다. 결과적으로 보류되어 현재의 산이름은 ‘마니산’이며 그 본디 이름은 ‘마리산, 머리산’(頭岳)이다.

 조선 중기까지는 이 산의 이름은 모든 문헌이나 지도, 자료에 ‘머리산-두악(頭岳)’으로 기록되었으며 마니산이란 이름은 어느 문헌이나 지도에도 찾아 볼 수 없다.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摩尼山(마니산)’으로 표기되면서 마니산으로 굳어졌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항간에는 일제시대 마니산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지만 이는 잘못이며 기록이나 지도에 ‘마니산’으로 확정하였다.

 ‘마리산 제이름 찾기운동’은 1990년대 초부터 산악인들을 비롯해 시민단체들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다. 우리 한국땅이름학회는 ‘마리산이름 되찾기 국민운동본부’를 차려 본격적인 개명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에 인천광역시는 1995726, 시지명위원회를 열고 마리산 지명 개명을 통과시킨 후 중앙지명위원회에 상정했었다. 그러나 건설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 중앙지명위원회는 ‘이미 오랫동안 마니산이라 불러와 그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이유로 이를 반려했다.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관계자는 “지명 개명에 대한 기록이 보존되어 있지는 않지만 중앙지명위원회에서 마리산으로의 개명이 기각된 후에도 시민단체나 지역의 향토사학자들로부터 문의와 개명 민원이 종종 들어온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개국의 터전이며 민족 성산으로 아려지고 호칭하고 있는 백두산 역시 머리()산이다. 즉 ‘두산’(頭山)인데 년중 산정에 흰눈이 쌓여있다고 해서 ‘백두산’(白頭山)이라 호칭하며 년중 산정에 오랫동안 흰눈이 쌓여있어 ‘장백산’(長白山)으로도 우리나라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즉 우리나라 최고의 관찬서의 하나인 <동국여지승람>에 백두산과 장백산을 혼용, 기록하고 있어 중국인들만이 장백산이라고 호칭한 것은 틀린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 개국조로 알려진 단군(왕검)에게 제천하거나 민족의 신성한 산으로 추앙하는 산은 모두 ‘머리산’으로 호칭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백두산’이나 ‘마리산’은 서로 상통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만일, 단군님께 제천(祭天)하거나 민족의 이름으로 성화(聖火)를 채화할 경우에는 마리산으로. 부처님께 기원할 경우에는 마니산(摩尼山)으로 호칭해야 사리에 맞다.

 

 

 다음의 글은 필자가 인천광역시 지명위원으로 활동 당시, 마리산이름 되찾기운동과 노력에 대하여 강화출신, 경기도의회 한상운위원이 필자에게 보낸 내용이다.  

 

  “강화도 마리산이름 되찿기운동은 이국가의 4대 임경축일에 하나인 개천절의 표상일뿐만 아니라, 남북한을 통털어 이 겨레의 마음밭에 고향으로 자리매김 되어있는 건국신화이기에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정권은 단군능 복원을 대대적으로 하였다는 것을 남한정부 에서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 귀감을 삼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남한에서는 이 단군의 족적이 스며있는 강화도 마리산과 삼랑성을 대한민국정부 나리들은 너무나 홀대를 함은 물론, 무엇이 중요한 정신문화의 유산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형석님의 외침은 역사와 민족앞에 찬연히 빛날 것을 확신합니다. 보내주신 e메일을 강화군청 홈페이지 넷티즌광장에 18일자에 올렸더니 하루만에 100여명이 접속되는 개가를 올려 강화에서도 깊은 관심이 고조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형석님 행로에 큰 영광의 행운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강화도령  한상운  드림-

 

  <참고/ 마리산의 지명유래>

 사람들은 흔히 강화도를 개국의 성지라 부른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는 참성단이 있는 마리산(혹은 마니산)의 정상에 위치한데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나 산 이름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정사 상의 기록을 두루 살펴보면, 마리산이라는 이름이 마니산이라는 이름보다 400년 앞서 쓰여졌음을 볼 수 있다. 즉 원래 이름은 마리산이었는데 삼국시대 무렵에 우리말 땅이름을 한자어로 나타내면서 마니산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시기적으로 10세기 후반부터는 마리산으로, 14세기 중반부터는 마리산과 마니산이 함께 쓰여져오다가 16세기 후엽 부터는 모두 마니산이라 표기되었다. 1960년대 말까지도 강화군청 발행의 모든 인쇄물과 각 학교의 교가에는 마리산으로 표기되어 왔다. 그러다 1970년대 초 건설부에 국립지리원이 생기면서 각종 공문서에 마니산으로 표기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마리산이냐 마니산이냐 하는 논란이 시작됐다.

마리산의 '마리'란 머리의 옛말로써 사물중의 가장 으뜸이라는 뜻을 지닌다. 사람이나 모든 생물의 신체 부위 중 가장 높고 신성시 되는 부위는 머리이다. 짐승을 헤아릴 때 한 마리, 두 마리...마리는 머리라는 뜻이고 이를 한자어로 쓸때는 1, 2...라고 적는다. 그러므로 마리산이란 으뜸가는 머리산을 뜻한다.

 <참성단에서 단군께 제천하는 풍속>

마리산 상봉에 자리 잡고 있는 참성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으로, 단군 기원 51년에(BC 2282) 단군왕검이 민족 만대의 영화와 발전을 위하여 봄, 가을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것이다.

 마리산 참성단이 자리하고 있는 현재의 화도면은 조선 중엽까지도 강화도 본도와 떨어진 하나의 작은섬(고가도)이었다. 참성단이 자리한 지정학적 위치도 단군과 강화도를 연결시키는 데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란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야 제격이 아닐까. 육지에서 배를 두 번 갈아 타야만 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기에.

 

 

 고려사권 56 지리지에 보면 사적 136호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 드리던 제단"이라 하였다. 참성단을 한자어로 표기할 때 塹城壇, 塹星壇, 參星壇3가지가 있다.

 제단의 이름에 별성자가 들어간 것은 고려, 조선시대를 통하여 참성단에서 별을 제사 하였다는 여러 가지 사실(기록)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된다.

 삼국사기 등에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들은 모두 하늘에 제사를 올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제천 전통은 근세조선까지도 이어졌다. 고려 원종이 마리산 흥왕리궁에서 초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고 그 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계속해서 이곳에서 제를 올렸다.

 고려말의 대학자 이색의 참성단시에 "이 단이 하늘이 만든 것은 아닌데 누가 쌓았는지 알수 없어라" 라고 한 것을 보면 이 단은 고려이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참성단은 단군조선,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원종17, 공민왕 때에 각각 보수되었고, 이조에 와서는 인조17년과 숙종 26년에 각각 수축 하였으며, 일제시대 36년 동안 일제는 참성단을 일종의 천문대로 생각하였으며 식민지 정책의 술책으로 이 성역을 묵살하였다.

 따라서 돌보는 사람 없이 쓸쓸히 놓여 있다가 해방과 더불어 다시 본 모습을 세상에 자랑하게 된 것이다. 6. 25전란 때 제단 한 쪽이 상처를 입었으나 강화군과 화도면 주민들에 의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되었으며, 최근에는 제천단 아래까지 넓게 길을 닦아 놓았다.

 마리산은 해발 468m로 전체가 육산이며 세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어 먼 곳에서 보면 아름답고 웅장한 명산으로 참성단이 그 중간 봉우리에 있다. 성지 참성단을 중심으로 마리산은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1982년 대대적인 관승지로 가꾸어졌으며, 1995년에는 마리산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박달나무를 심고 가꾸는 모임이 자생적으로 결성되었다.

 년차적으로 박달나무를 300주씩 식수하여 마리산 녹화는 물론 박달나무 꽃길가꾸기에 지역 주민 스스로가 참여하게 되었다. 마리산의 마리단풍은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강화팔경중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마리산은 참성단에서부터 남쪽으로 한라산, 북쪽으로 백두산에 이르는 거리가 똑같다고 한다. 하늘과 땅에 제사드리는 성지로서 으뜸가는 산이며, 단군의 행적이 살아있는 민족정신의 고향이요, 국풍의 중심도량이다.

 1953년 부터는 전국체육대회의 성화채화지로 지정되어 마리산 정상의 참성단에서 7선녀에 의하여 햇빛으로 점화된 성화를 성화운반 주자에게 인계한다.

 성화채화시 군수가 제주가 되어 제사를 올린뒤 7선녀에 의해 태양열을 화경으로 인화하거나 흐린날에는 부싯돌로 성화를 점화하는데 점화시 7선녀의 출현은 단군께서 단을 쌓아 제사를 지낼 때 선녀가 합그릇을 받들고 있었다는 기록을 반영한 것이다.

 1964년 사적 제136호로 지정된 참성단은 자연의 돌을 반듯하고 납작하게 다듬어서 3m의 높이로 쌓았다. 전체의 모습은 2단으로 되어 있다. 제단으로 오르는 21계단은 2단으로 구분되어 아래는 4, 위에는 17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다.

 위의 단은 한변이 2m(466)인 정사각형으로 되었고, 밑의 단은 지름4.5m(15) 정도로 둥글게 쌓았다. 이 단의 위는 네모나고 아래는 둥근 형태인데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天圓地方)는 사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늘에 제사 지내는 사람을 합쳐 천지인이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마리산에 참성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은 마리산이 그만큼 정결하며 장엄하고 뛰어난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강도(江都:江華)는 생김새가 천하의 요새로 되어 있고 문물이 발달하였으며, 마리(摩利) ·혈구(穴口) 등 하늘과의 인연이 깊다고 옛부터 전해져 왔다. 또 개국신화(開國神話)의 등장인물인 우사(雨師)와 운사(雲師)도 마리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은 환웅(桓雄)의 권속인 바, 결국 단군이 참성단을 설치하여 하늘에 제사지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방()과 원()은 천지의 의형(擬形)이며 조화가 모두 거기서 일어난다는 철학을 바탕에 두고 설치된 것이라 여겨진다.

 마리산은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마리산, 마니산 또는 마루산으로도 불리운다.

 백두산이나 묘향산 등과 함께 단군 왕검의 전설이 얽힌 강화의 명산 마리산(468m)은 강화도 화도면 문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산 정상에서는 한눈에 강화도의 서해와 넓은 김포벌판, 해안의 간척지, 염전 등을 볼 수 있다. 마리산은 본래 고가도(古加島)라는 섬(현재 화도면)으로 바다 한가운데 솟아 있었던 것인데, 1664년 유수 조복양이 가릉포와 선두포에 둑을 쌓은 뒤로 육지가 되었다.

 

 마리산 정상에는 참성단이 있고, 동쪽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개산한 고찰 정수사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마리산자락에는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여러 촌락이 있는데 북쪽의 내리, 문산리, 상방리가 그것이다. 상방리는 마리산을 오르는 입구에 있고, 동쪽에는 사기리, 남쪽에는 흥왕리, 서북쪽에는 장화리 등이 있다.

 사기리는 지명이 말해주듯이 고려 분청사기의 가마터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남쪽의 흥왕리에는 강도시대의 고려 이궁이 있던 흥왕리궁터가 있다. 또 내리 중앙에는 가곶보와 유수 조복양이 막았다는 가릉포 둑이 있다.

 멀리서 보면 당당한 독립산을 이루고 있는 마리산은 '마리단풍'이라고 할 만큼 산세가 아름답고 가을 단풍의 풍치가 빼어나 강화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마리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정상까지 918개의 계단으로 이어진다. 정상에서 여러 곳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었다. 산의 지형이 비교적 평탄하고 온화하며 계곡도 그리 깊지 않아 정상의 암벽 부분만 조심하면 잘 닦여 있는 등산로를 따라 어렵잖게 오를 수 있다.

 마리산 정상을 오르는 등산로에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제1등산로 : 마리산국민관광단지↔계단있는(없는)길↔ 참성단 까지 왕복코스. 왕복 약 4.8km, 2시간 30~ 3시간 정도 소요된다. 계단 있는 길의 계단이 시작되는 곳 까지는 준비없이 오를 수 있는 산책로 수준이지만, 그 이상은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는 것이 좋다. 올라갈 때는 계단 있는 길로, 내려올 때는 계단 없는 길(단군로)을 이용하는 것이 용이하다. 단군로를 이용하여 하산할 경우에는 단군로와 선수로가 갈라지는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가서 단군로로 접어들면 된다.

 

☛제 2 등산로 : 마리산국민관광단지↔계단있는(없는)길↔ 참성단 ↔ 함허동천 또는 정수사의 코스. 편도 약 5.1km, 3시간 30~ 4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이다. 함허동천에서 야영할 수 있고, 정수사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정수사 법당을 볼 수 있다.

 

☛제 3 등산로 : 함허동천 또는 정수사 에서 출발하여 참성단을 거쳐 선수포구로 하산하는 코스. 마리산 정상에서부터 정수사에 이르는 동안 내내 탄성을 지르는 절경들이 펼쳐진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드넓은 염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섬들의 실루엣. 등산로의 주능선이 바위 능선으로 되어 있어 곳곳에 펼쳐지는, 말문을 막는 기암괴석과 소나무...그 절경에 취해 눈깜짝할 사이 산을 내려오면 단아한 절 정수사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