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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제349사 -絶祀(절사)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349사 -絶祀(절사)

柏道 2019. 4. 20. 16:04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61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 민간에
발생한 가장 심각한 대립은 바로 조상제사
문제였다.
초기 기독교 전통은 술, 담배, 도박 등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금했지만 특히 제사
문제로 인해 극명한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가 되었다.
술이나 도박 등에 대해서 엄격한 것은
사실 그 폐해가 너무 컸고 모두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칭찬을 받을
문제였지만 제사 문제는 완전히 그 성격이
달랐다.
기독교에서는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한다는 십계명에 입각하여 다른 우상이나
조상신 등을 인정하지 않은 반면, 오랜 기간
중요한 전통으로 조상제사를 지내온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제사금지는
그야말로 효사상에 대한 도전이요, 복을
가로막고 화를 입게하는 패륜으로 여겨졌다.
안타깝게도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명절 때만 되면 화목하고 행복해야
할 가정이 교리의 문제로 인해 서로 반목과
질시, 분노와 대립으로 고통을 주고 받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신학이나 교회에서는 이에
대한 좋은 해결책을 내어 놓지 못하고 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첫계명을
하늘과 같이 여겨 절대 타협이나 양보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교회가
대부분이다.
아예 이 부분은 닫아버렸고, 조금이라도
양보하거나 타협하려는 낌새만 보여도 곧바로
정죄가 행해지는 실정이다.
그러는 가운데 격렬하게 싸우거나, 교리를
버리고 타협을 하거나, 서로 왕래를 끊고
남남으로 사는 형태로 여전히 고통을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뜨거운 감자를 섣불리 손을 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참전계경을 풀이하는 가운데
이 주제가 등장을 하니 조심스럽게 다루어
볼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확신하는 바는 조상제사 문제와
하나님을 섬기는 문제는 전혀 대립이나
갈등을 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입장이다.
무지와 두려움 때문에 무턱대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있는 것이지, 실상을 제대로 알게
되면 서로 화목함 가운데서 공존할 뿐 아니라
존중하며 잘 지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는 가운데 보다 고상하고 높은 진리로
이끌림을 받게 되는 것이 순리요, 하늘의
지혜이다.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만
한다면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피차 물고 먹으면 망하는 결과 밖에 없다. 
 
第 349事 應 4果 盈 4形
(응 4과 영 4형) 絶祀(절사) 
 
世産保其口(세산보기구)하고
存其産終其年(존기산종기년)하나
但無一個子女(단무일개자녀)하여
終其祀(종기사)니라 
 
물려 받은 재산으로
목숨은 부지하고
그 산업으로 일생을 살기는 하나
다만 아들딸 하나 없어
그 제사가 끊어지느니라 
 
예로부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단순한 예식차원이 아니었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 제사밥을 먹기
위해 후손을 찾아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장손을 기준으로 적어도 4대까지는
조상들의 위패를 모시고, 기일에 제사상을
차려 그 귀신을 대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만일 후손이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그 조상의
귀신은 굶게 되고, 저승에서도 수치를 당하기
때문에 분노하여 후손들에게 벌을 내린다고
믿었다. 반면 조상을 정성스럽게 잘 모시고
묘터를 잘 쓰게 되면 조상이 은덕을 내려
후손들을 보호하고 복을 내려준다고 믿은
것이 바로 제사전통에 담긴 의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난데없이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제사를 금하니
어처구니 없는 말로 들릴 수 밖에 없었다.
천하에 무례하기 짝이 없고, 불효막심한
종교요 교리로 여겨진 것이다.
지금까지 제사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기독교는 조상도, 부모도 없는
형편없는 종교라고 비난한다.
사실 기독교만큼 효도를 강조하는 종교가
또 없는데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이런 불상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우리 민족은 대대로 하늘을 존경하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민족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우리 민족은 어리석게 조상을
특별한 신으로 여겨 섬기는 그런 민족이
아니다. 하나님과 조상신에 대한 구분은
엄격했고, 우리 민족은 지혜롭게 그 질서를
지킬 줄 알았다.
물론 기독교에서는 이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진지하게
따져 보면 그렇지 않다.
창조주요, 만물의 근원이며, 인간을 사랑
하시는 절대자가 이름이 다르다고 존재를
다르게 보는 것은 무지와 편견의 소치일
뿐이다.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고, 제삿날 찾아와서
제삿밥을 먹고 간다는 것은 사실 증명되지
않은 하나의 관습이요 의식일 뿐이다.
그런데 만일 기독교에서 극렬하게 조상신을
반대하게 되면 도리어 조상신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만일 귀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저 오랜 관습이요, 종교와 문화의 한 형태
라고 생각하고 일단 존중해 준 다음 서서히
깨우쳐 참 진리와 생명의 길로 들어서게
해야지 무턱대고 네 것은 악하고 거짓이니
버려야 한다고 달려들면 이는 사랑의 법에
어긋나는 행동이 된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고 했고, 사랑이
없으면 믿음이고 뭐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는데 어떻게 이런
무례한 일을 하면서 진리를 세우겠다고
하겠는가?
죽은 후에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말 깊은 지혜가
필요한 영역이고, 엄청난 용기가 요구되는
분야이다. 따라서 쉽게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는 것은 교만이요 무례함이다.
일단 제사문제로 기독교의 본질을 규명하려
해서는 안된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본질이요,
핵심이며, 전부이다.
제사를 지내고 안지내고는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 분별을 하고 스스로 결단을 통해 해결할
일이지, 그것으로 인해 기독교의 근본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리게 되거나,
사랑이 훼손을 입게 된다면 그것은 마귀의
짓이다. 스스로는 진리를 보호한다고 떠들지
모르나 더 큰 법, 최고의 법인 사랑의 법에
위배되면 그 자체로 진리가 아님을 증명한다.
사랑의 근본 속성이 오래 참는 것이라면
왜 좀 더 참고 기다리며, 설득하고 감동을
주어 그들을 일깨우려 하지 않고 서슬
시퍼런 눈과 독한 입으로 비난과 정죄를
행함으로 스스로의 그릇됨을 폭로하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자기도 모르는 것에 대해 감히 아는 것처럼
큰소리를 치지 말자.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고 제삿밥을 먹으러 오는지 안오는지는
단순한 이론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혹시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얼마나 성경을 잘 알고, 열심히 공부해서
문자 너머의 의미와 행간의 뜻까지 제대로
다 알고 있는지 말이다.
유다서를 다들 잘 읽지 않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구절이 하나
있다. 바로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교훈인데 천사장 미가엘과
사단이 등장한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기를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유다서 1:9)
좀 더 읽어보자.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10)
여기에 자신이 해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만일 조상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이런 어리석음에 빠진 것 같이 보이면
판단하고 정죄하기 보다 그들을 지혜와
사랑으로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